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조병수교수

요한계시록 해설 (4)

새벽지기1 2017. 6. 14. 06:58


IV.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 (15-19장)

1. 일곱 대접 (15:5-16:21)

성도들은 환난 가운데서 인내해야 한다. 성도들을 핍박하는 사탄의 하수인들이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야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일곱 나팔 중의 마지막 나팔은 최후의 재앙을 기다리게 한다. 일곱 대접이 등장한다. 이것은 마지막 재앙이다 (15:1). 이 재앙은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나온다 (15:5-6). 이 재앙의 대상은 일곱 나팔 (8:1이하)에서와 같은 순서로 이어진다 (땅, 바다, 강, 해). 첫째 대접은 땅에 쏟아진다 (16:2). 이때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은 독한 헌데로 인하여 시달리게 된다. 둘째 대접은 바다에 쏟아지고 바다의 모든 생물이 죽는다 (16:3). 셋째 대접이 강과 샘에 쏟아지자 피로 변한다 (16:4-7). 이것은 세상사람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16:6) 피를 마시게 하기 위함이다. 넷째 대접은 해에 쏟아지고 사람들이 해의 열기로 태워진다 (16:8-9).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할 뿐이고, 도무지 회개를 하지 않는다 (16:9). 다섯째 대접은 짐승의 보좌에 쏟아진다 (16:10-11). 어둠이 들고 고통이 찾아오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훼방하고 자기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않는다. 여섯째 대접은 큰 강 유프라테스에 부어진다 (16:12-16). 이것은 여섯째 나팔에서 유프라테스가 언급된 것과 비슷하다. 유프라테스 강은 바벨론의 지경이다. 바벨론은 음녀로서 하나님의 성도들을 미혹하는 자이다. 강이 마르게 됨으로써 음녀 바벨론의 세력이 침범할 가능성이 주어진다. 그런데 이 세력을 지원하는 것들이 있다.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개구리 형상을 한 세 더러운 영이 나온다 (16:13). 용, 짐승, 거짓 선지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흉내내는 간교한 미혹이다. 그들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더러운 세 영들이 이적을 행하며 온 천하의 임금을 꾀어 전능하신 하나님과 전쟁을 하려한다. 이들은 하르마게돈에 모인다. 이것은 히브리어로 "므깃도의 산"이란 뜻이다. 구약에 보면 바락과 드보라가 가나안 왕 야빈과 군대장관 시스라를 므깃도에서 이겼다 (삿 5:19). 야빈과 시스라의 군대는 철병거 900승을 가진 강한 병력이었기에 이스라엘이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나안을 이기게 하시고, 가나안의 군대장관인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셨다 (삿 4:9). 이길 수 없는 듯이 보이는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전쟁에서도 온 세상의 임금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일어나며 세 더러운 영이 지원하여 엄청난 세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승리는 하나님께 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도적같이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16:15). 하르마게돈 전쟁은 최후의 날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 16:14)에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그의 대적을 무찌르시고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전쟁이 될 것이다 (19:11이하, 20:8 곡과 마곡의 전쟁 참조). 이것은 하나님의 전승지에 대한 상징적인 명사이다 (박윤선).

여기에서 다시 계시록의 구조의 세부를 살펴보자. 인과 나팔에서는 여섯 번째 사건과 일곱 번째 사건 사이에 큰 삽입이 있다.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에는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인맞은 자들인 십사만사천과 흰옷을 입은 셀 수 없는 무리 (7:1-17)에 대한 기술이 삽입되어 있다. 여섯 번째 나팔과 일곱 번째 나팔 사이에는 힘센 천사의 작은 책 (10:1-11)과 성전측량과 두 증인 (11:1-14)에 대한 기록이 삽입되어있다. 그런데 두 증인의 증거기간인 1260일에 대하여 일곱 번째 나팔에 대한 기술다음에 다시 한번 진술된다 (12장-14장): 여자: 1260일 양육, 핍박: 3때 반, 짐승의 활동: 42달. 하지만 인과 나팔에서와는 달리 대접에 관한 기술에서는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에 아무런 삽입이 없다. 아마도 실제로는 여기에 바벨론에 대한 심판이 삽입되었을성 싶다. 왜냐하면 음녀 바벨론은 일곱나팔에서 멸망되어지는데, 이에 앞서서 바베론의 활동이 설명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벨론의 행위에 대한 서술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먼저 바벨론의 멸망을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바벨론이 멸망되기까지의 활동을 자세히 말하게 된다 (17장-18장).

일곱 번째 대접은 공기 가운데 쏟아진다 (16:17-21). 엄청나게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떨어진다. 이때 특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게" 된다 (16:19). 그러면 이 큰 성 바벨론은 무엇인가? 이것은 이미 14:8에서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 (14:8)라고 소개되었다. 바벨론은 모든 나라와 더불어 음행을 하고, 이 결과로 모든 나라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 바벨론의 결국은 무엇인가? 멸망이다. 그러므로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14:8)라고 말하게 된다. 바벨론은 사탄의 세 번째 하수인이다. 바벨론은 바다의 짐승이나 땅의 짐승과 마찬가지로 성도들을 핍박하는 사탄의 협력자이다. 이제 이미 간략하게 소개된 바 있는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사실이 자세히 설명된다. 바벨론 뿐 아니라 그와 음행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심판에 놓이게 될 것이다.

