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조병수교수

요한계시록 해설(2)

새벽지기1 2017. 6. 1. 14:30

 


II. 흰옷을 입은 자들 (4-7장)

1. 하늘의 보좌 (4-5장)

계시록 4장은 1장 9절이하에 이어지는 큰 단락이다. 이 두 단락에서 같은 단어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1장에 나오는 "성령에 감동" (1:10), "큰 나팔소리" (1:10)가 4장에서 다시 반복된다. "큰 나팔소리" (4:1), "성령에 감동" (4:2). 사도 요한은 1장에서는 성령에 감동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는데, 4장에서는 성령에 감동하여 하늘 세계를 본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4:1). 이제 요한이 본 하늘 세계는 두 방식으로 설명된다. 하늘 세계가 한편으로는 성부 하나님 (4:2-11)을 중심으로 설명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 (5:1-7:17)를 중심으로 설명된다.

1) 성부 하나님

먼저 성부 하나님에 관하여 언급된다 (4:2-11). 여기에 하늘이 구성된 모습이 묘사된다. 하나님의 보좌 (4:2)를 중심으로 4생물 (4:6)과 24장로 (4:4)가 둘러있다. 4생물은 아마도 천사들의 대표 같은데 이들은 겔 1:4이하와 겔 10:20에 언급된 4생물과 동일하다. 이들이 사자, 소, 사람, 독수리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힘과 섬김과 지혜와 빠름을 상징하는 것 같다. 이들은 사 6:3에서와 같이 삼거룩송을 부른다. 24장로는 구속받은 만민을 상징하거나, 구속받은 성도들의 대표인 것 같다. 이들 앞에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선택받은 14만 4천이 선다 (14:3). 그리고 이 모든 외곽에 수가 만만이요, 천천인 많은 천사들이 둘러 서있다 (5:11). 이 순서는 후에 몇 차례 다시 진술된다 (5:6,8,11,14; 7:11은 다름!). 또한 하나님의 보좌를 무지개가 둘렀고 (4:3), 보좌 앞에는 일곱 등불 켠 것 (4:5)과 수정 같은 유리바다가 있다 (4:6).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보면 구약시대의 성소의 구조와 유사하다. 지성소 안에는 법궤가 있고 (출 26:31-33), 이를 두 그룹이 싸고 (출 25:20), 삼색실 (청 靑, 자 紫, 홍 紅)로 된 성막이 있으며 (출 26:1,31), 성소에는 일곱촛대 (출 25:31, 26:35)와 떡상 (출 25:23,26:31) 이 있고, 성소의 마당에는 물두멍 (바다)가 있다 (출 30:18) [솔로몬의 성전에 대하여는 왕상 6장이하와 대하 2장이하를 참조]. 이 하늘의 모습은 우주의 중심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준다. 사도 요한에 의하면, 우주는 지구를 중심하지도 않고, 태양을 중심하지도 않는다. 바로 하나님이 중심이시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우주가 구성된다. 하나님이 온 우주를 통치하신다! 모든 것이 보좌에 앉으신 주님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는다.

2) 예수 그리스도

이어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언급된다 (5:1-7:17). 예수 그리스도이신 어린양이 보좌와 네 생물 및 장로들 사이에 계신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들려있다.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해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담겨있다. 그러나 이 인봉을 떼고, 책을 펼 자가 없다. 하나님의 뜻을 알 길이 없다. 이에 사도 요한은 큰 울음을 터뜨린다. 장로 중의 하나가 말한다. "울지 말라,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다" (5:5). 이분이 바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서 일곱인으로 봉해진 책을 취하신다. 이때 어린양을 위하여 4생물과 24장로들이 새 노래로 노래하고 (5:9-10), 이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들이 큰 음성으로 노래하고 (5:12), 만물이 노래한다 (5:13). 이 노래들은 그리스도께서 중보자로서 승천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뜻에 의한 우주를 다스릴 권세를 받으셨다는 사실을 명백히 언급한다. 하나님은 어린양을 통하여 우주를 다스리신다.

2. 일곱 인의 개봉 (6-7장)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일곱 인이 차례대로 떼어진다 (6:1-8:2). 처음 네 개의 인을 뗄 때에는 어느 정도 규칙을 따라서 사건이 벌어진다. 4생물 중의 하나가 "오라"고 말하고, 이 말에 따라 각각 흰 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과 그 탄 자들이 등장한다. 이것은 분명히 슥 1:7-11, 6:1-8의 내용을 새로운 방면으로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들은 모든 시대의 교회에 영향을 끼치는 핍박과 시련을 상징한다. 전시대에 걸쳐 행해질 교회에 대한 핍박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있을 성도들에 대한 핍박의 요약이다. 교회는 세상에서 항상 핍박을 받아왔다. 이것은 세상에 대한 단순한 심판이 아니라, 교회에 대한 다양한 핍박을 의미한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성도들은 핍박을 당한다. 왜냐하면 바로 이어서 다섯 번째 인을 뗐을 때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이 설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증거" (6:9)로 인하여 죽임을 받은 자들인데 제단아래서 큰 소리로 탄원한다. 이들은 땅에 거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이 어느 때까지 연기되는지 탄원한다. 이때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마찬가지로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잠시 쉬라고 한다. 이들에게 "흰옷"이 주어진다.

