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평화의 왕 (누가복음19:28-40)

새벽지기1 2017. 11. 27. 06:37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눅19:38)

이 말씀은 예수 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에 제자들과 모든 옹위(擁衛)한 무리들이 노래를 부른 찬송이올시다.
오늘은 부활절 전 주일이올시다. 옛날부터 흔히 오늘을 종려주일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지키는 풍속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한 날을 기념하는 날로 특별히 지키기를 원하는 까닭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여리고로 오셨겠고, 여리고에서 다시 험한 산골짜기 길을 거슬러 올라가서 베다니라고 하는 작은 마음에 이르게 되었겠고, 그 다음에 벳바게라고 하는 마을에 가기 전에 예수님께서 두 제자들을 특별히 보내서 맞은 편 마을에서 나귀 새끼를 구하여 오도록 한 것이올시다. 그래서 이 벳바게라고 하는 작은 마을에서 예수 님께서 그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유월절이 가까워 온 까닭으로 예수님 제자들뿐만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던 대입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감람산을 다 넘으셔서 겟세마네 동산 기슭으로 내려가며 기드론 시내쯤에 가게 된 다음에는 무리의 수가 더욱 많아진 모양이올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시온산 언덕으로 올라가시면서 그리고 예루살렘 성에 가까이 나가시게 될 때에 대동한 여러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혹은 나무 가지를 땅에 펴며 어린이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호산나로다 다윗의 자손이여』혹은『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는 왕이여』라고 노래를 계속하여 부른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게 되니 성경에 기록한 대로 온 성이 소동하면서 이가 누구냐 라고 물어 보았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때에 제자들과 여러 사람들은 이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오신 선지자 예수라고 대답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지금도 매년 이 종려 주일에는 이 벳바게라고 하는 작은 마음에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 곳에서부터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의 찬송을 부르면서 감람산을 넘고 기드론 시내를 넘어서 예루살렘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골고다가 있는 곳, 예수님의 시체를 주었던 곳에 세운 기념 예배당까지 가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풍속이 있습니다.


독일에 한 작은 도시 오베라멀규라 하는 곳이 있는데 이 도시는 작은 도시이지마는 예로부터 벌써 매 십 년마다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신 것을 연극으로 실연을 해서 세계의 주목을 끌게 되었습니다. 바로 금년도 1960년으로서 이 작은 도회지에서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예수님께서 어떻게 고난을 받으시고, 어떻게 장사되시고, 어떻게 부활하신 것을 실연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구경시키게 되는데 이 성극(聖劇)이 아주 유명하게 되어서,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관람객이 이 때에 이 작은 도회로 모인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수난극도 역시 오늘인 종려 주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한 것으로 시작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론 부활 주일 아침으로 그 극을 마칠 줄 생각합니다.
이 종려주일에 특별히 주목되는 것 한 가지는 예수님의 태도입니다. 이 때까지는 예수님의 가지는 태도는 항상 자기를 숨기려고 하는 태도였습니다. 별로히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는 태도가 보이지 안았습니다. 가령 병을 고치신 후에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예 이 소문을 내지 말라고 심심 부탁을 해서 보낸 적이 허다합니다. 어떤 때에는 많은 무리가 와서 예수를 보기를 원하고 예수의 교훈을 듣기 원하는 까닭으로 제자들이 조용히 기도하시는 예수님께 나와서 무리가 찾는데 어서 돌아 가시자고 하는 부탁을 하였지마는, 예수님께서는 그대로 하지 아니하시고 주가 다음 동리에도 가서 전도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오히려 다음 동리로 피하여 간 사실도 없지 않아 있는 것입니다. 보통 예수님은 자기에 대하여 이와 같은 태도이었습니다.


