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자연과 십자가 (요한복음12:20-33)

새벽지기1 2017. 11. 17. 06:5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지금은 사순절 기간이올시다. 우리가 어느 때에 우리 주님의 수난을 잊으리오마는 특별히 이러한 때에는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기억하는 때입니다. 오늘 읽은 이 말씀은 예수님의 지상 생활에 있어서 마지막 주간에 예루살렘에서 된 사실이올시다. 헬라 사람 몇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과 또는 안드레를 통해서 예수를 보기를 원하였습니다. 비록 이 헬라 사람들의 수가 적지마는 이들은 장차 주께 나올 각 나라, 각 종족, 각 방언, 곧 수많은 이방 사람들의 선구자요, 또한 대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들을 통해서 장차 이 수많은 이방 사람들을 그의 신령한 눈으로 미리 보신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이 있기 전에 그는 먼저 반드시 마셔야 할 잔이 또한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곧 십자가의 고난이올시다. 이 두 가지 현실을 미리 보시면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였습니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여기에서 그는 자연과 십자가를 연결하십니다. 아니 그것보다도 자연계에서 십자가의 원리를 발견하시고 이 원리를 우리에게 분명히 설명하여 주십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냥 한 알대로 있는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올시다. 언제나 한 알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일년 후에도 그대로 있겠고, 이년 후에도 그냥 있겠고, 십 년 후에도 그냥 한 알대로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한 알의 밀이라도 땅에 떨어져 묻혀 죽으면, 이상하게도 땅에 묻힌 썩는 듯한 그 밀 알 가운데서 싹이 나고 잎이 피고 줄기가 자라고, 마지막에 이삭이 나서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많은 결실의 비결은 땅에 떨어지는 데 있습니다. 땅에 묻히는 데 있습니다. 죽는 데 있습니다. 떨어지는 것이나 묻히는 것이나 죽고 썩는 것이 좋게 보인다고 생각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한 알의 밀 알이 많은 결실을 맺는 비결인 것을 예수 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십니다.


이것은 밀에만 한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곡식이든지 그러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벼가 그러하고 콩이 그러하고 팥이 그러합니다. 곡식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열매 맺는 나무가 역시 그렇습니다. 사과나무가 그렇고, 포도나무가 역시 그렇습니다. 모든 식물계에 적용되는 한 가지의 원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을 날 들에 나가 황금의 물결치듯 곡식이 무르익은 것을 볼 때에, 우리는 그 결실만 볼 줄 알아서는 아니 됩니다.
그와 같은 결실이 있기 위해서 먼저 몇 달 전에 땅에 떨어져 죽은 종자 혹은 밀 한 알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죽은 종자의 묘지 위에서만 많은 열매가 맺힌다고 하는 이 진리를 우리는 분명히 마음 가운데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이것이 곧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물론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도 여러 가지 위대한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위대한 교훈을 주셨고, 위대한 모범을 보여 주셨고, 위대한 이적을 행하셨고, 위대한 인격적 감화를 주셨습니다. 그렇지마는 그 범위는 그와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한정되어 있었고, 대체로 지리적으로는 유대 지방에 한정되어 있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한번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습니다. 그 시체를 땅 속 바위 속이 묻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의 움직임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그 후에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신 그 후에 오순절이 되었고, 오순절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수가 하루에 삼천 명이 더하게 되었고, 그 후에 오 천 명으로 증가되었습니다. 예루살렘만 복음이 전파된 것이 아니고, 유대에만 복음이 전파된 것이 아니고, 사마리아에도 전파되었고, 수리아, 안디옥에도 전파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단순히 유대 사람에게만 아니고, 헬라 사람들, 로마 사람들 혹은 온 세계 종족에게 로마제국에 몇 해가 되지 못해서 복음이 전파되게 된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잘 아는 바입니다 
 

