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회개와 새로운 날 (사도행전3:11-16)

새벽지기1 2017. 12. 2. 06:32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3:19)

먼저 하나님께 감사함을 드립니다. 또한 여러분께도 감사함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는 가운데서 또한 여러분께서, 많이 기도하여 주시는 가운데서, 이 부족한 사람이 그 동안 먼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지난 수요일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먼저 서인도 제도 가운데 하나인 발베이도스(Barbados)라고 하는 섬에서, 그 곳 온 섬으로부터 온 목사들을 중심해서 수양회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남미로 내려가서 컬럼비아라고 하는 나라 베델린(Medellin)이라고 하는 곳에서, 컬럼비아에서 온 교역자들과 또한 남미 열 한 나라에서 온 교역자들이 합해서 수양회를 마치고, 본인은 본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보고는 오늘 저녁에 잠깐 드리려고 생각합니다.
또 이 자리에 설 때에 하나님 앞에 더욱 감사함을 드릴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동안 우리 국내 정국을 크게 새롭게 하여 주신 이 사실이올시다.
그 동안 제가 외국에 있으면서 우리 국내 정세가 국제적으로 반영되어 가는 형편을 잠깐 동안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 젊은 학도들의 애국심, 그들의 정의감, 그들의 희생의 정신은 세계 만방에 빛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와 같은 혁명을 통해서 우리 한국민족은 오래 동안 불법과 불의에 그냥 있을 수는 없고 언제든지 자유와 독립을 성취할 수 있는 민족이라고 하는 것을 또한 세계에 나타내게 된 것을 감사히 생각하였습니다. 더욱이 이번의 의거와 민주 혁명은 오직 해방된 이후에 교육을 받고 일어난 새 세대의 젊은 사람들의 공헌으로 이루어진 사실로서, 우리 민족의 장래에 대해서 보다 더욱 더 튼튼한 촉망을 각자가 가지게 된 것을 감사히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마는 우리가 이러한 때에 우리 국빈으로써 또한 믿는 사람으로서 항상 기억할 것은 몇 가지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국제 정세는 바야흐로 더욱 중대한 위기를 당하고 있는 이러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아직까지도 분단이 되었고 자유를 유린하고 자기의 야심을 채우려고 하는 악한 공산당들은 언제든지 호시탐탐해서 우리 남한을 엿보고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환경 가운데서 우리는 국제적으로 새 나라를 건설 할 수밖에 없는 중대한 과제에 당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느 때에 조국을 위하여 기도하지 아니하리오마는 더욱 이러한 때에 깨어 기도해야 되겠고, 범사에 근신해야 되겠고, 지혜는 뱀과 같이 하고 순하기는 비둘기와 같이 하며 모든 질서 회복과 새 나라 건설에 적극 협력하지 아니하면 안 될 것입니다.


이제 잠깐 인사의 말씀을 드리고 오늘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사도 행전 3장 19절을 다시 봉독 하고자 합니다.『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이 말씀은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 성전 뜰에서 앉은뱅이를 고친 후에, 모인 사람들을 향하여 외친 설교 가운데 한 부분이올시다.
여기에 간단히 세 가지 말씀이 있습니다. 우선「회개하고 돌이키라」고 하는 말씀, 둘째는 이렇게 해서「죄 사람을 받으라」하는 말씀, 셋째는 이렇게 하면「유쾌하게 되는 날」혹은 상쾌하게 되는 날 혹은 좀더 알아듣기 쉽게 새로운 날이 주님께로부터 이를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장쾌하게 되는 날, 새로운 날이 이를 것인가? 회개하고 돌이켜서 죄 없이 함을 받을 때에 이와 같은 날이 이를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회개는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에 문자 그대로 천국의 문이올시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이 요단 강가에서 세례를 베풀면서 외친 말씀이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오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또한 일을 시작하실 때에 역시 같은 말씀으로 외치셨습니다.『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찼고 기약이 이르렀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회개의 좁은 문을 들어가지 아니하고는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 이 회개는 교회 부흥의 근본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도 요한 에게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말씀하실 때에 열심을 내어서 회개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온 교회가 열심히 죄를 회개할 때에만 새로운 부흥의 은혜가 미칠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에 회개야말로 국가 부흥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보면 옛날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번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에스겔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이스라엘 족속아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혹은 다른 선지자를 통해서『이스라엘 백성들아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라.』고 부르짖은 것입니다. 회개는 교회 부흥의 근본이 될뿐더러 일반적으로 민족 부흥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회개는 무슨 뜻입니까? 물론 우리가 이 뜻을 다 알지마는 어떤 때에는 우리가 회개의 근본 뜻을 잊어버릴 때가 없지 않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은 다음에는 누구든지 후회를 합니다. 내가 그 죄를 짓지 아니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뉘우칩니다. 죄 지은 데 대해서 섭섭한 감정이 일어납니다. 이 후회는 물론 회개의 첫 걸음이 될 수도 있지마는 이렇게 후회하는 그 자체가 회개를 아닙니다.
술 먹고 주정을 하고 나쁜 일을 한 사람도 그 후에 물론 후회는 합니다. 그러나 후회만이 회개는 아닙니다. 다른 기회가 있을 때 또 먹습니다. 음란방탕한 사람도 그와 같은 일을 한 후에 물론 안 했으면 좋을 뻔하였다고 그것을 후회합니다. 그렇지만은 후회만은 회개가 아닙니다. 심한 살인 강도도 악한 일을 저지른 후에 후회는 다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신문을 볼지라도 살인 강도들이 마지막에는 다 안 했으면 좋을 번하였다고 후회하는 말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후회만은 온전한 회개는 아닌 것입니다.


