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현수:조직신학

신현수 박사의 조식신학 (133)

새벽지기1 2017. 1. 9. 06:36


주 되심의 영성<하나님 형상>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인 역할은 그 어느 것도 사람의 모든 모습을 나타내지 못한다. 따라서 남성을 남성적인 것과 여성을 여성적인 것과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면 성의 역할을 고정하는 위험에 이르게 되고 한 남성이 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가 분명하지 않게 된다.


현대 사회가 대부분 기술을 강하게 강조하는 것은 정신과 육체를 나누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성이 신체가 갖는 열망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여성은 땅이고 남성은 문화라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남성과 여성을 대비하듯이 정신과 몸 그리고 이성과 정서를 대비시킨다. 이러한 구도를 신학에 적용한 것이 19세기 유럽 사회에 크게 영향을 끼친 자유주의 신학이다. 이 신학은 하나님의 계시보다 사람의 이성을 앞세운다.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이 아니라 이성이 모든 진리 판단의 기준이다.


자유주의 신학이 이성을 하나님의 계시보다 앞세우는 것은 어떤 동기에서 비롯되었나? 그것은 교회가 진리의 기준으로 강제하고 있는 계시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이다.


계몽주의가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한 여성의 굴종이 촉발되었다. 이 굴종은 과학과 기술이 신앙과 관계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면서 더욱 깊어졌다. 과학과 기술 활동이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의식 때문에 자연을 무제한적으로 개발하게 되었다. 이것의 한 결과로 남성의 공적인 세계와 여성의 사적 세계가 분리되게 되었다.


여권주의자는 정신과 육체, 사상과 행동 및 이론과 실천을 분리하는 계몽주의의 이원론적 유산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특히 가치중립적인 과학 활동을 문제시하면서 지식이란 그 어떤 것이든 상황적이고 전략적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이원론의 부정은 일원론이나 범신론에 이를 위험이 있다, 하나님과 피조물이 근본적이고도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믿는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피조물과 동일시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형태의 우상이든지 허용되지 않는다(출 20장 1-6절, 사 40장 11절 이하, 행 17장 22절 이하 등).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과 멀리 떨어져 있고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기독교 전통은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믿는다. 하나님은 이 세계를 초월하실 뿐만 아니라 세계 안에 계신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삶을 기쁘신 뜻 가운데 이끌어 가신다.
또 다른 문제는 하나님과 피조물의 구별이 때로는 남성이나 여성의 용어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하나님이 아버지로 그리고 땅이 어머니로 표현된다. 여권주의자는 하나님이 남성이고 남성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신학은 남성적 신성과 여성적 피조물이라는 이원론적 비유를 배격한다.


그리고 그것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혹은 육체와 정신을 나누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을 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것은 비단 남녀 관계에 그치지는 것이 아니다. 육체, 성욕 및 신체의 힘으로 하는 노동이 영혼, 감정 및 관계 지향적인 일보다 덜 영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을 거의 모든 기독교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성만찬 및 일상생활의 중요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위험에 이르게 된다.
남성은 남편으로서 복종이라는 말을 흔히 쓴다. 하지만 여권주위는 복종을 부정한다. 그것이 가부장적이고 이원론적이며 억압적인 사회 형태의 하나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정이 하나님께 대한 복종으로 확대될 수 있다.            <계속> 


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