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현수:조직신학

신현수 박사의 조식신학 (126)

새벽지기1 2016. 11. 15. 06:59


주 되심의 영성 <하나님 형상>

이스라엘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그리고 정기적으로 깨끗한 것은 성화의 과정에 의해서 거룩한 것으로 구별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부정한 물건이나 사람은 정결하게 된 다음에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될 수 있었다.


부정한 것은 불경스러운 것과 똑 같은 것이 아니었다, 비록 부정한 것은 거룩한 것과 접촉할 수 없었고, 불경스러운 것은 깨끗한 것과 접촉할 수 없었지만. 월경은 정상적인 것이었으나 그것을 하는 여성이 정례적인 상태에 있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종교적인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월경 때문에 부정하게 된 여성은 물로 씻어서 정결하게 될 수 있었다.


깨끗하고 부정한 것과 거룩하고 불경스러운 것을 구분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써 없어졌다. 그의 구속 사역은 죄의 결과를 없앴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규정이 더 이상 효력이 없게 하였다. 히브리서는 거룩함이란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고 끊임없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가르친다(히브리서 12장 1-2절). 사도행전은 예루살렘 교회가 성령이 오심으로써 모든 것을 공유하였음을 기록한다(2장 44절). 그들은 갖고 있는 재산을 각자가 필요한 대로 나누어 썼을 뿐만 아니라 부정함의 법에 제한받지 않고 서로 깊이 교제하였다.


하지만 정함과 부정함의 구별을 없애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문제 때문에 심한 내적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베드로 사도의 깨끗하고 부정한 음식에 대한 환상이 그것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여성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정 회원으로 받아들인 것은 정결의 규정을 없앴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한 보기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더 이상 남자나 여자가 없다는 사실(갈 3장 28절)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부정함에 관한 모세의 법을 그릇되게 적용함으로써 여성을 비하시키는 어떠한 시도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예수님이 혈루증을 앓는 여성을 고쳐주신 사건에서 구체화된다(누가복음 8장 43-49절). 그녀가 예수님의 옷을 만진 것은 그 옷을 더럽히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에 관심을 전혀 기울이지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님은 부정함의 규정을 넘어 자신의 옷을 만지는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셨다. 믿음으로 그녀는 병을 고침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은 죽은 야이로의 딸을 고쳐주셨다. 그 아이는 죽었기 때문에 종교 의식의 관점에서 볼 때 깨끗하지 않았다. 이런 아이를 예수님이 살려내신 것은 여성이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놀라운 일을 하신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월경은 사춘기에 이른 여성이면 누구나 겪는 것이지만 출산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월경은 임신과 출산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것들에 관련한 규정은 월경의 그것과 비슷하다(레위기 12장 2-5절). 여성은 남자 아이를 낳은 이후보다 여자 아이를 낳고 난 이후 일정 기간 동안 ‘깨끗하지 못하다.’ 월경에 관한 규정과 대조해 볼 때, 그 여성이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는 데는 씻는 것 이상이 필요했다, 곧 깨끗한 상태가 되게 하려면 종교적 의식이 필요했다. 이 점에서는 남자 아이나 여자 아이가 다르지 않다.


모든 경우에 여성을 위해 속죄하려면 제물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레위기 12장 7절). 제물은 그 여성의 경제적 상태에 따라 다양하다. 하지만 그녀가 낳은 아이의 성별과는 상관이 없다.


여기서 ‘속죄’가 필요하다는 것은 그 여성이 아이를 배거나 출산할 때 죄를 지었다거나 그 아이가 죄가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속죄’란 말은 전문 용어로 히브리어 성경에서 광범위한 뜻을 갖는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후 정결예식이 있었다(누가복음 2장 22-24절). 이 예식은 마리아나 예수님이 죄가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계속>


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