가룟 유다도 예수를 은 30냥에 팔은 후에 후회는 하였습니다. 얼마나 후회하고 섭섭하게 생각하였든지 스스로 목매어 자살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후회가 유다를 구원하지 못하였습니다. 후회는 회개는 아닙니다.
단순히 후회에만 그치는 것은 후회가 심하면 자기 육신을 죽일 수 있고, 그 후회가 심하지 아니하고 한번 후회하고 그 다음에 기회 있을 때 또 죄짓고 후회하고, 그러나 그 다음에 기회 있으면 또 죄 짓게 되어 그와 같은 후회는 점점 약해져서 마지막에는 암만 죄를 지어도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감각이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그 영혼이 죽게 됩니다. 후회가 회개의 첫 발걸음이 될 수는 있지만 거기에서 멎으면 아무 쓸데 없습니다. 


회개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죄를 지은 다음에 죄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두려움이 들어옵니다. 죄를 지은 다음에는 공포심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죄를 지은 다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무서워하였습니다. 무서워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나타날 때에 숨었습니다. 다른 데로 피하였습니다. 죄 지은 다음에 두려운 마음이 일어나는데 이 두려움 마음도 회개의 한 걸음이 될 수는 있지마는 두려운 마음 자체가 회개는 아닙니다.
전에 애굽 왕 바로가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릴 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있었으나 회개는 하지 아니하고 그의 마음은 더욱 강퍅하여졌다고 말하였습니다. 죄는 지은 다음에 두려운 생각이 나게 하는 것도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그런 생각이 나게 하건마는 단순히 두려운 마음에 그쳐서 그 다음에 다른 기회가 있으면 죄를 짓는 이와 같은 두려움은 아무 쓸데가 없는 것입니다. 공포심만은 회개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면 회개란 어떤 것입니까? 자기가 죄를 지은 다음에 그것이 온전히 죄인 줄 알아서 후회할뿐더러 죄는 반드시 값이 있는 줄 알아서 죄를 무서워할뿐더러,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죄는 이와 같은 것이니 내가 이 죄에서 떠나겠다는 태도로 온전히 마음을 고치고 마음을 변경해서 돌아서는 것이 온전한 회개입니다. 참 회개는 회심이라고 합니다. 혹은 요즘 말로 자기가 가던 길을 백 팔십 도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탕자의 비유를 기억합니다. 이 탕자가 많은 분깃을 가지고 자기 아버지와 집을 등지고 멀리 떠나서 다른 나라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허랑 방탕하면서 모든 소유를 허비합니다. 그렇게 한 후에 갑자기 그곳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이 탕자가 후회하였을 줄 압니다.
『내가 우리 아버지 집에 있었다면 좋을 것을, 그만 이렇게 나와서 재산 다 없어지고 흉년 들어서 먹을 것 없으니, 이거 어떻게 하면 좋겠나.』마음 가운데 후회한 줄 압니다. 그러나 후회만은 온전히 회개는 아니었습니다. 할 수 없어서 마지막에는 어떤 돼지 먹이는 집에 가서 돼지를 쳐주었습니다. 흉년이 되어서 먹을 것이 넉넉지 못하니 돼지 먹는 것을 함께 먹지만 배는 고팠습니다. 이럴 때에 더욱 후회하는 생각이 나고 이렇게 되다가는 굶어 죽지 않겠나 하는 두려운 생각도 마음 가운데 일어난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직 회개는 아닙니다.


