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강도의 회개와 구원 (누가복음23:26-43)

새벽지기1 2017. 11. 24. 06:5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오늘 아침, 다시 우리 마음의 눈을 열어서 십자가를 바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갈보리 산 위에는 십자가가 셋이 서 있었습니다. 중앙에는 그리스도께서 달리셨고 좌우에는 행악자(行惡者), 혹은 전의 번역대로, 강도가 달려 있었습니다. 일 점의 흠이 없고 죄가 없는 그리스도께서 두 강도 사이에 같이 달려서 죽는다고 하는 것은 우리 사람의 생각에는 곧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모순이 어디 있을까? 이런 역리(逆理)가 어디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천리(天理)에 어그러지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됩니다.
그렇지마는 이것도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우연한 일은 아닙니다. 이것은 예언의 성취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12절에 보면, 그는 범죄자 중 하나로 재앙을 받겠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대로『내가 세상에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오 죄인을 불러 구원하려 왔노라.』고 말씀하신 사명에도 부합되는 것 같습니다.
그뿐 아니라 일찍이 바리새인들이 비난하는 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말하였는데 그것은 그대로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이라고 하는 것을 나타낸 말입니다. 십자가상에도 그 말대로 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상에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죽으셨을 뿐더러 죄인과 같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이렇게 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주님께서는 그의 육신 생활의 최후 순간에도 죄인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 죄인은 보통 죄인이 아닙니다. 행악자 입니다. 다시 말하면 살인 강도의 죄인입니다.


보십시오. 죄인을 위하여 최대의 희생을 드리시는 주님, 최후 순간에도 죄인을 구원하시는 우리 주님의 사랑, 죄인에 대한 그의 간절한 기도, 우리 주님은 죄인들을 위하여 그의 피의 마지막 점까지 흘리셨습니다. 그의 생활의 최후 순간까지 죄인을 구원하시는데 사용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죄인에 대한 이과 같은 사랑을 깨닫습니까? 우리가 죄인에 대한 그의 이와 같은 지성을 얼마나 알고 십자가를 바라봅니까? 오! 주여, 우리의 눈을 열으소서. 이 위대한 주님의 십자가를 깨닫고 죄를 회개하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주님의 우편에도 강도가 달렸고 주님의 좌편에도 강도가 달렸습니다. 이 두 강도는 얼핏 볼 때에 같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우선 얼굴이 비슷한 줄 압니다. 보기에 흉악합니다. 그 성질이 악합니다. 같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같이 체포되었습니다. 같은 재판정에서 재판도 받았습니다. 같이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같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올라왔습니다. 같이 십자가에 박히어 높이 매달렸습니다. 처음에는 다 같이 예수를 비방까지 한 모양입니다. 어떤 복음서에는 강도들도 비방했다고 기록한 데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십자가위에서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는 구원을 얻어 낙원에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는 육신과 영혼이 아울러 영원한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어깨동무로서 같은 인생 길을 걸어가다가도 갈리는 수가 있습니다.
이래서 주님의 하신 말씀과 같이 두 여인이 맷돌을 가는데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그냥 두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들에서 밭을 가는데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그냥 두었다고 말씀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는 회개하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죄는 같습니다. 악하기도 같습니다. 같은 범죄를 하였습니다. 같은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는 회개하고 하나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회개한 강도의 모습을 보십시오. 다른 하나는 비방을 합니다. 그리스도를 향해서『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그러면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이와 같은 말로 같이 십자가에 달려서 비난을 하였습니다. 이 때에 한 강도가 대답한 말을 보십시오. 그는 다른 강도를 책망했습니다.『네가 동일한 정 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그 강도를 책망했습니다. 이것을 보니까 이 강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회개한 증거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회개한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하니 하고 하나님만을 두려워합니다. 이 회개한 강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하나님을 아직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이 회개하지 아니한 강도를 엄히 책망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계속해서 하는 말이『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벌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자기의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자기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報應)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고 하며 자기의 죄가 얼마나 악한 것을 깨닫고, 거기는 사형이 마땅한 것을 깨닫고 이대로 고백을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도 고백을 하고, 예수 님 앞에도 고백하고, 그 때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많은 공중 앞에서, 말하자면 공중 고백을 하였습니다. 회개한 사람의 둘째 특징은 자기의 죄를 깨닫고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아닙니다. 이 사람이 계속해서 하는 말이 예수 님을 가르치면서『이 사람이 행한 일은 옳지 않은 것이 없나니라.』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 하였습니다.『우리는 이와 같이 죄를 범해서 형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마는 여기 가운데의 이 분으로 말하면 이 분이 행한 것은 무엇이든지 옳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느니라.』예수 그리스도의 결백하신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무흠(無欠) 하신 것을 변호하고 증거 하였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을 변호한 사람은 이 강도뿐이었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은 다 달아났습니다. 여자들이 몰래 와서 멀리 섰지마는 무서워서 감히 입도 열지 못했습니다. 많은 바리새인들과 군인들이 돌아서서 예수를 힐난하고 예수를 모욕하던 때입니다. 그러한 때에 오직 이 회개한 강도 한 사람만이 이 예수님의 행한 것은 옳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증거 했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께 향하여 얼굴을 돌리면서 그가 하는 말이『예수여 당신의 나라로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기도했습니다. 당신의 나라로 임하실 때에 자기를 생각하여 달라고 한 것을 보니 이 강도는 예수께서 과연 그리스도요, 메시야인 것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분명히 믿고 이 다음에 하나님의 나라로 강림하실 때에 자기 같은 죄인이라고 생각하여 주옵소서 하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회개한 사람의 또 한 가지 특색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다메섹 길로 가다가 예수를 만나 회개한 다음에, 제일 먼저 한 것이『주여, 내가 무엇을 하오리까?』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이 강도도 기도하였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되어서 이렇게 회개를 했겠습니까? 좀 생각해 보셨습니까? 우선 이 강도가 십자가 위에서 회개할 때에 우선 다른 사람의 권면을 들었다든지 설교한 것을 듣고 회개한 것은 아닙니다. 그 때에 이 강도에게 권면하였다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강도에게 설교한 이, 누가 있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강도는 이런 권면 한 마디 안 듣고도 회개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어렸을 적부터 주일학교에 다니고 커서 이따금 예배당에 나와서 설교를 줄곧 들으면서도 아직까지 회개하지 않은 죄인이 한 사람이라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알 것은 이 다음에 심판대 앞에 가서 이 회개한 강도가 그 사람을 정죄 할겁니다.『나는 설교를 한번도 안 듣고, 권면을 한번도 은 듣고 십자가상에서 회개했는데 너는 어떻게 되어서 주일학교에 다니고 교회에 가서 설교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느냐?』


