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콜린스는 “참된 기업 경영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15년 간 주식 가격이 3배 이상
성장한 기업 11곳을 골라 그 기업들의 성공 원인, 특히 리더십에 관해서 조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들을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좋은 책을 썼습니다.
그 연구 결과는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하기 위해 강력한 카리스마의 리더를 영입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요란하여 ‘반짝 효과’는 봤을지 몰라도, 그 결과는 보잘것 없었고, 오히려
기업의 도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평범한 회사를 위대한 회사로 도약시킨 리더들이나 그 리더십에 대한 평가를 보면,
‘조용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조심스러운’ ‘정중한’ ‘부드러운’‘나서기 싫어하는’
등등이었다고 합니다.
스스로를 낮추고 아랫사람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겸양의 리더십이 기업의 성장과 도약에 훨씬
유리했습니다.
또한 기업 도약의 계기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에 있었고, 적합한 사람을 적합한 자리에
앉혀서 능력을 발휘할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며, 또한 그 사람은 제 몫의 일을
자발적으로 행하는 진실성이 필수였습니다.
짐 콜린스가 내린 결론은, “위대한 기업의 특징 중에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였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흔히 성경 말씀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아닙니다.
인류의 역사는 성경 말씀의 실현입니다.
노예 해방, 남녀 평등, 어린이 존중 등이 좋은 예입니다.
많은 저항에 부딪혔고, 수많은 희생과 노력과 에너지가 들었지만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천천히 실현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그 뜻에 부합하는 것이 성공적인 삶의 유일한 비결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별로 새로운 것도, 무슨 신비한 영적 내용도 아닙니다.
마음에 새기시기 바라마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무슨 영험한 종교적 비결을 찾지 마십시오.
성경의 내용은 결코 세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apart the world가 아니라 within and above the world입니다.
세상 속에서, 동시에 세상을 초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종교 행위에 몰두하며 세상과 점점 동떨어져가는 유대교를 무너뜨리고 삶과
가장 밀접한 사랑의 영성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별로 새로울 것 없는 오늘의 말씀은, 요즈음과 같은 혼돈과 흑암의 시대에 그 어떤 말씀보다도
빛을 발하는 말씀입니다.
지지고 볶는 시시한 삶을 뛰어넘어 위대한 인생으로 인도하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말합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약 1:12)
시험이 무엇인지 알아야 견디든지 참든지 할 것입니다.
시험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성경에 나오는 ‘시험’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시험, 영어로는 test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 100세 때 나은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이 바로 이에 해당됩니다.
사탄이 행하는 시험, 영어로는 temptation입니다.
즉 ‘유혹’입니다.
사람들이 행하는 시험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doubt로서, “하나님이 계신가, 아니 계신가”하는 ‘의심’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 사도가 중요한 말을 합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기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약 1:13)
“아니,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고 하셨는데,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잖아요?”
하시겠지만, 오늘 본문의 ‘시험’은 사탄의 시험, 즉 ‘유혹’에 국한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유혹에 빠뜨리지 않으신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또한 테스트도 거의 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을 위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미국에서 막 귀국하여 한 교회에서 청년들을 담당했을 때의 일입니다.
한 여자 청년이 새 옷을 예쁘게 차려입고 교회로 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졌고, 새 옷에 흙탕물이 튀고 말았습니다.
그 청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새 옷에 눈이 팔려 잠시 예수님을 잊었더니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앞으로는 예수님을 한순간도 잊지 않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누가 이렇게 가르쳤는지 기가 막혔습니다.
엄마도 새 옷을 입고 깡충깡충 뛰는 자녀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래 예수님께서 새 옷에 눈이 팔려 자신을 잊었다고 흙탕물에 내동댕이치시겠습니까?
몇 주 전에 ‘하나님의 순종시험’이라면서 아파트 창밖으로 유리그릇을 던지게 하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왜들 이러십니까?
이런 류의 생각이나 이야기들은 기독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며, 하나님을 상식 이하의
천박한 존재로 만드는 용서받기 힘든 언행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일이 생겼습니다.
또 귀가 솔깃한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냐, 사탄으로부터 온 것이냐를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종교적인 사변으로 인하여 오히려 뭘 해야 하는지 모호해지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십자가를 앞세우는 사기꾼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답은 분명합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 것이며, 하나님의 테스트는 무조건 통과해야 하고, 사탄의 유혹이면
무조건 물리쳐야 하고, 고난은 무조건 극복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시험의 출처보다 더욱 원초적인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욕심입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약 1:14)
유혹에 빠지고 시험을 당하는 이유는 바로 내 자신의 욕심 때문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욕심을 부추깁니다.
예수님에게도 그랬습니다.
돌을 떡이 되게 하라.
내게 절을 한 번만 해도 온 천하만국의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
마지막으로 종교적인 권능을 성취하라는 시험을 하였습니다.
욕심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내 옆에 가장 가까운 곳에 언제나 붙어다니는 것입니다.
욕심은 어떤 것이고, 어떤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가, 그 실체를 알아봅시다.
정당하지 않은 돈을 받았거나, 횡령은 아니지만 공금을 유용한 적이 있습니까?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다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심각한 욕심입니다.
그런데 ‘빈대’나 ‘얌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과는 별 상관도 없는데, 먹는 자리에는 꼭 나타납니다.