사실 세기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각 나라, 각 족속, 각 방언, 수 없는 사람들에게 전파되어서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밀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말씀 그대로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진 예언의 말씀이올시다. 예수 님은 문자 그대로 땅에 떨어져 죽은 한 알의 밀이올시다. 이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써 많은 생명이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죽음을 통해서 열매를 맺는 이 원리, 희생을 통해서 열매를 맺는 이 원리가 곧 십자가의 진리요, 십자가의 원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이 십자가의 원리는 자연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활에만 적용된 것이 아닙니다. 모든 다른 사람에게도 모든 다른 방면에도 비록 범위는 적다고 할지라도 이 진리가 응용된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됩니다.
가령 여기 어떠한 가정이 있습니다. 이 가정에 좋은 아들과 딸이 나서 장성해서 귀한 사람들이 되어서 혹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봉사하고 혹은 사회와 국가에 크게 봉사하는 열매 맺는 가정이 있다고 합시다. 그것이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만일 그와 같은 열매 맺는 가정이 있다고 하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배후에 땅에 떨어져 죽는 정신을 가지고 그 가정을 봉사한 한 알의 밀과 같은 이들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이 땅에 떨어지는 한 알의 밀이 어머니가 됩니다. 그러나 어떤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됩니다. 혹은 형님이올시다. 혹은 누나올시다. 자녀들을 바로 입히고 먹이고 가르치고 옳은 학교에 보내고 기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남 모르는 눈물과 남 모르는 기도와 남 모르는 수고와 남 모르는 고통과 남 모르는 희생이 반드시 있습니다. 땅에 떨어져 묵히는 그 밭 위에만 많은 열매를 맺히는 것입니다.


학교도 그러합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학교라고 하면 먼저 건물부터 생각합니다. 학생의 수로부터 먼저 생각하는 폐단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렇지마는 참 학교의 표준은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오, 학생의 수효가 많은데 있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요컨대 얼마나 참된 인격을 그 학교에서 배양해 내며 바른 지식을 넣어 주는가? 얼마나 참으로 그 학교가 우리 사회를 위하여 열매를 맺는가? 거기에 있습니다.
어떤 잡지를 보니까 통계적으로 미국에서 연구한 결과를 보면, 미국의 모든 큰 인물들은 오히려 학생 수가 많은 큰 학교보다도 적은 대학에서 많이 나왔다고 하는 사실을 누가 지적하였습니다. 참 열매 맺는 학교의 배후에는 그 건물보다도, 학생의 수효보다도, 그 배후에 참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옳게 그르치고 옳게 배워주겠다고 하는, 땅에 떨어지려고 하는 밀 한 알의 정신을 가진 그와 같은 교장, 그와 같은 교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땅에 떨어지고자 하는, 장래에 우리 국민들을 위해서 자기의 일생을 모든 것을 바치려고 하는 참된 교육가가 없이는 열매 맺는 학교를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땅에 떨어지는 밀 한 알의 무덤 위에서만 열매맺는 학교도 건설될 수 있습니다.


