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고 기이하고 역동적인 창조의 터전이다.
결코 포착되지 않는 신비와 은총이 고요히 내려앉은 생명의 숲이다.
동시에 이 세상은 한없이 잔인하고 황폐하고 슬프고 고독한 광야다.
모든 것이 뒤틀리고 뒤엉킨 괴물스런 난장(亂場)이다.
도무지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의 불꽃놀이가 화려하게 펼쳐지는 뜨거운 불구덩이다.
지난 한 주간만 돌아보자.
지난 월요일 이 시대 많은 이들의 스승이었던 신영복 선생님께서 영영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분은 서슬퍼런 박정희 유신정부 시절 통일혁명당 사건이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일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20일을 징역살이했다.
인생의 황금기인 20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를 고스란히 감옥에서 살았다.
실로 억울하기 이를 데 없는 징역살이였다.
그런데 선생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적 폭력에
젊음과 삶을 송두리째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인간됨을 잃지 않았다.
수많은 번민과 내적 소용돌이가 있었을 테지만
오히려 감옥에서 자신을 깊이 성찰하고 새로운 학습을 하며 인격의 깊이와 넓이를 키워나갔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 속에서 씻어내고, 사람만이 희망이라며 사람을 끌어안았다.
더불어 숲을 이루자며 손을 내밀었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부박함과 상투성에 빠져 휘청거리는 이 시대에 성찰의 등불이 되었다.
그분은 진실로 세상의 막장인 감옥을 인생 최고의 대학으로 녹여낸
보이지 않는 내면의 용광로를 가진 분이셨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분에게 큰 가르침을 받았음은 물론이고 그분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따랐다.
그분은 진실로 이 시대의 참 스승이셨다. 인간의 어떠함을 보여준 참 스승이셨다.
반면에 지난 한 주간 우리는 너무도 끔찍한 뉴스에 살 떨리는 분노와 슬픔을 느꼈다.
아버지가 7살 된 아들을 2시간 동안 폭행하고, 죽은 아들의 시신을 훼손해 일부는 버리고
일부는 냉동실에 보관하는 참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산과 들을 헤집고 다니는 들짐승도 하지 않는 일이 인간의 가정에서 벌어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한 편으로는 더할 수 없이 아름답고 고결하고 기이하고 역동적이면서
동시에 한없이 잔인하고 황폐하고 슬프고 괴물스런 것이 이 세상이다.
아담이 에덴동산에 추방당한 이래 세상에는 언제나 전혀 다른 두 얼굴이 공존해왔다.
세상 뿐 아니다. 인간 안에도 전혀 다른 두 얼굴이 공존한다.
한 인간 안에 더할 수 없이 아름답고 고결하고 기이하고 역동적인 요소가 내제되어 있는가 하면,
한없이 잔인하고 황폐하고 슬프고 괴물스런 요소도 꿈틀거리고 있다.
거룩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형상이 내재되어 있는가 하면,
짓밟고 뒤틀고 분열시키는 사탄의 행습도 꿈틀거리고 있다.
신영복 선생님 안에도, 아들을 죽이고 시신을 훼손한 아버지 안에도 두 얼굴이 공존한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신영복 선생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자기 안의 하나님의 형상에 부단히 물을 주었고,
부천의 아버지는 자기 안에 꿈틀거리는 사탄의 행습을 방치하고 끌려 다녔다는 차이가 있을 뿐.
진실로 그렇다. 한 사람이 어떤 인간의 얼굴을 하느냐는 전적으로 그 차이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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