이와 같은 환경을 당해서 자기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아버지의 집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아, 우리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이 많고, 우리 아버지 집에는 품꾼이 많고, 우리 아버지 집에 있는 품꾼도 배를 곯지 아니하는데, 나는 여기 있어서 굶어 죽게 되었구나.』자기가 감히 아들로서 돌아갈 수 없지마는 이제라도 돌아가서 품꾼으로라도 써 달라고 간청하겠다고 하는 결심을 하고 돌아서서 아버지 계신 곳을 향해서, 부모 계신 곳을 향해서 아버지 집으로 올 때에 그것이 온전한 회개입니다. 회개는 후회만이 아닙니다. 죄를 두려워하는 것만 아닙니다. 온전히 죄가 어떤 것인지 깨달아서 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 서서 옳은 길로 가는 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우리 인생의 생활이 길을 가는 것과 같지 아니합니까? 그래서 인생여로란 말이 있습니다. 인생의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나그네의 길을 가는 것과 같지 아니합니까? 우리가 다 어떠한 방향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향해서 가는 내 가는 내 생활의 길이 옳은 길이냐, 옳지 아니한 길이냐? 이 길이 생명의 길이냐, 이 사망의 길이냐? 이 길이 천당으로 인도하는 길이냐, 지옥으로 인도하는 길이냐? 잠깐 멈추어 서서 내 길을 살펴보아야 되겠습니다. 가만히 살펴 볼 때에, 내 가는 길이 비록 지금은 평안하고, 지금은 세력도 있어 보이고, 지금은 영광도 있어 보이고, 지금은 모든 것이 평안해 보이지마는, 결국은 사망이요, 지옥이요, 파멸인 것을 만일 깨닫게 되었을 때 더 지체할 것이 있습니까? 그 길에서 동아서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길에서 돌아서서 방향을 변화해서 생명의 딴 길을 가는 것이 바로 온전한 회개입니다. 이 길을 스스로 가신 이는 이 시간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가는 길이 과연 생명의 길이냐? 내가 가는 길이 과연 의의 길이냐? 내 길을 바로 살펴서 내 현재의 가는 길이 옳지 못한 길이면 그 자리에서 돌아서는 이것이 참 회개입니다.
이와 같이 온전히 가던 길을 돌이켜서 생명의 길로 돌아서는 그런 사람에게는 여기 성경에 있는 말씀과 같이 죄 사함이 있습니다. 탕자가 멀리 가서 많은 죄를 지었지마는 아버지 앞에 돌아와서 그 죄를 고백하고 아버지의 품에 안긴 다음에는 다시 전에 지은 죄를 아버지가 묻지 아니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죄 대신 져 주셨습니다.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죄 사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아십시다. 참 회개가 없이는 죄 사함이 없습니다. 옛날 유대 사람의 역사를 보면 구약 시대에는 어떤 사람이든지 죄를 지으면 온전히 죄를 회개하고 돌아 설 수 있도록 과거의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있은 후에는 제사를 다시 드릴 필요는 없지마는 주님의 십자가가 나타나기 그 전에는 제사를 드리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유대 사람들이 자기의 죄를 온전히 회개하지 아니하고, 제사만 드리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사고 방식이 점점 머리 속에 이런 오해가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는 않으면서, 죄는 온전히 회개하지 아니하면서 죄는 그냥 지으면서도 하나님 앞에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많은 제물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 앞에 굉장히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경향을 보고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어떻게 책망하셨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돌아가셔서 이사야 1장을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를『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 하뇨?』『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참 회개가 없는 제물은 헛된 제물입니다. 참 회개가 없는 예배는 헛된 예배입니다. 참 회개가 없는 교회 출석은 헛된 출석입니다.
요사이 어떤 사람들은 어떤 정통적 신조를 바로 깨달아서 그대로만 꼭 믿으면 죄 사함을 얻는 줄 압니다. 모여서 어떤 신조를 바로 깨닫는다고 죄를 사함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온전히 회개가 없으면 정통 신앙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며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惡業)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며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내가 가는 길이 옳지 못한 것을 깨달으면 거기서 온전히 변해서 새 길을 따릅시다. 참된 개회가 있는 곳에만 죄 사함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때에 우리 자신을 반성하고 우리의 생활을 스스로 자성하지 아니하리오마는 특별히 이와 같은 때에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며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이 내 생활을 스스로 반성하고 마땅히 내가 옳은 길을 걸어 왔는가, 그른 길을 걸어왔는가? 내가 교회에 물론 이름은 두었고 내가 교회에 이따금 출석은 하였지마는 과연 내가 바로 죄를 회개하면서 교인 생활을 하였는가? 스스로 반성할 때인 줄 생각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과거 부패한 정권 아래 살면서 부패한 사회 가운데 참으로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불법과 불의에 대하여 강하게 싸우기 못한 죄도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강하게 싸우지 못할뿐더러 이런 죄를 묵인하고 동참한 모든 죄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안 되겠습니다. 모든 한국 민족이 평화를 원하고 통일을 원하는 이러한 시대에 있어서, 독선주의와 교만과 당파심과 비방심(誹謗心)과 완고(頑固)와 고집으로써 분쟁과 분열을 일삼는 모든 우리 교회 안의 죄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먼저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이 어지러운 세상, 죄악 많은 세상, 부패한 세상 가운데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고 우리를 두었는데 우리의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 죄를 누구나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남의 죄를 보려고 하지 말고 먼저 내 죄를 각각 보아야 되겠습니다. 남의 죄를 보려고 하지 말고 먼저 내 죄를 각각 보아야 되겠습니다. 남의 눈의 티를 뽑으려고 애쓰지 말고 내 눈의 들보를 빼기 위해서 먼저 애써야 되겠습니다.『내 형제들아,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죄 없이 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님께로부터 이르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과연 과거에 어떠한 길을 걸었든지, 어떠한 잘못을 하였든지, 온전히 과거를 청산하고 그릇된 길을 바로 가는, 참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의 속죄가 우리 마음속에 임할 것이요,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을 때에는 우리 마음속에 주님께서 임하시고 성신께서 임하십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속에는 새로운 기쁨과 새로운 평화와 새로운 축복이 우리 마음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날이 우리 마음속에 임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교회도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과거에 어떠한 길을 걸어 왔던지 우리가 이제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 과거의 모든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온전히 돌이켜서 바른 길을 걷는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과거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 한국 교회에 새로운 부흥과 새로운 날을 반드시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 주님께서 임재(臨在) 하시고 성신께서 임재 하실 때에 한국교회는 새로운 전기(轉機)를 이룰 것입니다.
여러분, 온 세계는 한국 교회가 은혜 받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 교회는 과거에 많은 핍박을 받아 왔습니다. 한국 교회는 과거에 많은 희생을 하여 왔습니다. 이와 같은 교회가 가장 빛나는 증거를 요구하는 이 때에, 은혜 받기 위해서, 온 세계 교회가 가는 곳마다 한국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여러분, 이 회개 운동이 우리 한국교회에서 일어나야 되겠습니다. 개인으로도 그렇고, 가정으로도 그렇고, 교회로도 그렇고,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간구 할 때에, 하나님의 새로운 날이 한국교회에 임할 줄 믿습니다.