1) 첫째 인

처음 나타난 것은 흰말과 그 탄 자이다 (6:1-2). 이 사람은 일견하기에 계 19:11이하의 백마를 타신 그리스도와 동일한 듯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그리스도를 가리키기보다는 그리스도를 흉내내는 미혹자를 가리킨다. 후의 다른 세 말 탄자는 모두 불행가져오는 자들이므로 이 첫 번째도 역시 같은 이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말탄 자는 계 19:11이하에 나오는 그리스도와 크게 다르다. 계 19:11이하에 보면 백마를 탄 그리스도는 많은 면류관을 쓰시고,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온다. 하지만 여기의 흰말을 탄 자는 단지 한 면류관을 가지며, 활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욱 결정적인 차이는 그리스도는 분명하게 "충성과 진실" (19:11),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 (19:16) 라는 이름을 가지시지만, 여기의 흰말을 탄자는 이름이 없다. 그는 이름을 감춘다. 그는 그리스도를 흉내내는 미혹자일 뿐이다. 그는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흰말을 탐으로써 성도들을 미혹한다. 성도들이 이 순결로 가장한 미혹자에게 사기를 당한다. 사탄은 "온 천하를 꾀는 자"임을 주의하라 (11:9).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 (고후 11:14). 그는 면류관을 씀으로써 권세잡은 자로 등장하며, 성도들은 이 위엄에 의하여 미혹을 당한다. 그는 활을 가지고 능력을 행하여 성도들을 미혹한다. 그는 승리의 권세를 가진 듯이 보인다.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한다. 그는 실제로 몇번이나 성도들과 싸워서 이긴다 (11:7, 13:7). 하지만 진정으로 이기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5:5). 주의하라, 그리스도보다 미혹자가 먼저 온다! (마 24:5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는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마태 24: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이것은 성도들에 대한 종교적인 핍박이다.

2) 둘째 인

두 번째로 나타난 것은 붉은 말과 그 탄 자이다 (6:3-4).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이것은 국가 간의 단순한 전쟁을 의미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가해지는 종교적인 박해 즉 싸움보다는 죽임을 당하고 희생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은 성도들에 대한 정치적인 핍박이다. 정치에 의하여 성도들이 받는 핍박을 의미한다. 성도들이 이 세상에 평안히 존재하도록 두지를 않는다. 어둠은 빛을 미워한다 (요 3:20). 세상의 정치는 성도들을 미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해치도록 자극한다. 이것은 빛보다 어둠을 사랑하는 모든 시대의 정치가 추구해온 정책이다. 성도들을 핍박하기 위하여 이들은 "큰 칼"을 받았다. 이때 죽임을 당한 그리스도인들은 순수한 의미에서 순교자이다.

3) 셋째 인

세 번째로 등장하는 것은 검은 말과 그 탄 자이다 (6:5-6). 그는 손에 저울을 가졌다. 식량이 대단히 비싼 값에 매매된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이다. 이것은 기근과 흉년 때문에 생긴 식량의 부족상태를 가리킨다고 할 수가 없다. 식량이 넉넉하더라도 이러한 불건전한 매매는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13:17 참조). 단지 어떤 조건이 문제시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때문에 물건을 사는데 큰 곤혹을 얻게 된다. 경제생활에 곤경이 온다. 이것은 경제적인 핍박을 의미한다. "성도들은 그들이 가진 바 신념에 충실하기를 고집하기 때문에 직장이나 사업, 또는 전문분야에서 쫓겨나는 사례가 얼마나 흔했던가?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있어 주일에 일하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났다. 그래서 더 낮은 임금을 주는 다른 직장을 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부양해야 할 가정이 있다. 그 가정에 사치나 행락이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Hendriksen). 이들도 넓은 의미에서 순교자이다. 모든 성도들이 실제로 죽임의 순교를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외의 순교적인 희생을 당하게 된다. 이러한 경제적인 핍박은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4) 넷째 인