교회도 물론 그렇습니다. 어떤 교회가 많은 열매를 맺느냐? 어떤 교회가 과연 많은 열매를 맺어서 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사람에게 덕을 세우며 우리 사회와 국가에 참으로 봉사하며 많은 생명을 구원하느냐? 그 대답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그 교회를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땅에 던지려고 하는 결심이 있는 교역자, 이와 같은 장로, 그와 같은 집사, 그와 같은 교인, 숨은 일꾼, 숨은 봉사자가 있어야 합니다. 남은 알든지 모르든지 심방을 하고, 위문을 하고, 전도를 하고, 시간을 바치고, 재능을 바치고, 물질을 바치며, 교회를 자기의 몸과 같이 사랑하며, 자기의 집과 같이 사랑하는, 교회를 위해서, 주님의 몸을 위해서, 자기의 몸을 땅에 던지고, 묻히려고 하는 이런 결심을 가진 이런 제직(諸職)과 이런 교우들이 있는 교회는 자연히 많은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부 가운데 터툴이안이라고 하는 이는 옛날에 벌써」순교자의 피가 교회의 종자」라고 하는 유명한 말씀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사실 순교자의 피가 교회의 종자입니다. 그런데 순교라고 하는 것은 한번 피를 흘려서 죽는 것만 순교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할 때에 그가 매일 죽노라 라는 말을 기록했습니다. 과연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매일 땅에 떨어져서 죽는 이와 같은 신자, 이와 같은 제직이 있는 그 교회는 자연히 많은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열매 맺는 교회는 오직 이와 같은 땅에 떨어져 죽는 한 알의 밀의 묘지 위에서만 건설된다고 하는 이 진리를 우리는 몽매간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라도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가 내일 모래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특히 우리가 국가에 대한 관심이 깊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나라를 좋은 나라로 만들 수 있을까? 살 만한 나라, 참된 자유와 평화가 있는 나라, 모든 다른 사람에게도 모범이 될 수 있는 나라, 자연히 三八선이 터져 없어져서 이북 사람들이 내려와 볼 수 있는 이런 나라를 건설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도 한 마디로 말하면,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해서 국회 의원이든지, 일반 공무원이든지, 국민에게 이르기까지 오로지 내 나라를 위해서 나라고 하는 것을 땅에 던져서 묻히겠다고 하는 희생의 정신으로 국가에 봉사할 때에만 이와 같은 나라를 이룩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나라 일을 생각할 때마다 밀 한 알의 정신을 가진 이들을 요구하는 방면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정신을 가지는 사람들을 부르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 제 눈앞에 전개되는 것은 농촌과 어촌이올시다. 우리는 지금 다 도회에 살거니와 우리 도회는 그래도 외국의 원조도 있고, 여러 가지 활동으로 말미암아 공장도 재건되고, 부흥 주택도 꽤 건축되었고, 또한 고층 건물도, 이 곳 저 곳에서 점점 건설이 되어서 재건되어 가는 그런 느낌이 있습니다. 그렇지마는 여러분이 아십니다. 농촌에 가 보십시오. 농촌이야말로 피폐할 대로 그냥 피폐해 있고, 거기는 외국의 원조가 미치는지 아니하는지, 보통 사람은 도무지 알 수 없는 형편입니다.
사실 농촌에서 살 수 없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무계획적으로 도시로 집중되는 까닭에 우리 도회는 더욱 혼란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농촌과 어촌이야말로 사실 그들을 위해서 내 생명 전체를 바치려고 하는 밀 한 알의 정신을 가진 일꾼을 부르고 있습니다.
교역자이면서 알사스에서 일한 오벌린 같은 목사, 덴마크로 말하면 구룬드비 같은 목사. 과연 농촌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바치겠다고 하는 일꾼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들을 전도하고 이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고 이들의 권익을 보호해 주고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서 생명을 구할 사람을 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제 안계(眼界)에 또한 떠올라 오는 방면은 근로 대중이올시다. 바로 우리가 며칠 전에 제二회 노동절을 지켰습니다. 제가 보는 대로 해방의 혜택을 가장 적게 받은 우리 사회에 어떠한 특별한 층이 있다고 한다면 아마 이 근로 대중인 것 같습니다. 이들은 자기가 생산하지마는 생산하는 것을 자기들은 입지 못합니다. 이들은 좋은 건물을 짓지마는 자기들은 그 건물 속에 살지 못합니다.
이들의 권익을 옹호해 주고, 이들의 사상을 선도해 주고,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서 이들의 생명을 구원하는 것은 우리 나라에 있어서 초급 한 문제 가운데 초급 하다고 생각합니다. 밀 한 알의 정신을 가진 일꾼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 앞으로 우리 한국 교회에서도 더욱이 근로 대중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아니하면 아니 될 줄 압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들을 도와주고 이들의 노동 운동도 같이 협력하지 않으면 아니 될 줄 생각합니다. 이 앞으로 이들의 사상 동향이 어떻게 되느냐고 하는 것은 우리 국가 장래에 막대한 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한 제 안계에 떠올라 오는 방면은 윤락 여성들이올시다. 전쟁 미망인으로 할 수 없이 타락한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일신상 불행으로 말미암아 타락되는 사람도 많이 있었습니다. 농촌에서 직업을 구하기 위해서 도회에 왔다가 악한 사람들의 유혹을 받아서 일생을 망쳐버리고 윤락(淪落)에 빠진 여성들도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와 같은 전쟁과 혼란 가운데서 이 희생된 여성들의 운명이야말로 얼마나 불쌍한지 알 수 없습니다. 이들 자신이 불쌍할뿐더러 이들의 존재는 마치 암과 같아서 우리 사회를 각 방면으로 썩히고 있습니다. 우리 서울의 거리를 더럽히고 도회를 더럽히고 있습니다.


