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과제의 분리와 사랑의 돌봄

새벽지기1 2017. 4. 20. 07:33


아들러 심리학을 깊이 공부한 일본의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는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에서

모든 인간관계의 트러블은 대부분 타인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하는 것,

혹은 자신의 과제에 타인이 함부로 침범해 들어오는 것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한다(160쪽).

옳다. 타인의 과제에 함부로 개입하고, 타인의 과제를 떠안는 것 때문에,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더욱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네 인생살이가 더없이 힘들고 복잡하고 무거운 것이다.

 

우리네 가정을 들여다보자.

대부분의 부모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녀의 과제에 시시콜콜 개입한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것은 해라, 저것은 하지 말라 등등 매사에 참견하는 건 기본이고,

공부하는 것 외의 모든 것을 대신 해주는 경우도 다반사다.

심지어 자녀의 진로와 결혼 상대까지 선택해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과정에서 자녀는 자녀대로 부모의 개입과 간섭이 싫다며 난리법석이고,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들이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고 야단법석이다.

부부와 형제간에도 옷 입는 것부터 먹는 것까지

서로 참견하고 간섭하는 것 때문에 언쟁이 그치지 않는다.

우리네 가정의 일상은 정말 ‘과제 개입’과 ‘과제 떠안기’로 넘쳐나고,

그로 인해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며 산다.

 

물론 꼭 전쟁을 치르기만 하는 건 아니다.

대한민국 엄마들의 치맛바람이 세계 1등일 만큼 극성스러운 자녀 지원이

오늘날 한류열풍을 일으킨 힘인 것도 사실이다.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깨알같이 관리하고 돌보고 지원하여 성공시킨 사례들도 적지 않다.

그러다보니 ‘과제 개입’과 ‘과제 떠안기’를 당연시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풍조도 생겼다.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깨알같이 관리하고 돌보고 지원하여 성공시키는 것을

능력 있는 부모요 사랑 많은 부모라고 여기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부모는 무능력한 부모요 사랑 없는 부모라며 자책하고

자녀들 또한 그런 부모를 원망하는 풍조가 생겼다.

 

어쨌든 우리네 삶의 문화에는 과제의 분리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다.

과제의 분리는 곧 인정머리가 없는 것으로 통하기 때문에

과제의 분리를 시도했다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인간으로 낙인찍히기 일쑤다.

기시미 이치로도 과제의 분리만을 말하지 않는다.

과제를 분리하되 사랑의 돌봄(지원)은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옳다. 과제의 분리와 사랑의 돌봄은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붙어 있어야 한다.

과제의 분리만 하거나 사랑의 돌봄만 해서는 건강한 성장을 할 수도 없고,

건강한 관계를 이룰 수도 없다.

사랑의 돌봄이 없는 과제의 분리는 자칫 방임이나 타자화로 흐르기 쉽고,

과제의 분리가 없는 사랑의 돌봄은 자칫 집착이나 자기 동일화로 흐르기 쉽다.

아니, 우리의 현실이 이미 그렇다.

우리는 과제의 분리를 내세워 방임과 타자화를 정당화하고,

사랑의 돌봄을 내세워 과제 개입과 과제 떠안기를 밥 먹듯 한다.

우리들 대부분의 삶이 힘들고 복잡하고 부자유하고 피폐한 것도 다 그 때문이지 싶다.

 

바울은 둘 다를 말했다.

사랑의 돌봄에 대하여는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2),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셨다. 그래서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고전12:24-25)고 말했고,

과제의 분리에 대하여는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갈6:4-5)고 말했다.

 

옳다. 과제의 분리와 사랑의 돌봄은 항상 공존해야 한다.

그것도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조화롭게.

과제를 분리하되 사랑의 돌봄을 멈추지 않아야 하고,

사랑의 돌봄을 하되 과제 개입과 과제 떠안기로 나아가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피차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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