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현수:조직신학

신현수 박사의 조식신학 (130)

새벽지기1 2016. 12. 16. 07:03


주 되심의 영성<하나님 형상>

승리의 노래를 부른 사람은 여성이었다(출 15장, 삼상 18장 6-7절). 산파는 그들 자신의 일 공동체가 있었다(출 1장 15-21절). 여성 친구는 어려움과 기쁨을 나누어 가졌다(나오미와 룻 그리고 엘리사벳과 마리아). 죄스러운 태도와 행동이 특히 일부다처의 가정에 있는 아내들 사이에 있었다. 남자들이 인간관계를 만들어감으로써 이러한 상황이 악화되었다(사라와 하갈, 라헬과 레아, 한나와 브닌나).


이들 자매관계는 그 어느 것도 낭만적으로 묘사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용맹, 웃음 및 기쁨과 더불어 경쟁, 시기 및 배신 및 미움이 있었기 때문이다(눅 1장 39-56절, 빌 4장 2-3절). 충심을 다한 자매 관계가 있다. 그것을 예수님의 여성 제자들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었고(눅 8장 2-3절), 예수님이 죽으실 때 그와 함께 했으며,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의 첫 증인이었다(요 19장 25-27절; 20장 1-18절; 눅 24장 1-11절).
그러한 연대의 형태는 자유로운 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문화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이 문화에서는 여성과 남성이 여전히 심한 차별 대우를 받는 다. 자매관계는 여권주의 운동가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에게 속한다.          


이제부터 남성됨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남성은 무엇보다 독립적인 존재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또한 어떤 이는 남성을 부정적인 면에서 말한다. 가령, 남성은 버릇이 없고, 음주벽이 있으며, 거친 행동을 하고, 호전적 욕망을 가지며, 성적으로 정복하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여성이 아니라는 것이 남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남성이나 여성 모두에게 끔찍한 말이다. 게다가 예술이나 인간적 관계에 관심을 기울이면 남성성을 잃어버린다고 여기는 남성도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남성으로 태어나서 좋다고 여기기 쉽다. 이러한 남성관이 오늘날에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남성은 대부분 자신이 남성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남성은 거울을 볼 때 한 사람으로서의 자신을 볼 뿐이지 한 남성으로서의 자신을 보지 못한다. 그가 가진 성이 자신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남성이 사람됨의 일반적 기준이고 여성이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많은 역사와 문화가 남성이 하는 경험과 동일시되고 있다. 남성의 경험과 통찰이 여성의 그것들을 대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하는 독특한 경험을 나타내는 말이 비교적 많지 않다.


한 남성으로서 하는 경험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분석하는 것이 쉽지 않다. 각 사람은 자신만의 독특한 유전적인 모습과 배경 및 경험에 의해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의 역할 그 자체가 생물학적이고 심리적이며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요인들의 상호 작용을 통해 습득한 것에 근거하여 설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남성이 된 것이 좋은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세기 1장 31절). 이러한 일반적 이해뿐만 아니라 사람이 된 것이 좋다고 하는 특별한 선언을 예수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이었으나 ‘죄가 없으셨다’(히브리서 4장 15절).


다른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어긴 죄 때문에 타락하였으나 여전히 하나님 형상을 가지고 있다. 참된 남성다움이 무엇인지를 예수님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성품이 회복되도록 지음 받았다. 따라서 남성이 된 것은 과거와 갖는 관계에서 좋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숙하게 되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한 현재에서도 계속하여 좋다고 할 수 있다.  <계속>

  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