언제나 얻어먹기만 합니다.
이런 얌체 짓은 죄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얌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약 내가 사장이라면 그런 사람을 절대로 중용하지 않습니다.
내가 윗사람이라면 아랫사람들이 나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의 삶이 풀리지 않는 이유는, 별것도 아닌 바로 그 얌체 짓 때문입니다.
소소한 욕심은,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언제든지 큰 욕심으로 자라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습니다.”
자, 어떤 일을 맡았다고 합시다.
그에 따르는 예산이 할당됩니다.
그 일을 통해서 자신의 호주머니를 채우려고 한다고 칩시다.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태도가 달라집니다.
괜히 웃고, 괜히 화를 내기도 하고, 짐짓 심각한 척하다가, 때로는 화통하게 웃기도 합니다.
모두 자신의 은밀한 계획을 은폐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습니다.
들통 날 조짐이 보입니다.
그러면 더욱 교묘한 술수를 부립니다.
하지만 결과는, 깊은 죄로 빠져들게 되고, 그 끝은 파멸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자신을 경계하여 인정받으려는 욕심, 정욕 물욕은 물론, 소소한 욕심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얌체 짓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것도 없습니다.
최길환 씨는 경상북도 두메산골에서 벙어리 아버지와 소아마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2남 2녀 중 장남이었습니다.
남의 집 머슴과 식모로 일하는 부모님은 뼈 빠지게 일하였으나 가난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송곳 꽂을 땅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들은 너무나 정직하게 살아서, 절대로 주인 몰래 먹을 것을 가져다가 자식들에게
먹이는 일이 없었습니다.
가을이 되어 아버지께서 남의 집 감이나 밤을 딸 때에도,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감을 따는 아버지를 발견하고는 달려가서 배가 고프다는 시늉을 하며 하나만 달라고
하여도 절대로 주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리석을 정도로 정직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벙어리 아버지가 그만 황소 뿔에 받히는
사고가 났고, 그 일로 끝내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더욱 어려워진 생활로 인하여 중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하고, 열세 살 때에 서울로 상경한 그는
가내 공장에 사환 겸 공원으로 취직하였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것보다 훨씬 더 힘든
고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온종일 온갖 궂은 일을 하며 밤에는 공장 한편에 신문지를 깔고 새우잠을 잤습니다.
그러나 벙어리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정직하게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렇게 고생을 하는 동안 회사도 점점 커지게 되었고, 최길환 씨의 정직과 성실로 일관하는
태도를 보고, 사장님은 그에게만 돈 심부름을 시키고 나중에는 모든 돈을 맡겼습니다.
이북에서 내려온 사장님은 언제나 점심은 짜장면을 먹으면서 절약과 근면이 몸에 배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아무 데나 돈을 놔두고는 최길환 씨의 정직을 시험해 보았는데,
그는 단 한 번도 그 돈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성실히 살며, 동생 셋을 모두 대학에 보내고 결혼까지 시켰습니다.
작은 집도 마련하여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늦은 나이에 장가를 갔습니다.
그런데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장님께서 바다낚시를 갔다가 그만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그 사장님은 최길환 씨에게 있어서 정신적 지주요, 삶을 가르쳐준 스승이었습니다.
기둥이 무너진 것입니다.
장례를 마치고 온 날, 그의 마음에는 이제 어떻게 사나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사장님이 자신에게 맡긴 돈이었습니다.
그 돈들은 오직 자신과 사장님만이 알고 있는 돈이었습니다.
자신의 명의로 예금된 돈도 많았는데 총액이 한 10억쯤 되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돈,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데,
사장님이 살아있어도 충분한 보상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는 돈과 수표와 예금통장과
도장을 은닉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어린 시절 돌아가셨던 그 벙어리 아버지께서 꿈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는 엄한 표정으로, 슬픈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만 보셨습니다.
그는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로운 사장으로 취임한 사장 아들에게 보관하였던 모든 돈을 내놓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그 회사를 퇴직하였습니다.
현재 그는 작은 일을 새롭게 시작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자랑스럽고, 자다가도 너무나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그는 자식들에게 정직을 유산으로 남겨주신 벙어리 아버지께 감사하며, 자기 자식에게도
정직을 유산으로 남겨줄 것이라 말합니다.
최길환 씨와 같은 사람이 있으면 마음이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정직이 최고의 덕목 중에 하나인 것은, 나를 시험에 빠지게 하여 파멸시키는 욕심을 막아주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악해져도, 아니, 세상이 악해질수록, 정직한 사람은 더욱 신뢰와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고, 끝내는 승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정의의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운행하시는 세상의 원리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말합니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 1:12)
단순히 육신을 벗고 천국에 가서 보상을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의 삶 역시 풍성해집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약 1:17)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빛들의 아버지”이십니다.
빛들의 아버지는, “변함이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는 분”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진정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는 사람들, 어떻게 하면 맡은 일을 잘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끼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면 표정과 태도가 달라집니다.
은폐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회전하기 시작합니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걷잡을 수 없이 떠오릅니다.
당연히 그 삶이 풍성해집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인생은 환하게 빛이 나 그림자가 전혀 생기지 않습니다.
빛들의 아버지의 자녀로 당당하게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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