2. 음녀 바벨론의 멸망 (17:1-18:24)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의 하나가 말한다. "이리 오라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17:1). 이것은 이후에 21:9에서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어린양의 아내를 소개하는 장면과 유사하다. 그러나 전자는 음녀이고, 후자는 신부인 것이 큰 차이점이며, 이 둘은 서로 대적자인 것이 특이하다. 더 나아가서 음녀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반면에, 신부는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있다. 음녀는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론이라는 이름을 지닌데 비해, 신부는 새 예루살렘이라고 불린다. 음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대표하지만, 어린양의 신부는 하나님에 의해 구속받은 성도들을 대표한다 (Guthrie). 땅의 임금들도 음녀와 더불어 음행을 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17:2). 음녀는 온 세상을 지배한다. 음녀는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 (17:15)을 의미하는 물위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이 음녀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다 (17:18).

1) 음녀의 모습 (17:1-6)

이 음녀는 "붉은 빛 짐승을 탔다" (17:3). 이 짐승은 13:1의 짐승과 동일하다. 왜냐하면 이 둘이 다같이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3:1; 17:3).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사탄도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12:3). 이 짐승의 일곱 머리와 열 뿔에 대하는 잠시 후 다시 설명된다 (17:7-12). 이 음녀는 짐승의 도움을 받아 등장한다. 짐승의 붉은 빛은 사치와 호화를 나타낸다. 이 짐승은 그 몸을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모든 이름으로 가득히 채워 장식을 하였다. 이 음녀는 휘황찬란하게 치장을 하였다. 자색 빛과 붉은 옷을 입었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몄다. 그 손에는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였다. 음녀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버리고 다른 것을 사랑하게 하는 것을 상징한다. 성도들로 하여금 정결한 신부의 자리를 버리고 더러운 창녀로 만들려는 의미한다. 이것은 영적인 간음이다. 이 음녀의 모습은 특히 두 가지를 상징한다. 하나는 외모에의 즐거움이다. 음녀의 의상과 장식에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들을 사치와 허영으로 유혹하여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도록 이끌어 내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보다 사람의 외모를 더 사랑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치장이 아니다. 사치와 허영으로 꾸민 치장이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요일 2:16)으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마음에의 즐거움이다. 음녀의 손에 있는 잔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보라. "가증한 물건과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다. 이것들은 사람들을 잔인함과 음란으로 유혹하여 하나님에게서 떠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잔인함에 해당하는 것으로 폭력적인 스포츠 (특히 로마시대의 노예들의 격투), 소름끼치게 하는 노래와 그림, 공포영화나 악랄한 내용의 소설 등등이다. 이런 것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명목 하에 성도들에게도 너무나 무비판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음란에 해당하는 것은 외설문학, 성 (性)을 주제로 한 잡지들, 성욕을 즐기게 하는 시설들, 난잡한 오락기구들 등등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성도들의 마음을 흔들어 경건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교회에 대한 핍박은 쓰라린 억압으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달콤한 유혹으로도 온다는 것을 기억하라. 성도들은 음녀의 이 계략에 주의하라!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들은, 거룩한 천국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음녀의 계략에 말려들지 말고 이 세상에서 낯선 자들이 되라. 이 음녀는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하기" (17:6)를 소원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사도 요한이 들은 바와 같은 하늘로서 나는 음성을 들으라 (18:4):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라

2) 짐승의 비밀 (17:7-18)

사도 요한이 음녀를 보고 기이히 여길때에 천사가 짐승의 비밀을 일러준다 (17:7). 이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 (17:8,11)이다. 이 짐승은 사탄의 사주를 받아 일어나 성도들을 핍박하던 왕들의 총체이다. 그러나 이 짐승은 늘 존재할 수가 없다. 핍박에는 단절이 있다 (42달의 의미에 주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승의 과거에 있다가 미래에 나타날 이러한 모습이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17:8). 여기에서 우리가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은 이 짐승이 살아계신 하나님과는 비교도 안된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이기 때문이다 (1:4,8, 4:8). 이제 제국의 총체인 이 짐승의 비밀이 벗겨진다. "지혜있는 뜻이 여기 있다" (17:9). 먼저 짐승의 머리에 대하여 해설이 주어진다 (17:9-11). 머리가 대표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이것은 짐승의 모든 특징을 대표할 수 있는 한 예로서의 제국을 의미할 것이다. 일곱 머리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일곱 산" (17:9)과 "일곱 왕" (17:10)이다. 일곱 산은 분명히 로마제국을 말한다. 로마는 일곱 언덕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곱 왕은 로마의 일곱 황제를 가리킬 수 있다. 짐승의 모든 특징이 로마에 의하여 표현된다. 요한 당시의 로마는 모든 사치와 허영과 음란과 잔인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로마는 이같은 사고방식 하에서 하나님의 성도들을 핍박하던 중심지가 되었던 것이다. 이어서 뿔에 대한 해설이 나온다 (17:12-14). 열 뿔은 열 왕이다. 이들은 "실제로 지상의 영역 속에 유력한 것들, 즉 예술이나 교육, 상업과 산업, 그리고 정권들과 중심 권력층에 맹종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Hendriksen).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준다" (17:13). 이러한 모든 이데올로기가 어린양에게 대적하지만 어린양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긴다" (17:14).