자, 보십시오. 이 강도가 회개한 것은 남이 다 회개하니 자기도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혹 부흥회 할 때에, 회개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다 나가서 회개하고 예수 믿겠다고 하니까 같이 덩달아서『나도 회개하겠습니다.』이렇게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이 때에 강도는 혼자 회개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하나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분위기가 아닙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 제사장, 군인들, 전부 예수를 미워하고, 모욕하고, 능욕하고, 핍박하던 아주 냉혹한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어떻게 이 강도는 회개했습니까?
여러분, 이 강도는 그런 분위기 가운데서도 회개했는데, 여러분 가운데 이렇게 영락교회에 출석하면서, 이렇게 수천 명이 같이 모여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같이 기도하고, 같이 설교를 들으며 이런 분위기 가운데서도, 회개하지 않는 죄인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고 한다면, 이 사람도 역시 이 다음에 심판대 앞에 가서 이 회개한 강도에게 정죄를 받을 것입니다. 정죄 받기 전에 회개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무엇이 이 강도로 하여금 회개하게 했습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성경이 침묵을 지킵니다. 분명히 알 서 없습니다. 그러나 추측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 이 추측은 거의 확실하다고 봅니다. 이 강도가 회개하게 된 동기는 이 강도도 같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올 때에 예수님과 같이 올라왔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같이 못 박혔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있을 때에도 몇 시간 같이 달려 있었습니다. 이 몇 시간 동안에 이 강도는 예수님의 얼굴을 모았고 이따금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올 때에 이 행악자들은 아마 욕을 하며 저주하면서 그 얼굴을 찡그리고 말할 수 없는 불평을 가지고 그 십자가를 지고 올라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얼굴을 보면, 같이 십자가를 지고 올라오지마는 조금도 악의가 보이지 아니하고, 조금도 불평이 보이지 아니하고, 조금도 흉악한 빛이 보이지 아니하고, 예수 님의 얼굴은 천사 같은 얼굴입니다. 많은 여인들이 예수님을 보고 우니까 오히려 하시는 말씀이『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는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집을 위하여 울라.』고 하였습니다. 골고다 위에 올라온 후에 십자가를 먼저 놓고 그 위에 뉘어 놓고서 손바닥에 못을 탕탕 박을 때에 이 행악자들은 아마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고 저주를 하고 별의별 말을 다 했을 줄 압니다.