이 종려주일에 대한 기록을 제 복음서에 있는 대로 자세히 읽어보면, 이 날의 예수님의 태도를 그와는 정반대의 태도인 것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베다니와 벳바게 마을에 가까이 와서는 자기가 제자들을 맞은 편 마을로 보내면서, 어떤 곳에 가면 아직 한번도 타보지 못한 나귀 새끼가 있을 터인데 그 나귀 새끼를 끌어 가지고 오라고 친히 명령하셨습니다. 나귀를 가져온 후에 제자들의 겉옷을 벗어서 나귀등에 얹으매 자기가 친히 그 나귀에 타셨습니다. 그리고서 많은 무리들이 혹은 앞에 서고 혹은 뒤에 서며 혹은 좌우에 서서, 호산나 찬송을 부르며 여럿이 환호하는 가운데, 조금도 사양하시지 아니하시고 그 모든 찬송을 받으시면서, 자기가 나귀를 타고 당당한 태도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사실입니다.
그뿐만 아니고 이렇게 제자들이『찬송하리로다 왕으로 오시는 이여』라는 말로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고 어떤 사람은 도에 넘치는 찬송인 줄로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향해서 하는 말이 그 제자들을 책망하시기를 바란다고 하며, 잠잠하게 하여 달라고 부탁을 하게 될 때에, 예수님의 대답하신 말씀은『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를 지르리라.』그 사람들이 이렇게 찬송하는 것을 그치라고 하면 예루살렘 성곽에 있는 돌과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모든 돌들이 일시에 소리를 지를 것이라는 말씀으로 대답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주님의 태도에 대하여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대한 진리를 그의 교훈과 이적을 통하여 계시하셔서, 말하자면 예언자로서의 메시야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렇지마는 이제는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입성한 이 때에는 왕으로서의 메시야를 예수님께서 친히 나타내신 사실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님께서 나귀를 타시게 되었습니다.
『시온의 딸에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탓도다.』기록한 이 말씀대로 나귀를 타시게 되었습니다.『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왕으로서의 찬송과 영접을 친히 받으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입성하셔서 한 주일 동안 성전을 중심하고 나흘 동안 가르치시다가 마지막에 빌라도의 법정에 서게 될 때에 빌라도가 심문하는 가운데 이런 말로서 심문하였습니다.『네가 그러면 왕이야?』이렇게 단적으로 물을 때에 예수님께서 조용히 그러나 엄숙히 대답한 말씀은『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면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 하려 함이로다.』예수님께서 분명히 자기가 왕이라고 하는 것을 빌라도와 다른 듣는 사람 앞에서 선포하셨습니다.
무지한 군인들은 예수를 모욕하고 조롱하기 위하여 홍포(紅袍)를 입혔습니다. 그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씌웠습니다. 그 손에는 갈대를 잡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홍포, 이 가시 면류관, 이 갈대는 절대로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왕 되시는 메시야는 이 세상에 오셔서는 나귀새끼는 타셨고 홍포를 입으셨지마는 그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신 왕이올시다. 예수 님은 왕이 되십니다.


예수 께서는 하나님의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선지자만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어린양이오, 대 제사장만 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되셔서 모든 천국 백성을 다스리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신구약 전체를 통해서 분명히 메시야에 대한 이 진리를 가르쳐 준 것을 우리가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9장 6절에는『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奇妙者)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기록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23장 5절에『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라는 말씀으로 기록이 된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예수를 메시야만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왕으로서의 메시야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래서 나다나엘이 예수를 만날 때에 예수님께서『내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내가 이미 너를 보았다.』고 하는 그런 말씀을 하실 때에 나다나엘이 과연 예수께서 메시야인 것을 믿고 곧 고백했습니다.『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그 때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야가 왕으로 오실 것을 믿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5장 25절에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불가불 왕 노릇 하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의미의 왕이 되시는가?


첫째는 신령한 의미에서 예수 님께서는 천국을 세우시고 천국을 다스리는 왕이올시다.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시기 직전에 예수님께서 모든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네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내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분부한 것을 다 가르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크신 권세를 가지시고 하나님 나라 건설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보이는 부분이 되는 이 교회의 머리로서 교회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어디든지 하나님 나라가 미치는 곳에는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셔서 다스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천국이 건설 될 때에는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는 신령한 영적 통치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 뜻만은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곧 삼위일체의 한 분으로서 온 우주와 인류의 역사까지 다스리는 주님이올시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지해서 온 우주를 다스리고 인간의 역사까지 통치하십니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를 통해서 벌할 자를 벌하시기도 하고, 축복할 자를 축복하시기도 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며, 택한 자를 불러 구원하시고, 교회를 보호하여 주는 것이 또한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의 통치자가 되는 것을 또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세상 끝 날에는 그리스도의 이 왕권을 온전히 세워서 요한 계시록 11장 15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세상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할 수 있는 그러한 때는 반드시 오게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는 천국을 완성하시고 이 천국을 영원히 통치하시는 왕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 17장 14절에 이런 말로 기록되었습니다.『어린양은 만 유의 주시오 만 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저희」는 악한 세력을 가리켰습니다.「악한 세력을 이기실 터이요.」또한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하신 그 말씀과 같이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고 최후에 영원하신 통치자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는 만 왕의 왕이올시다. 비록 세상에 오실 때에 가장 가난한 가정에 나시고, 가장 보잘것 없는 도회에 나시고, 세상에 잠깐 동안 계실 때에 갖은 고난을 당하시고, 마지막에 십자가에 죽으셨지마는,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이 십자가를 통해서 만 왕의 왕이 되시는 것입니다.


