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부활한 생활 (마가복음16:1-11)

새벽지기1 2017. 11. 29. 06:5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3:1-2)

부활주일은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과거에 있어서는 역사적인 사실, 곧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올시다.
둘째는 미래에 있어서는 모든 인간의 부활과 영생에 대한 예표(豫表)와 확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날입니다.
그러나 셋째는 현재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적 부활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날입니다.
오늘 아침, 이 시간은 특별히 현재 우리 믿는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는 영적 부활에 대해서 잠깐 생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 생활은 이 영적 부활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우리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서 못박아 죽이고 같이 묻히고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변화하여 새 사람으로 살아남으로 말미암아 우리 신앙생활은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본래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 때에는 지금처럼 간단하게 세례를 베풀지 아니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푼 것을 여러분이 기억합니다. 그 때에는 세례 받는 사람이 물 속에 온전히 그 몸을 담그고 그 후에 물 속으로부터 다시 올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특별히 의미가 있습니다. 옛 사람은 물 속에 온전히 장사하고 새 사람으로 올라오는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사람은 옛 사람을 온전히 물 속에 장사하고 새 사람으로 부활하는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밀 한 알에 대한 비유도 또한 여기에 적용되는 진리가 있습니다. 밀 한 알이 먼저 땅에 떨어져 묻히고 썩은 후에 그 속에서 새 싹이 변화되어서 땅 위로 올라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 생활이란 옛 사람은 떨어지는 밀 알과 같이 땅에 떨어져서 먼저 죽어야 하고 그 뒤에 새로운 생명이 새 싹과 같이 올라와야 우리의 신앙 생활이 온전히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이와 같은 말씀으로 가르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사람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우리 믿는 사람들은 먼저 우리 육신에 속하는 모든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그 다음에 새 사람으로 살아날 때에 참된 신앙 생활이 시작된다고 하는 뜻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간절히 권면합니다.『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치욕과 안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곧 우상 숭배니라.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들이니라.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온전히 벗어 버리라.』이와 같이 우리에게 간절히 권면하여 줍니다. 우리 신자의 생활은 온전히 옛 사람을 십자가에서 못박아 죽이고 새 사람으로 영적으로 부활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 다음 마지막에 육신의 부활을 기다릴 것 없이 우리의 영혼이 먼저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말씀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우리가 과연 그리스도와 같이 죽고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한 은혜를 받았으면 위에 있는 것을 찾으라고 우리에게 권면했습니다.
새 생명은 새 법칙 아래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밀 알이 땅에 떨어져서 죽고 변화해서 새 싹으로 나온 후에는 언제든지 위를 향해서 올라가는 것이 새 생명의 원칙입니다. 하늘을 향하여 향상하는 것이 새 생명의 원리입니다. 여기, 벌레의 생활을 볼지라도 진흙 속에 있던 것으로 보기가 아주 험악하게 생긴 유충이 한번 변해서 날개도 나고 성충이 된 후에는 옛날과 같이 진흙 속에 그냥 묻혀서 살수는 없습니다. 나비가 되고 벌이 된 후에는, 맴이 된 후에는 진흙 속에서 더 계속해서 살수가 없고 맑은 공기 가운데서 살수밖에 없으며 다른 많은 꽃들과 아름다운 나뭇잎 사이로 날아다니면서 깃을 들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꼭 마찬가지로 우리가 과거에 어떠한 생활을 하였든지, 아무리 부패한 가운데 빠졌었든지, 아무리 우리 심령이 죄악 가운데서 죽었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사함을 받고 죽은 가운데서 그 영혼이 다시 부활하였다고 하면, 죽은 시체가 있던 어두움 속에 그냥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죽은 송장이 입었던 수의를 그냥 입고 이 세상에 나와 다닐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두운 환경을 벗어날 것입니다. 수의와 같이 죽었을 때에 행하던 온갖 불의와 악독(惡毒)과 음란과 부정과 협잡과 모든 이 악한 행위는 온전히 벗어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위에 있는 것을 찾아서 날마다 향상의 생활을 하는 것이 부활한 생활의 새로운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간절히 권면합니다. 우리가 과연 우리 영혼이 부활했으면 이젠 위에 있는 것을 찾으라고 하며, 아래를 보고 땅에 있는 것을 찾지 말고, 항상 위에 있는 것을 찾으라고 권명합니다. 음악 가운데도 위에 속하는 음악이 있고, 땅에 속하는 음악이 있습니다. 그림 가운데도 위에 속하는 그림이 있고, 땅에 속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문학 가운데도 위에 속하는 문학이 있고, 아래에 속하는 문학이 있습니다. 실업계에도 위에 속하게 실업을 할 수도 있고, 땅에 속하는 실업을 할 수 있습니다. 공무원이 되어서도 위에 속하는 공무원이 될 수가 있고, 땅에 속하는 공무원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떠한 방면에 살든지 우리의 심령이 과연 부활하였다고 하면, 내가 어떠한 방면에서 어떠한 곳에서 살며 활동하든지 그 속에서 위에 있는 것을 찾을 것입니다. 그 곳에서 거룩한 생활을 할 것이요, 그 속에서 참된 생활을 할 것이요, 그 속에서 화평한 생활을 할 것이요, 어디서나 진리를 찾고, 어디서나 아름다움을 찾을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과연 부활하였으면, 땅에 있는 것을 찾지 말고 위에 있는 것을 찾으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십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시는 말씀이『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이 앉아 계시 나니라.』이런 말씀으로 권면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삶으실 뿐더러 四十일만에 승천해서 하나님 우편이 앉아 계십니다. 여기 특별히 위에 있는 것을 찾으라고 하는 이유는 위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까닭입니다. 다시 말하면 위에 있는 것을 찾으라고 하는 말은, 단적으로 말하면, 언제든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 생의 최고 목표를 삼으라고 하는 그 말입니다.
