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인간의 죄와 십자가 (이사야53:1-9)

새벽지기1 2017. 11. 22. 06:49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도다.』(사53:5)

오늘 아침, 인간의 죄와 십자가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찌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는가? 이사야 선지자는 일찍이 이와 같은 말씀으로 예언하였습니다.『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여호와께서는 우리 머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켰도다.』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말씀으로 로마서 5장 6절에 기록하였습니다.『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아니한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 2장 24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설명하였습니다.『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세례 요한 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하신 말씀이『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요리 문답에 있는 말씀과 같이 아담이 죄를 범한 이후에 그 모든 후손들은 그의 죄와 그의 부패한 성품을 계대(繼代)하였고, 또한 자기 자신들이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있는 말씀과 같이 의인은 없나니 곧 하나도 없다고 하는 이와 같은 비참한 상태에 모든 인간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죄에는 값이 있습니다. 죄에는 삯이 있습니다. 죄의 값은 여러 가지 비참한 것이 많지마는 한마디로 말하면 죄의 값은 사망이올시다. 육신과 영혼의 영원한 죽음이올시다. 하나님과 멀리 떠나서 원수가 되고, 항상 하나님의 주주 아래에 있게 되고, 영원한 멸망 곧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이 어떻게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면 그저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면 그 뿐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공의의 신이올시다. 그와 같이 되면 하나님의 공의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또한 그와 같이 되면 이 우주의 도덕적 질서가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도 죄 사함을 얻는 길은 오직 어린양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자기의 죄를 고백한 후에 그 양을 잡아 피를 흘리고 제사를 드림으로 죄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피 흘림이 없이 죄 사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능히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할 수 있겠는가?
첫째로, 이런 분은 사람 가운데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죄를 지은 까닭으로 자기의 죄를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의 죄까지 대속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반면에 둘째로 생각해 보면, 이런 사람은 아무래도 사람이어야 하겠고 또한 모든 인류를 대표할 만한 자격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여기에 여러분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말씀이 육신을 입는 - 신학상의 술어로 수육(受肉)이라고 합니다 - 수육의 비의(秘意)가 있는 것입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육신을 입으셔서 참 하나님과 참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둘째 아담, 곧 전 인류의 대표로 어린양이 되어서 십자가의 희생의 제단을 드림으로 만민의 죄를 속량하신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시었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첫째는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시고,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고, 셋째는 인간의 죄를 용서하셔서 구원의 길을 열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뜻입니다.


오늘 아침, 이렇게 뜻 깊은 십자가를 바라보십시다. 마음 눈을 열어서 골고다를 바라 모시기를 바랍니다. 골고다 산 위에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은 십자가가 높이 서 있습니다. 먼저 주의 얼굴을 보십시오.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가시에 찔린 그 이마에서는 피가 점점이 흐릅니다. 머리가로도 피 흘린 흔적이 보입니다. 그리고 또한 두 손을 보십시오. 오른 손과 또한 왼손을 보시기 바랍니다. 두 손 다 높이 십자가에 못이 박혔습니다. 손바닥을 꿰뚫어 큰못이 예수님의 부드러운 상을 찌고 뼈 사이에로 뚫려서 나무에 깊이 박혔습니다. 못 박힌 자리에서 피가 점점이 흐릅니다. 몸이 늘어질수록 살이 점점 찢어지고 따라서 피가 더 많이 흐릅니다.
두 발을 바라보세요. 두 발들은 역시 큰못으로 꿰 뚫렸고 그 못은 나무에까지 깊이 박혔습니다. 못 자국으로 선형이 줄줄이 흐릅니다. 그리고 그 옆구리를 바라보십시오. 무지한 군인은 날선 창끝을 가지고 우리 주님의 부드러운 가슴을 창으로 찌릅니다. 그 창끝이 나오자마자 뜨거운 선혈이 물과 같이 쏟아집니다. 주님의 얼굴은 점점 창백하여집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이런 고통은 한 시간만 계속된 것이 아닙니다. 두 시간만 계속된 것이 아닙니다. 세 시간만 계속된 것이 아닙니다. 네 시간, 다섯 시간, 여섯 시간, 우리가 성경에 있는 대로 계수해 보면, 적어도 여섯 시간을 십자가 위에서 끝까지 이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고통은 참형보다 더 심하고 교수형보다 더 심합니다. 문자 그대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친히 맛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육신의 고통을 당하든지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보다 먼저 그 고통을 당하시었고 우리를 동정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십자가의 고통은 단순히 육신의 고통만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의 정신적 고통은 이보다 더 심하였습니다. 원수들은 조롱을 하였습니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그 곳에서 내려와서 그들로 하여금 믿게 하라고 비웃었습니다.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들도 자기의 머리를 흔들면서『아,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짓는다고 하는 자여, 네가 그 자리에서 내려와서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라.』고 조소를 거듭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적은 고통이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가장 큰 고통은, 하나님께서도 우리 주님을 버리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죄가 그의 어깨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주님께로부터 그 얼굴을 돌리셨습니다.『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이요,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 부르짖음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홀로 담당하시고 친히 죄가 되어서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를 받는 그 시간에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말씀이올시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죽기까지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마지막에 죽으셨습니다. 사망의 쓴잔을 찌꺼기까지 다 마시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만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시고 마침내 죽으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요,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주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낳음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번 다시 우리가 십자가를 바로 봅시다.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그 어깨에 짊어지셨던 우리의 죄도 같이 죽었습니다. 내 죄가 거기 달려서 주님이 죽을 때에 같이 죽었습니다. 죽은 예수와 같이 우리의 죄도 죽었습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죄의 형벌을 십자가에서 다 끝을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모든 죄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때부터 우리는 죄에 죽고 의에 대하여 살기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온 인류에게 구원과 생명의 길이 열렸습니다. 이렇게 죄에 대한 책임뿐만 아닙니다. 우리를 다스리는 죄의 권세도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죄에 속아서 죄의 마력에 끌려갔습니다. 그렇지마는 우리는 죄가 이렇게 흉악하고 죄가 우리 주님까지 죽게 한 것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죄라고 하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마력이 온전히 없어졌습니다.


