좋은 말씀/한경직목사

크리스마스와 하나님의 사랑 (요한복음3:16)

새벽지기1 2017. 11. 10. 05:52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요3:16)

이 말씀은 아마 우리 믿는 사람으로서 모르는 분이 한 분도 없을 줄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 이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온 우주에 사무쳐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여 그 길이와 그 넓이와 그 높음과 그 깊음을 유한한 사람의 지역으로서 다 이해할 수 없는 줄 생각합니다. 다만 성경의 교훈에 의지해서 또한 이 시간, 성신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따라서 잠깐 동안 하나님의 사랑의 그 일면을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나타나셨는가? 물론 그 지으신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도 어느 정도 나타났습니다.
모리슨이라고 하는 사람의 쓴 책 가운데「인간은 홀로 서 있지 않는다」는 작은 책자가 있습니다. 이 책을 읽어보면 과학자의 견지에서 이 우주를 살펴보고 우리 지구를 조사하여 보고 해와 지구와의 거리, 지구의 경도, 기울어진 도수, 지구를 싸고 있는 대기와 공기, 지구의 대부분의 표면을 점령하고 있는 물, 또한 지구를 구성한 여러 가지 화학적 요소, 이런 모든 것을 살펴보고 맺어보는 결론은, 과연 하나님께서 이 우주와 이 세계를 지으실 때에 인간을 위해서 지으셨고, 인간이 살 수 있으리 만큼 모든 조건이 준비된 사실을 지적한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사랑은 그 만드신 우주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나타나는 줄 생각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우주에 질서가 유지되고 이 세계의 모든 인류와 금수와 만물이 그 생명을 얻었고 또한 유지하여 가는 것이 사실인 줄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실인 동시에 우리가 또한 성경을 상고해 보면, 특별히 이밖에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난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요한 1서 4장 9절에 사도 요한 은 친히 증언하여『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특별히 그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나타난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읽으신 말씀도 역시 그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여 줍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하나님의 사랑이 그 독생자를 주신 사실로 무엇보다도 분명히 나타나신 것입니다.


또한 이 독생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셔서 우리 인류에게 하나님에 대한 비밀을 계시하실 적에 하나님의 지혜나 하나님의 능력이나 모든 영광도 계시하셨지마는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어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 의 말과 같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우리가 만일 사도 요한을 향해서 어떻게 당신이 하나님은 사랑이신 것을 아느냐고 반문한다고 하면, 아마 제 생각은 대략 이런 말로 대답할 줄 생각합니다.
『나는 하나님은 사랑인 줄 분명히 압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친히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품이 친히 안겨 보았습니다. 나는 3년 동안 그리스도와 같이 자고 먹고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의 성품, 그의 말씀, 그의 생활, 그의 행동, 마지막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나가는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마지막에 십자가 위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면서 만민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그 얼굴, 다 이루었다 하는 말씀과 같이 운명하시는 그 엄숙한 사실을 보았습니다. 3일만에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는 그 빛나는 부활하신 주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이제 다시 한번 추억할 때에 과연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나는 깨달았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계시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입니까?
제일 먼저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한 사랑입니다. 인간 사회에서는 추한 사랑도 많이 있습니다. 불결한 사랑도 많습니다. 천한 사랑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맑은 사랑입니다. 흠 없는, 티없는, 백옥과 같이, 수정과 같이 맑은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러했습니다. 그의 제자들에 대한 사랑, 그의 온 인류에 대한 사랑은 거룩한 사랑이었습니다.
뿐만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은 의로운 사랑입니다 인간에는 불의 한 사랑도 많이 있습니다. 불법한 동기의 사랑도 많습니다. 죄를 용납하는 사랑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은 사랑하지마는 죄를 용납하지는 아니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극진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을 때에 사랑의 채찍을 또한 내리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랑의 화신이지마는 외식하고 죄를 회개할 줄 모르는 서기관과 바리새 교인들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의가 있는 사랑이올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참된 사랑입니다. 인간 사회에는 거짓된 사랑도 많습니다. 허위의 사랑, 입술의 사랑, 여기에 속아서 일생을 그르치는 여자들도 많고 혹 남자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참된 사랑이올시다. 중심의 사랑이올시다. 사실 이 세상에 오직 참된 사랑은 하나님의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줄 압니다.


이와 같은 사랑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여 주십니다. 따라서 그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인심은 조석변이로 인간의 사랑은 시시로 변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원수로 변할 수도 있고, 오늘 뜨거운 사랑으로써 부부로 결혼하였지마는 몇 해가 못 가서 미움으로 서로 헤어지는 부부들도 없이 않아 있는 것을 우리가 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올시다. 무궁한 사랑이올시다. 천지가 변할지언정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아니하십니다.
이와 같은 사랑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인간의 사랑에는 흔히 조건이 있습니다. 꽃은 고우니까 사랑합니다. 두꺼비는 보기 싫으니까 미워합니다. 사람은 그 사랑의 대상물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의 대상이 좋으면 사랑하고, 좋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사랑의 대상물 여하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 사랑을 받을만해서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속에 사랑이 있으므로 사랑합니다. 곧 하나님은 사랑인 까닭으로 사랑합니다.