물론 학생들에게 그가 이 다음에 커서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어 보면, 여러 가지 대답을 합니다.『나는 커서 과학자가 되겠습니다.』『나는 예술가가 되기를 원합니다.』『나는 정치가가 되기를 원합니다.』『나는 의사가 되기를 원합니다.』『나는 종교가가 되기를 원합니다.』여러 가지 방면에 대한 포부를 가집니다. 이것이 다 귀합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귀한 것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어떠한 사람이 되겠느냐? 어떠한 사람이 되어서 정치가가 되겠느냐? 어떠한 사람이 되어서 과학자가 되겠느냐? 위에 있는 것을 찾으라고 하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 인격의 목표를 삼으라고 하는 그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으로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서, 그리스도의 성품으로서, 그리스도의 생활로서 내 태도의 규범을 삼아서 항상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를 원하여 그리스도의 신명과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내가 정치가도 되고, 실업가도 되고, 공무원도 되고, 과학자도 되고, 예술가도 되라는 그 말이올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의 최고 목표로 삼으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또한 계속해서 권면하는 말씀이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이 절에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생의 최고 목표로 삼았으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잇느냐? 여기에 특별한 방법을 한 가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항상 그리스도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볼 때에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사도행전에 기록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과 접촉하고 내려온 후에 그 얼굴이 빛나서 감히 다른 사람들이 모세의 얼굴을 바라 볼 수 없으므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었다고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꽃이 어떻게 아름다워집니까? 항상 태양을 바라보는 가운데 혹은 붉어지고 혹은 노랗게 되고 혹은 보라 빛으로 여러 가지 아름다운 꽃이 피는 것입니다. 풀이 어떻게 자라고, 나무가 어떻게 자라고, 곡식이 어떻게 자랍니까? 항상 위를 향해서 태양을 보는 가운데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라고, 곡식이 자라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전에 다니엘이 비록 멀리 바벨론에 가서 종노릇을 하기는 하지마는 언제든지 예루살렘으로 향한 문을 열어 놓고 하루에 세 때씩 기도하듯이 우리 믿는 사람들도 언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위를 향해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생각하는 가운데서, 우리의 성품과 생각과 우리의 모든 생활이 점점 변화해서 그리스도를 최고 목표로 하는 그 이상에까지 도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려고 하면, 제가 항상 하는 말과 같이 특별히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묵상과 기도입니다.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신령한 눈으로 그리스도를 바라 볼 수 있습니다.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은연한 감화를 우리가 받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교훈을 직접 들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직접 그리스도의 말씀을 우리 심령 속에 전하여 주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가운데서 점점 이와 같은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심령이 다 죽은 가운데서 과연 부활하였습니까? 여러분이 부활한 생활을 하십니까? 우리 가운데 한 분이라도 아직까지 옛 사람이 온전히 죽지 못하고 아직까지 옛 육신에 속하는 이가 있으면, 이 시간 먼저 십자가에 못박고 이 기쁘고 즐거운 부활주일 아침에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이 여러분의 심령이 부활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생명이 부활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본래의 양심이 부활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주신 그 내재의 모든 능력이 부활해야 됩니다. 그리고 부활하였습니까? 항상 위에 있는 것을 찾으며, 위에 있는 것을 바라보며,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며, 묵상과 기도로서 우리의 최고 목표를 향해서 매일 매일 발걸음을 앞으로 내어 디디시기를 바랍니다. 이 기쁜 부활주일 아침에 우리 하나 하나의 심령이 부활의 축복을 받고 위를 향해서 한번 더 올라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1960년 4월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