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나는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흠모하는 두 분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한 분은 나의 스승이신 신복윤 합동신학대학원 명예 총장님이시고,
한 분은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님이시다.
신복윤 총장님(향년 91세)은 내가 만나본 한국인 중에 가장 잘 생기고 온후한 성품을 가지신 분이시다.
학생들 사이에 ‘영국 신사’로 통했을 만큼 머리에서 발끝까지 신사의 품격이 넘치는 분이시다.
강의에 열정과 박진감이 넘치지는 않았지만 잔잔함 속에 힘이 있었고,
평온함 속에 강직함이 숨어 있었다.
몸짓은 항상 점잖으셨고, 얼굴 표정 또한 일그러짐 한 번 없이 평온하셨다.
교정에서 만날 때면 항상 미소로 반겨주셨고, 졸업 후에도 아내의 안부까지 묻는 자상함을 보여주셨다.
내가 투병을 하던 때에는 건강이 어떤지도 물으며 다독여주셨다.
그분이 총장으로 재직하실 때에는 학교 채플에서 설교하도록 초청해주기도 하셨다.
그런 스승님을 한 동안 잊고 지내다가 갑자기 부음 소식을 들으니 가슴이 먹먹하다.
제자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이 후회로 밀려온다.
오늘 발인을 하면 스승님의 몸은 이 세상을 영영 떠나신다.
존경하는 스승님의 영전에 감사와 송구함을 가득 담아 큰 절을 올린다.
신영복 석좌 교수님(향년 76세)은 개인적인 연분을 맺은 적이 없는 분이시다.
1988년에 출판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와 독자로 처음 만났다.
감옥에서 가족에게 보낸 엽서를 묶은 이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저자에게 흠뻑 빠져 들어갔다.
담백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소박하면서도 영혼의 아름다움이 넘치며,
절제미와 압축미가 도드라진 그의 글에는 그만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었다.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의 따스함과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깊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책 한 권을 읽고 저자를 마음에 깊이 품은 것은 신영복님이 처음이다.
1988년 12월 그분을 마음에 품은 이후 한 번도 떠나보낸 적이 없다.
그분의 저서를 목마르게 기다리면서 [나무야 아무야], [더불어 숲], [강의], [변방을 찾아서],
작년에 출판된 [담론]까지 꼬박꼬박 읽었다.
그분이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한다는 소식을 알고부터는 달려가 청강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다.
몇 번이고 엉덩이가 들썩였다. 하지만 한 번도 직접 강의를 듣지는 못했다.
인터넷을 통해 강의 몇 개를 들었을 뿐.
다행히 영상을 통해 뵈니 묘하게도 글과 목소리와 모습과 얼굴이 모두 닮아 있었다.
건강도 무척 좋아보였다.
오래도록 계셔서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말해주고,
부박함과 상투성에 빠져 휘청거리는 시대의 등불이 되어주실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어젯밤 갑자기 부음 소식을 들으니 가슴 한쪽이 무너져 내렸다.
오랜 세월 마음에 품고 깊이 흠모하던 인생의 아름다운 선배를 잃은 슬픔이 밀려왔다.
아무런 잘못 없이 인생의 황금기인 20대에서 40대까지
꼬박 20년 20일을 감옥에서 살아내셨음에도 인간의 인간됨을 잃지 않으시고
화해와 연대를 외치시며 곱게 세상을 품으신 신영복님이 있어
감사하고 든든하고 행복했는데 갑자기 대한민국이 텅 빈 것 같아 허허롭기 그지없다.
마음 깊이 존경하고 흠모하는 신영복님의 영전에 사랑과 감사의 꽃다발을 바친다.
신복윤, 신영복, 두 분의 별세 소식을 듣고 나는 죽음을 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나의 죽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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