사실 우리 한국 전체를 생각해 보아도 그렇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되었다고 반드시 새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딴 사람이 정부에 들어갔다고 반드시 새로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기구가 변했다고 그것이 새로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남미에 다녀왔지만 남미와 중미에는 민주주의 나라가 큰 나라와 작은 나라를 합해서 스무 나라가 있습니다. 이 스무 나라 가운데 언제든지 한 나라에서는 혁명이 늘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혁명이 끝 날쯤에는 저 나라에 혁명이 있고, 또 다른 나라에서 혁명이 있고 여러 나라에서 혁명이 계속 일어납니다. 한 나라에 3, 4년 있다가, 어떤 때는 5, 6년 있다가 혁명이 또 한번씩 일어납니다. 왜 그렇게 되는지 아십니까? 어떤 사람이 들어가서 정권을 잡습니다. 처음에는 잘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며칠이 안 가서 부패해지고 맙니다. 그러면 또 혁명이 일어납니다. 딴 사람이 들어갑니다. 몇 해 있습니다. 또 부패해집니다. 또 혁명이 일어납니다. 결국 도덕 수준이 높고 민족 전체가 좋은 사람이 되어서 대다수가 선한 사람이 되어야 그 나라가 바른 나라가 됩니다.


결국은 우리 민족이 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축복을 받겠느냐?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온전히 회개하고 새 민족이 되기 전에는, 항구적 평화가 있는 나라를 건설할 수 없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회개하여야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도 새로운 날이 올 것입니다. 이 회개는 먼저 나로부터 시작해야 되겠습니다. 내 가는 길이 옳은 길이냐, 내 생각이 옳은 방향이냐? 이것이 주님께로 가는 길이냐? 나로부터 회개해서 내 마음속에 새로운 축복이 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960년 5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