3) 바벨론의 멸망 (18:1-24)

음녀 바벨론은 멸망한다. 이미 14:8에서 예고되어진 대로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고 선고된다 (18:1). 그러나 음녀 뿐 아니라 그녀와 음행하던 만국이, 만왕이, 모든 상고들이 하나님의 진노에 처하게 된다. 이 멸망할 음녀를 분명히 바라보기에 성도들은 음녀의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백성은 거기서 나와서 그 죄에 참여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18:4). 바벨론에 대한 애착을 버려야 한다. 바벨론은 심판의 하나님에 의하여 반드시 복수될 것이다. 하나님은 음녀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다 (18:5). 음녀의 불의한 일들이 조목조목 열거된다. 음녀가 성도들에게 복수한 만큼 하나님께서 음녀에게 복수하실 것이다 (18:6). 음녀의 핍박 행위대로 갑절을 복수하실 것이다 (18:6). 가증함과 음란으로 채웠던 잔에 대하여 복수하실 것이다 (18:6). 음녀의 자기 영화 추구를 복수하실 것이다 (18:7). 음녀의 자존을 복수하실 것이다 (18:7).

음녀 바벨론의 멸망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이 애통해 한다 (18:9-14). 그녀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왕들 (18:9-14)과 바벨론을 인하여 치부한 상고들 (18:15-17)과 선장과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18:17-19) 다 같은 목소리로 슬퍼한다.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18:10,16,19). 이들이 애통해 하는 이유는 한결같이 바벨론의 보배로운 상품들로 자신들이 치부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되었다는데 있다 (18:9,11,17,19). 바벨론의 상품들의 종류가 열거된다 (18:12-13). 귀금속, 고급의류, 호화건축자재, 최상의 음식물,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인신이 매매된다. 세상에 있는 인간들의 치부현실이 지적되고 있다. 이들은 치부하기 위하여 모든 수단과 방법과 재료를 강구하였다. 그러나 이 슬픔은 남의 일이 아니다. 음녀와 함께 음행하던 땅의 임금들과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던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 (17:2)도 역시 어린양의 혼인잔치 때에 심판을 받게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그들의 고기가 공중에 나는 새들의 먹이가 되고 말 것이다 (19:17-18). 다시 말하면, 짐승이 잡히고 그의 거짓 선지자가 잡혀 불못에 던져질 때에 그들에게 미혹당하던 자들은 모두 백마를 타신 신랑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검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고 그 고기를 공중의 새들이 먹게 될 것이다 (19:19-21). 바벨론은 맷돌 같은 돌이 바다에 던져지듯이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않을 것이다 (18:21-24). 하나님에 대적하는 것을 꾀하는 것을 일삼기만 하던 모든 것들이 제거될 것이다. 예술도 없을 것이다 (18:22). 공업도 산업도 없을 것이다 (18:22). 등불도 없어져 즐거움이 사라질 것이다 (18:23). 가정도 없어질 것이다 (18:23). 여기에서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는 어투를 사용하여 설명되는 내용들을 새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는 내용과 비교해보라. 바벨론이 이와 같이 철저하게 멸망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18:24). 바벨론의 멸망의 원인은 성도들에 대한 핍박이다. 그러므로 이제 성도들은 즐거워하라!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 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18:20). 들으라, 하늘에 울려퍼지는 이 심판에 대한 감사의 할렐루야를 (19:1-2):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어지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3. 어린양의 혼인잔치 (19:1-21)

하나님의 성도들은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한다. 사도 요한에게 요구된다.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19:9). "어린양의 혼인은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과의 연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그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그의 백성의 의무를 아울러 잘 포괄한 개념이다" (Tenney). 이 혼인잔치에 어린양의 아내가 준비되었으니,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었다 (19:8). 이 세마포는 성도들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의롭게 된후에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서 행하는 옳은 행실이다 (19:8).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성도들아 옳은 행실에 서라! 음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을 버리는 간음에 빠지지 말라!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아니 바로 어린양의 신부가 될 성도들이여, 지금도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음녀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 요한계시록은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핍박이 와도 변함없이 어린양의 신부로 정결하게 살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 혼인잔치를 위하여 주님이 오신다. 이제 곧 오실 주님은 그의 신부가 악한 음녀의 유혹에 빠질까 염려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이 간곡히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18:4):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