그러나 이상합니다. 중앙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한 마디 말씀도 없습니다. 그 얼굴빛이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마지막에 십자가에 높이 달려서도 아무 말씀이 없습니다. 다만『오,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사람들이 알지 못해서 이런 죄를 짓습니다.』라고 말하실 뿐입니다. 아마 예수님 머리 위에 쓴 그 명패를 본 줄 압니다.「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 사람도 유대 사람이니까 역시 그도 메시야를 기다리던 사람 가운데 하나인 줄 압니다. 따라서 구약의 메시야에 대한 여러 가지 예언 가운데서 들은 일이 있는 줄 압니다.
혹은 이 강도의 마음속에 이사야 53장에 있는 말씀, 어떻게 메시야가 와선 만백성의 죄와 온 세상 만민의 죄를 대신해서 고난을 당하신다고 하는 이런 기억이 마음 가운데 솟아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십자가에 달렸지마는, 주님의 얼굴을 보고, 주님의 태도를 보고, 주님의 기도를 들으시고, 친히 하시는 말씀을 보고, 성경 말씀을 기억하는 가운데서, 이 강도가 회개한 줄 압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바로 바라보면 회개하지 않을 죄인이 없는 줄 압니다.


우리 신약 가운데 네 복음이 있지만 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생활의 전기입니다. 이상한 것은 다른 전기들은 그 사람의 행한 것을 마지막에 죽었다는 기록은 간단히 쓰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전기를 쓴 이 네 복음을 보면 어떤 복음이든지 거의 삼분지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어떻게 죽으셨다고 하는 죽은데 해한 기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가 바로 바라만 보면 자연히 내 죄를 깨닫고 회개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회개한 종의 축복을 잠깐 생각하고자 합니다. 이 회개한 강도는 그저 기도하기는『주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에 나를 기억하여 주시옵소서.』기도했습니다. 이 다음에 나라에 임할 때에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말씀을 보면『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오늘날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이 강도는 회개한 그 날로 낙원에 들어갔습니다. 그 날로 온전히 구원을 얻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강도는 참으로 복 받은 강도라고 말을 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아침에는 마귀하고 조반을 먹었는데 저녁에는 예수님하고 저녁을 먹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날 밤은 지옥에서 잤는데 그 날 밤은 천당에서 잤다고도 말합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 이 분은 그야말로 제트기 타고 천당에 간 모양입니다. 회개하는 그 날로 즉시 구원을 얻었습니다.


또 그것만 아닙니다. 이 강도는 예수님의 육신 생활에 있어서 최후의 친구가 되어서 십자가의 최후 고난을 받으시는 예수 님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그 사망의 고통을 당하실 때에 최후 순간에 주님의 마음을 위로해 준 이가 어디 있습니까? 제자들입니까? 여자들입니까? 아닙니다. 이 회개한 강도 한 사람 밖에 없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 날 낙원에 들어 가셨는데, 예수님께서 낙원에 들어가실 때에는 이 강도가 예수님의 첫 동무가 되어서 예수님과 같이 그 날 낙원에 들어갔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낙원에 들어가실 때에 천군 천사들이 할렐루야 찬송을 부른 줄 압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고통을 당하시더니 저렇게 악한 살인 강도를 구원해 가지고 낙원에 들어옴으로써 하나님께 큰 영광과 찬송을 드린 줄 압니다.


여러분, 그뿐만 아닙니다. 이 강도의 회개야말로 모든 죄인에게 소망을 줍니다. 이와 같은 강도도 회개하여 구원을 얻었거늘 우리가 어떠한 자리에 있든지 우리가 과거에 어떠한 실수를 하였든지 온전히 바로 회개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소망을 온 천하 만민에게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 깊이 생각하면 여기 앉은 우리도 강도와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 편으로 보면, 우리도 마음으로는 살인한 사람이요, 우리도 마음으로는 간음한 사람이요, 우리도 마음으로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도적한 사람입니다. 심각하게 생각해 보면, 우리도 이 강도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이 강도를 구원하신 것은 모든 죄진 우리에게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과거에 어떠한 실수를 하였든지 어떠한 죄를 지었든지 우리에게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과거에 어떠한 죄를 지었든지 하나님께서 기회 주시는 이 시간에, 온전히 주님의 십자가를 믿고 회개하고, 온전히 주님 앞에 죄를 자복하고, 이 시간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960년 4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