네 번째로 등장하는 것은 청황색 말과 그 탄 자이다 (6:7-8). 그의 이름은 사망이며, 그 뒤에는 음부가 따른다. 그는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을 사용한다 (겔 14:21의 내용과 같음).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땅에 존재하는 동안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한 가지 때문에 받게될 고난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땅에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다. 전쟁, 기근, 전염병, 수해 (獸害)가 올 때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나쁜 대접을 받는다. 모든 시대의 성도들은 재해를 만나게 될 때 세상사람들보다 훨씬 악하게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성도들이 이 같은 핍박을 받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6:9-11)?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고 예수에 대하여 "증거" 하기 때문이다 (6:9). 핍박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에 대한 증거 때문이다. 이것은 사도 요한 자신의 경우에도 그렇고 (1:9), 여기 제단 밑에서 탄원하는 영혼들에게도 그렇고 (6:9), 이후에 천년동안 왕 노릇할 성도들에게도 그렇다 (20:4). 만일에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도 않고, 예수에 대하여 증거하지도 않는다면 이러한 핍박은 있을 리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에 대한 증거를 하는 것 그 자체가 세상에서 구별된 자들임을 나타낸다. 하나님께 속하고 세상에 속하지 않았음을 보인다. 여기에 섞임이 없으며, 타협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가 어둠을 사랑하는 땅에 속한 사람들에게 도전이 된 것이다. 하나님을 싫어하는 그들의 본성을 찌른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리스도인들의 증거로 인하여 세상은 흔들리고, 세상은 이 증거를 견디지 못한다. 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에게 핍박을 가한다. 영적 전쟁이 일어난다. 성도들이 당하는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핍박은 이후에 더 자세히 설명될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이 핍박의 영적인 이유도 설명될 것이다 (12-13장).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핍박에 대하여 침묵하시는가? 아니다. 아직 여섯째 인이 남아 있다 (6:12-17). 여섯째 인을 뗐을 때에 땅에 대한 심판이 실행된다. 일월성진과 지구에 변동이 있고,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종과 자주자가 숨는다 (19:18 비교). "전체적으로 살펴볼 때 이 상징은 한 가지의 교훈, 즉 교회를 핍박하던 세상에 대해 쏟아 붓는 최종적이고 완전한 하나님의 진노는 실로 두렵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Hendriksen). 이 심판은 일곱 나팔에서 더욱 자세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심판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백성은 보호되어진다 (7:1-8).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심판은 보류된다. "하나님의 종들"은 일반적으로 신구약의 모든 성도를 가리킨다 (1:1, 2:20, 10:7, 11:18, 19:2,5, 22:3,6). 신구약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들이다. 그런데 특히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인맞은 자들의 수는 14만 4천이다. 이것은 완전수로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구원받은 자들의 총체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처음 익은 열매" (14:4)라고 불린다.

우리는 교회의 이 모든 핍박보다 먼저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의 사역이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에 대한 묘사가 교회의 환난과 시련에 대한 말씀보다 앞서 나온다. 만물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어린양의 다스림 가운데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환난 중에서도 전혀 두려워할 것이 없다.

3. 흰옷을 입은 자들 (7:9-17)

사도는 갑자기 구원받은 구약성도의 총체 외에 큰 환난에서 나오게 될 성도들의 전체를 본다. 이들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에만 제한되지 않고,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 중에서" 뺀 자들이다.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 이것은 전 인류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것은 본래 복음의 대상이었는데 (14:6),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 가운데서 사람을 구별없이 구원을 얻을 기회를 주셨다. 철저하게 무차별적인 구원이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며 (11:9), 사탄의 하수인인 바다 짐승의 다스림을 즐거워하기 때문에 (13:7) 구원에는 조건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 조건은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는 것이다 (7:14).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예수의 피로 산 자들 (5:9) 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다. 이들은 "흰옷"을 받아 (6:11), 입고 있다 (7:9). 이들은 예수의 피로 씻어 의롭게 된 자들이다. 철저하게 선택적인 구원이다. 이들은 구원을 받은 후에 "큰 환난"(7:14)을 겪은 자들이다. 이 큰 환난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앞서 일어나는 교회에 대한 모든 공격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 "이것은 환경에 따라 일어나는 그러한 종류의 환난이 아니라, 사탄의 대행자들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의로 가해지는 공격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 환난을 피하지 않고 뚫고 나간다.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다 (7:14). 이들은 환난을 이긴 자들이다! 이들에게는 이제 다음과 같은 은혜들이 주어진다. 그들은 하나님 보좌 앞과 그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신다. 그들은 다시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고, 해나 뜨거운 상치도 않는다. 어린양이 목자가 되시어 그들을 생명 샘으로 인도하며, 하나님께서는 눈물을 씻기실 것이다 (21:3 이하 참조). 이들은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 (7:9)이다. 셀 수 없는 큰 무리라는 것은 유명한 성도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사람으로서는 이름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모든 성도가 여기에 참여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신다! 이들은 승리와 기쁨을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보좌에 계신 하나님과 어린양 앞에서, 구원이 인간의 공로로는 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찬송을, 모든 천사들이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며 "아멘"을 말할 수 밖에 없는 찬송을 부른다 (7:10):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