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현수:조직신학

신현수 박사의 조식신학 (125)

새벽지기1 2016. 11. 12. 07:12


주 되심의 영성<하나님 형상>

오늘날 이른바 ‘여권주의’ 운동은 이러한 경향에 대한 통찰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것의 모든 국면을 이제까지 주로 남성의 전망에서 해석한 것과는 다르게 본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사회에서 강조되고 있는 여성됨이란 무엇이고 여성의 삶이란 무엇인가?


흔히 여성은 남성에게 신비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두가 신비다. 하나님이 독특한 방식 곧 그의 형상으로 지으셨기 때문이다. 피는 사람에게 중심적이다. 그것은 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피를 흘린다. 그러나 월경은 여성에게만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남성에게 피를 흘리는 것은 일상적이지 않은 경험이다. 그것은 격한 경기나 전쟁터에서와 같은 곳에서 아니면 남과 싸우거나 도로에서 외상을 입을 때와 같은 사건을 당할 때 겪게 된다. 하지만 피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이룬다. 그것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피가 갖는 중심적인 위치 때문이다.


여성과 남성이 갖는 유일하고 실제적인 차이는 아이를 낳는 것과 관련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은 단지 엄마가 되는 것보다 더 큰 의미와 중요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생명을 낳는 어머니가 되는 것은 커다란 특권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서만 여성을 보는 것은 여성을 기능적인 생산의 관점에서 규정하는 것이다. 성경은 여성을 무엇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격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여성의 삶에 더 없이 중요하다. 여성의 생애의 반 이상 동안 여성의 몸은 아이를 배고 기르는 준비를 한다. 월경이 그것을 나타내준다. 달마다 흘리는 피는 월경 이전에 나타나는 긴장 증상이나 고통과 더불어 여성의 사고 형태에 영향을 끼친다, 곧 생을 일직선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보도록 한다. 이것이 주는 신학적 의미는 남성이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더욱 집중하는데 비해 여성은 하나님이 창조자로서 피조물을 유지시키는 일에 더욱 집중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전통에서 피는 죄의 용서를 상징한다. 그것은 두 성례전과 관계된다. 세례는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을 받는 것을,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피를 마시는 것을 각기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피는 사람이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수단이다(에베소서 1장 7절).


월경은 상류 사회에서 대화의 주제로 삼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그것을 결코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 레위기 15장 19절부터 24절까지는 한 주기의 월경에 이어지는 7일 동안 여인의 정결 의식을 말한다. 그 여성 자신과, 그녀가 그 위에 눕거나 않은 모든 것 및 그녀와 성관계를 맺은 사람은 ‘깨끗지 못하다’고 여겨진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를 몰래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월경을 하고 있는 여인과 성관계를 하지 말라는 레위기의 법을 어김으로써(레위기 18장 19절) 부정한 사람이 되었다(레위기 15장 24절). 여성이 부정한 기간인 7일은 월경기를 나타낸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부정하다는 것은 도덕적이거나 사회적인 수치가 아니라 덜 정기적인 삶의 상태를 뜻한다. 월경은 정상적인 여성의 삶의 부분이지만 그것을 하고 있지 않을 때와 구별된다.


예수님 당시까지 ‘부정하다’는 말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 그것은 사회로부터 축출되거나 거룩하지 않은 것을 뜻했다. 그러나 ‘깨끗하다’와 ‘부정하다‘를 구별하는 것은 거룩한 것과 불경스러운 것을 대조시키는 것과 다르다. 뒤의 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가 아니면 나쁜 관계를 맺는가와 본질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이다. <계속>

  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