제가 듣건대 전에 어떤 거짓 선지자가 자기는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외치면서 자기의 말을 들으라고 부르짖으면서 그의 이마에는 언제든지 은으로 만든 둥글 한 것으로 가리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것으로 왜 가리우고 아니냐고 물어 보면, 만일 그것을 떼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빛이 나타나서 그 빛을 보는 사람이 눈이 어두워서 소경이 되는 까닭으로, 부득이 그곳에 은으로 붙였다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잘 때에 그를 따라 가던 사람이 그것을 한번 뜯어보았습니다. 몰래 뜯어보니까 그 이마에는 다른 것이 아니고 문둥이 흔적이 있더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지 못할 때에는 죄가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죄에 속았습니다. 죄의 마력에 끌렸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본 우리는 죄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추악하고 우리 주님까지 이와 같은 고통을 받게 하였다는 죄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죄의 다스리는 권세가 역시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를 다시 한번 바라볼 때에,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 우리 주님의 그 고난받으신 것으로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 즉 자기의 살을 찢고 자기의 피를 흘려서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 볼 때에는, 우리는 죄에는 죽었지마는 의에는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예배당 뜰에 나가서 서울 사방을 돌아보면 여러 가지 것이 보입니다. 삼각산이 보이고, 인왕산이 보이고, 여러 가지 고층 건물이 많이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밖에 나가서 그것을 먼저 보지 말고 오늘 같이 해가 잘 비칠 때에 해를 한참 쳐다보세요. 그러다가 그 다음에 사방을 둘러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아니합니다. 해를 본 눈은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아니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십자가에서 비치는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자기는 십자가에 못 박고 원수 된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하는 그 기도의 음성,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다가 그 다음에 세상 것을 바라보십시오. 세상 것이 보이지 아니합니다. 전에는 향락이 귀해 보였지마는 향락이 보이지 아니합니다. 전에는 물질이 그렇게 귀해 보였지마는 물질도 보이지 아니합니다. 전에는 세상의 지위나 권세 같은 것들이 그렇게 귀해 보였지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한참 바라보다가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에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죄에는 죽고 의에는 살아서 오직 십자가를 바라 본 사람의 눈에는 오직 십자가만이 밝은 빛으로 그 심령을 채우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 오직 하나님의 의, 오직 하나님의 뜻이 그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와 십자가의 관계를 오늘 생각했습니다. 그 말씀은 이사야 53장 5절에 이미 이사야가 예언한 그대로입니다. 이제 제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께서 저와 같이 이 절을 한번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절을 읽을 때에「우리」라고 하는 말을 넣어서 한번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찔림은 나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나의 죄악을 인함이요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내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얻었도다.』
여러분, 이 말씀을 다 이대로 믿습니까? 이대로 믿는 이는 이대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주로 영접하는 이는 과거에 어떠한 허물과 어떠한 죄가 있던지 다 용서함을 받고, 죄에는 죽고 온전히 의에는 사는 새 생활이 이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성신께서 우리 각 사람의 마음속에 이 은혜를 더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1960년 3월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