밀 한 알의 정신을 가지고 이들을 구호하고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이들을 선도할 만한 특별한 일꾼들을 우리 사회는 부르고 있습니다. 경찰들이 자기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경찰의 능력으로만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부의 힘으로만 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특별한 사명감을 받아서 밀 한 알이 되어서 이들을 위하여 희생하겠다는 정신이 있는 인물이 없이는 이런 사업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땅에 떨어지려는 밀 한 알을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그 다음에 제 눈에 떠오르는 장면은 - 다른 말이 없어 이런 말을 씁니다 - 윤락 된 거리의 동포들이올시다. 이 가운데는 10대의 소년 소녀를 비롯해서 60대 70대에 이르는 말하자면 결식을 업으로 하는 동포들이올시다. 전쟁과 혼란한 시대에 물론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마는 오늘날처럼 이렇게 수가 많은 때는 아마 저의 경험으로는 처음 같습니다. 이런 수가 얼마가 많아지는지 어떤 때에는 혼례식을 하고 잔치를 하려면, 손님보다 이런 사람들이 거의 배는 많아지는 모양입니다. 그저 얻어먹으려 오는 사람, 여러분도 물론 경험하지마는 예배당에 오려면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이 가로막아서 예배당 대문을 지나올 수 없을 지경입니다. 이런 문제도 단순히 우리가 정부만 바라 모아서는 아니 됩니다. 특별히 우리 민주주의 나라에서는 국민들이 자각을 해서 이들을 구호하고, 이들을 도와주기로 하고, 이들을 위해서 내 생명을 바치겠다고 하는 이런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일어나야 됩니다.


그 다음에 제 안전에 떠 올라오는 이들은 나병 환자와 정신병 환자들이올시다. 소록도가 있고 몇 곳에 나병 환자를 위한 병원이 있지만 아직도 많은 수가 구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정신병자를 구호할 병원은 제가 신문에 보니까 우리 정부에서 두 곳을 만든다는 말만 들었지 아직 만들었다는 말도 못 들었습니다. 이런 나병 환자들과 정신병 환자들은 국가에서도 구호하지 못하고, 교회에서도 구호하지 못하니까, 거리로 사방으로 돌아다닙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심지어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사실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방면에도 요컨대 이런 이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내 생명을 온전히 바치려고 하는 밀 한 알의 일군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면수 보호 문제(免囚保護問題)도 큰 문제입니다. 절도를 하고 강도를 하여 한번 형무소에 갔다 온 사람입니다. 아무리 개준을 하고 나왔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동정하는 사람이 없고 동정하는 기관이 없으니까 다시 죄를 짓고 맙니다. 장발장처럼 한번 죄 짓고, 또 두 번 죄 짓고, 세 번 죄 짓고, 일생을 형무소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와 같은 문제도 오직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이들을 위해서 생명까지도 바치려고 하는 밀 한 알의 전신이 있는 일군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번에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는 졸업생들이 많이 있는 줄 압니다. 물론 오늘날 정당한 취직을 하려면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실 생각하면 한국처럼 일할 데가 많은 곳도 없습니다. 분명히 기억할 것은 내가 그냥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고 그냥 있으면 한 알 그대로 있습니다.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어떠한 방면이든지 내가 그 방면에 들어가서 내 일생을 온전히 바치면 생명까지 희생하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방면에 있든지 우리가 두 가지 정신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그냥 한 알 그대로 있는 정신, 나 중심, 자기 중심, 이기주의, 나만 사를 정신으로 살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방면에 들어가든지 그 방면에 들어가서 땅에 떨어지는 밀 한 알의 정신으로 살수도 있습니다. (1960년 3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