종려주일은 이와 같은 만 왕의 왕 되시는 예수를 영접하는 날이올시다. 예수님은 옛날 멜기세덱과 같이 의의 왕이요. 또한 평강의 왕이올시다.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실 때에는 먼저 의가 있습니다. 먼저 죄를 없이 하여 주시고, 깨끗케 해서 의롭게 하시는 통치를 하십니다. 먼저 깨끗케 하신 후에 참된 평강을 주시는 평강의 왕이 되십니다.
여러분, 오늘 아침, 우리가 이 만왕의 왕이 되시고, 평강의 왕이 되시는 예수를 영접합시다. 이와 같으신 주님은 우리의 마음 문 밖에 서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고요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과연 우리의 마음 문을 열고 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속에 왕으로서 영접하셨습니까? 우리 가운데 한 분이라도 아직까지 이와 같은 주님을 내 마음 문 밖에 세워놓고, 그냥 내 마음속에 나 혼자 있어서 내 마음의 나라를 주장하는 분은 없습니까?
우리 가운데 예수님을 조금 영접하기는 했지마는 마음의 중심 되는 왕 되신 예수님을 보좌에 모시지 아니하고 아직까지 마음 한 옆 구석에 예수를 세워 둔 분은 없습니까? 마음의 중심인 그 보좌를 지금 누가 다스리고 계십니까? 과연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고 계십니까? 아직도 여러분의 욕심과 정욕과 온갖 죄악이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고 계십니까?


종려주일은 만 왕의 왕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날이올시다. 오늘, 우리가 마음 문을 넓게 열어 놓고 이 주님을 우리 중심에 영접하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두 가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먼저, 여러분의 마음에 가 있게 하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깨끗케 하여 줍니다. 그 다음에는, 여러분의 마음에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 참된 평화를 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 문을 넓게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셔서 내 마음을 다스리게 하는 이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의 가정은 어떠합니까? 우리 가정에서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정의 왕으로 영접하였습니까? 과연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정의 주인이 되어서 우리를 다스립니까? 제가 작년에 마닐라에 가서 어떤 교회에서 설교하고 그 교회 장로요, 또 유명한 변호사 가운데 한 분인 어떤 분의 집에 초대받아 갔습니다. 그 집안에,『예수는 우리 짐의 주인이라.』하는 말을 영어로 아름답게 새긴 패를 붙인 것을 제가 보고 왔습니다.
과연 예수 님께서 우리 가정의 왕으로서 우리 가정의 왕이 되셔서 우리를 다스리십니까?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의 왕으로서 여러분의 가정의 보좌에 앉아 계십니까? 오늘 이 종려주일에 우리 교회의 가정마다 온전히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 가정의 왕이 되시고 주인이 되셔서 우리 가정을 다스리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가정에 대해서도 두 가지 결과를 가져옵니다.
먼저, 우리 가정을 의롭게 하십니다. 죄를 소멸해서 깨끗케 합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 가정에 참된 화평과 평강을 자져옵니다. 여러분의 가정 가운데 화평하지 못한 가정이 있습니까? 항상 불평이 충만하고 항상 불만이 있는 그런 가정이 있습니까? 아마 예수님께서 그런 분의 가정에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온전히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 가정의 주인이 되게 하시고 왕이 되게 하셔서 우리 가정의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면 의와 평강이 우리 가정에 항상 있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오늘 이 종려주일에, 이 서울에 들어와서 우리 서울의 이 백만 동포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성의 왕이 되시고 주인이 되셔서 이 성을 다스린다고 하면, 이 서울이 어떠한 서울이 되겠습니까? 지금은 이 서울은 그저 범죄와 불안과 공포와 온갖 추악한 죄악으로 가득한 도회라 되었습니다.
만일 우리의 이 서울이 그리스도를 온전히 영접한다고 하면, 이 서울에 대해서도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첫째는 의로운 성이 될 것이요, 죄가 없어질 것입니다. 깨끗한 서울이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참된 화평과 평강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 민족 전체, 우리 온 나라가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나라의 진정한 왕이 되시고 우리 나라를 다스린다고 하면, 우리 국가 전체에 의와 평강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종려주일은 그리스도를 우리 왕으로 영접하는 주일입니다.


제일 먼저 아프리카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세상을 떠난 리빙스턴이 바로 세상을 떠나기 전날 아침, 아니면, 그 날 아침에 마지막 일기를 남긴 것이 있는데, 거기에 적혀 있는 간단한 기도 가운데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 것이 있습니다.『오! 내 주여, 내 왕이여.』이런 말로 기도를 했습니다. 리빙스턴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주요, 자기의 왕으로 모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고 충성을 다 하셨습니다.
오늘 이 의의 깊은 종려주일, 우리 하나 하나가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왕으로 영접하고, 우리 온 나라가 그리스도를 왕으로 영접해서, 그리스도를 높이고,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고, 그리스도에게 충성을 다 하는 축복이 같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1960년 4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