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현수:조직신학

신현수 박사의 조식신학 (132)

새벽지기1 2017. 1. 2. 15:57


주 되심의 영성<하나님 형상>

어떤 사회에서는 젊은이가 진정한 남성으로 여겨지려면 일련의 성인식을 거치는 고통을 성공적으로 견뎌내야 한다. 오늘날 그러한 의식을 공식적으로 행하는 사회는 거의 없으나 그것과 비슷한 것은 많다. 가령, 기숙사제 학교나 군 시설과 같은 제도다. 그러면 남성다운 것을 성취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어떤 이는 주장하기를, 그것은 남성이 월경 개시와 같은 생물학적 경계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성인식은 사춘기를 훨씬 넘어서 행해지는 것이 많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신병 훈련소다. 많은 남성은 적을 이기거나 적어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전까지 자신이 남성다운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최악의 경우, 남성은 자신의 신체가 힘이 세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재학인할 필요를 느낀다, 마치 그것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것 없이는 자신의 남성다움을 확신할 수 없는 것처럼.


왜 남성은 자신의 정체성을 성취 지향적으로 보는가? 그것은 신체적 요인이 포함되어 있다. 프로이드(Freud) 계열의 심리학에 따르면, 그것은 아이 양육의 형태와 관련된다. 아이는 나면서부터 엄마와 친밀한 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엄마와 분화한다. 남자 아이는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대상으로 보게 되면서 엄마 대신에 아버지에게 향한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에서 아버지는 아이가 초기 단계에서 아이와 거의 함께하지 못한다. 그래서 남자 아이는 자신이 남자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하는 명확한 역할 본보기가 없다. 이러한 독특한 관계와 경험의 결합 때문에 남성의 심리는 분열이 일어난다. 이러한 분열 때문에 내면의 친밀한 면과 외부의 신체적 삶이 분리되고, 그 결과 삶이 여러 가지 칸막이로 나누어진다. 이것이 오늘날 공적인 직장 세계와 가정에서 살아가는 사적인 세계가 구분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결국 개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과 능력을 갖지 못하고 외부에 있는 것과 신체적인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된다. 


이러한 분리는 대상을 서로 대조되는 둘로 나누는 이른바 이원론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것이 위계질서의 형태로 보는 사회 구조의 배경이 된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여성을 남성보다 낮은 존재라고 보는 가부장적 사회다. 게다가, 이러한 분리는 오늘날 많은 사회에서 남성적인 이성과 기술을 여성적인 상상력과 관계성보다 앞세우는 것을 뒷받침한다.


남성성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위의 개념에 비추어보면, 그것은 매우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그것은 남을 이끌어 가고, 공격적이며, 지배하려 하고, 감성보다 이성을 앞세우는 역할의 총체를 뜻한다. 이와는 달리, 여성성은 수동적이고 아름다우며, 남을 따라가고, 아이를 기르며, 남을 돌보고, 부드럽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개념은 오늘날 문학뿐만 아니라 일상 대화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지나친 일반화다.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이라는 개념은 사람이 서로 다른 모습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아는 데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 보려고 하는 고정 관점이 되면 혼란시키는 것이고 위험한 것이다.
특히 남성이 남성성을 강조하게 되면, 자신이 갖고 있는 신체적으로 강한 힘을 남을 지배하거나 억압하는 데에 쓰게 되고 그러한 방법으로 남성다운 사람이 되려고 한다.  하지만 남성은 여성은 다 같이 사람이다. 남성은 사람이  갖고 있는 모습 가운데 남성 부분을 나타내고 여성은 여성 부분을 나타낸다.   <계속>

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