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현수:조직신학

신현수 박사의 조식신학 (136)

새벽지기1 2017. 2. 16. 06:52


주 되심의 영성<하나님 형상>

사람이 하나님과 갖는 바른 관계는 한 사람의 여성이나 남성이 되는 것에 있지 않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모든 장벽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를 흘려주심으로써 제거되었다. 성령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받는 세례 곧 ‘영적 할례’에서 볼 수 있다(골 2장 11-12절, 고전 12장 13절).


성적 관심은 사람이 갖는 자연스러운 품성이다. 시편과 아가서는 성 관계를 묘사한다. 호세아서(1-2장)은 성 관계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기록한다. 남성이나 여성 모두 성이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디나와 세겜 그리고 들릴라와 삼손과 같은 이야기가 그것을 말해준다( 창 34장 1-3절, 삿 14-16장). 성은 오용되고 타락할 위험도 갖고 있다.


남성은 여성처럼 죄에 빠지지만 그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남성은 무력을 써서 갈등을 해결하려고 한다. 이것은 국가 간의 전쟁이나 직장의 압력 및 가정 폭력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남성은 외부적인 것에 집중하는 성향 때문에 수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관계하려고 하고 만나는 사람을 인격적인 방식으로 대하지 못한다. 이러한 외부적 성향은 외부적 세계를 지배하려고 하고 옳지 못한 행위를 적극적으로 하는 죄를 짓기 쉽다. 이것은 여성이 옳은 행위를 하지 않는 죄를 짓기 쉬운 것과 대조된다.


이러한 외부 지향성은 남성이 하나님을 자신과 관계를 갖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는 분으로 보게 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한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신실한 분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는”(행 17장 28절) 생명의 원천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것의 극단적 형태가 일원론이나 범신론이다.
하지만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 곧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 관계를 맺고 존재하고 일하는 분이라고 가르친다. 하나님과 관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죄다.


남성이 갖는 죄의식의 대표적인 것이 정욕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이 성적 자극을 시각적으로 즉각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이것은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정욕은 여성이 뛰어난 미모를 가져서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사귀어 보고 싶은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정욕은 여성을 단지 성적 욕구를 채우는 대상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정욕이 갖고 있는 힘을 남성에게 직접 지적하셨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장 28절).


여기서 간음 행위란 정욕을 채우려는 욕망을 갖는 태도에 그 뿌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독교 전통은 정욕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았지만 때로 정욕의 위험을 너무나 과대평가해서 성적 관심 자체를 문제시하기까지 했다. 성적인 관심을 갖게 될 때, 남성은 자신이 갖고 있는 성적 본성을 부인하든지 아니면 자신뿐만 아니라 여성을 위험에 이르게 하는 성관계가 문란한 생활방식을 따르든지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느낀다.


이러한 불쾌한 선택을 해야 하는 난처한 입장에 빠져 있는 그리스도인이 많다. 특히 성적인 외설물이 널리 퍼져 있는 문화 환경에서 살고 일하지만 여전히 성에 대해 말하고 논의할 수 없는 교회에 속할 때 그러하다.


남성은 죄인이고 죄로 오염된 세상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남성이 남과 바른 형제 관계를 맺고 삶을 나누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서로에 대한 유대감과 신의를 지키는 의식이 유지될 수 있는 경우가 있으나 대부분 그 관계가 감정에 그치고 수준이 낮다.
사람이 이 땅에 살아갈 때 사랑이 중요하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계속>

   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