여기에 어머니의 사랑과 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자식에 있는 것보다도 자기 속에 있습니다. 남 보기에는 못 생긴 것 같아도 어머니에게는 다 잘 생겨 보입니다. 그 사랑이 어머니 속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은 그 자신이 사랑이므로 사랑이 그 속에 있습니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도 사랑하고 악한 사람과 죄인도 사랑합니다. 다만 선한 사람은 기쁨으로 사랑하고 악한 사람은 상한 마음으로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공평합니다.
인간의 사랑은 편파적으로 나가기 쉽습니다. 리브가는 좋은 어머니인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더 사랑하고 에서는 덜 사랑했습니다. 이삭도 좋은 아버지인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 반대로 에서를 더 사랑하고 야곱을 덜 사랑했습니다. 흔히 가정의 불행은 부모라도 이렇게 편벽 된 사랑을 할 때 종종 오는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흔히 편벽 되게 사랑하기 쉽습니다.


내 그룹은 더 사랑하고 내 당은 더 사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공평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남녀 노소의 구별이 없습니다. 빈부귀천의 구별이 없습니다. 민족이나 국가적 구별이 없습니다. 다같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밭에 햇빛을 비추이듯이 공평하게 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 놀랄 만한 사실은 하나님은 이렇게 전 인류를 사랑하는 동시에 그러나 그 사랑은 개인적인 사랑입니다. 개인 개인을 사랑합니다. 마치 목자가 양 하나 하나를 불러서 저녁에 우리로 인도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인간 하나 하나의 영혼을 따로 불러서 그 영혼을 구원하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진리를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서 헤매이는 목자의 모습이 곧 하나님의 사랑을 상징한 것입니다. 은전 열 닢 가운데 한 닢을 잃어 버렸어도 이 한 닢을 찾으려고 방을 쓸고 불을 켜고 애타하는 그 여자의 모습이, 하나님의 개인적인 사랑의 상징인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과 다른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제한되어서 이러한 사랑의 능력이 없지마는 하나님은 하나 하나를 사랑하십니다. 여기 이렇게 여러 천 명이 모였지마는 하나님의 사랑은 한꺼번에 사랑하는 법이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 하나를 사랑하여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심령을 이끌어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내 영혼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의 영혼을 사랑하십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이 친히 말하기를『그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몸을 버리신 지라.』우리 하나 하나가 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그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몸을 버리신 지라.』마치 태양은 하나이지만 그 광선과 그 따뜻한 양기가 높은 산 위에 있는 소나무의 꼭대기도 비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면에 깊은 골짜기의 어떤 풀잎에 머무는 작은 이슬방울에도 비칠 수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히 크지마는 그러나 개인의 심령을 사랑하시고 하나 하나를 이끌어서 구원하십니다.


이와 같으신 하나님의 사랑은 희생적 사랑입니다. 모든 참된 사랑에는 희생이 내포됩니다. 우리 하나 하나를 사랑하셔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여러분 과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보고 그 사랑을 압니까? 아브라함이 자기 외아들을 하나님께 드린 것을 보아서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했는지 그 증거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서 세상에 보내시고 세상에 보내실 뿐더러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우리에게 주신 이 사실을 볼 때에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뜨거운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8절에 이와 같이 기록하였습니다.『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자기의 사랑을 확증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의 대속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 것입니다.「온 세상 다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하는 그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곧 크리스마스의 뜻입니다. 크리스마스는 다른 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날입니다. 이 죄로 말미암아 애통과 눈물과 죽음이 가득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 빛이 비추이기 시작한 날입니다. 이 쓸쓸하고 냉랭한 세상에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 나타나서 이 냉랭한 세계를 따뜻하게 만들기 시작한 날입니다.
오늘날도 전쟁의 공포와 원자탄의 위협 아래서 떨고 있는 이 세계를 향해서 크리스마스란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비취어 주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어떤 외지를 보니까, 미국에서 처음으로 만든 원자 잠수함이 온 세계를 물 속으로 돌아다니는데 심지어 북빙양 바다를 횡단하고 또 북극 밑을 횡단해서 이 잠수함이 저편으로 왔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북빙양과 북극 근방에 어름이 그렇게 많이 쌓였지마는 아마 그 속에는 얼지 않은 물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기에 잠수함이 통과했습니다. 사실 지구 속으로 갈수록 뜨겁다고 합니다. 지구 속에는 아직도 불이 있다고 합니다.
이 우주의 중심에는 이러한 영원한 무궁한 불변의 뜨거운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와 같은 사랑으로 사랑하였으니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와 같이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또한 그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여 줍니다.『너희는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 합해서 먼저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그랬습니다.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의 대 강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반역자가 되지 맙시다. 세상을 사랑하지 맙시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와 같이 독생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보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으니 우리 믿는 사람들끼리 피차에 더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 말미암아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리라.』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느 때 믿는 사람들끼리 사랑하지 아니하리오마는, 더욱 이러한 때에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피차에 용서합시다. 어떤 사람이 네게 허물이 있을지라도, 나에게 죄를 지었을지라도, 나를 손해 입혔을지라도 용서합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용서합시다.
어느 때에 우리가 피차에 상부상조하지 아니하고 피차에 돕지 아니하리오마는, 특별히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에, 그 귀한 날을 기념하는 이런 계절에, 우리 가운데 환난을 환난이, 병 가운데 신음하는 이들, 불행한 가운데 눈물을 흘리는 이들, 고독한 이들, 이와 같은 이들을 피차에 돕고 피차에 붙들어 주도록 힘써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와 같이 사랑하셔서 이 사랑을 우리가 마음 가운데 사실 깨닫는다고 하면, 이와 같은 큰 하나님의 사랑을, 좀더 이런 사랑을 알지 못하고 북극 같은 냉랭한 세상에 사는, 갈 길 잃은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합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1959년 10월 25일·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