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사도행전

다시 보는 사도행전 (3) (행 2:1-13)

새벽지기1 2016. 12. 1. 07:11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오순절에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십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있던 모든 제자들과 예수를 믿는 모임자리에 성령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이 성령의 오심은 성경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것과 우리 신앙생활의 현실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과 자주 그 촛점이 달라지곤 하는 중요한 신앙상의 문제가 되곤합니다.

성령이 충만해서 확신과 감격과 새 힘을 얻고 큰 능력을 행하는 것 다 사실이지만,

성경에서 성령강림으로 하고싶어하는 얘기는, 촛점이 그것이 아닙니다.

1장 4절에 보시면 예수님이 승천직전에 이런 말씀을 하시죠.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입니다. 약속하신 성령입니다.

이 말씀은 요엘서 2장에 예언된 내용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약속이죠.

 

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이 무슨 말이냐하면 요엘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장면입니다.

정확히 이스라엘이 남유다 북이스라엘 두 개로 나누어졌을 때, 남왕국 유다에 대하여 한 회개의 촉구 그리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것이다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당시 유다는 대단히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길로 갔고 하나님께서 이 요엘선지자를 세워 남유다 백성을 권면할 때는, 이미 그들이 메뚜기 떼로 인한 극심한 재난을 받은 후 였습니다.

'그 재앙이 너희가 하나님을 좇지 않아서 일어난 하나님의 경고요 심판이다, 만일 말을 듣지않으면 더 심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테니 지금이라도 회개해라' 하는 장면입니다.

15절 이하에 보십시요. 그러니까 요엘은 이러기에 이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15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16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17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했고, 남왕국 유다는 곧 뒤이어 바벨론에 멸망합니다.

아직은 멸망당하기 전인데, 회개하지 않으면 그 심판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요엘 선지자는 남왕국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 용서를 빌라 구원을 구하라' 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18절에 그 때에,, 이렇게 해서 우리 잘 아는 28절까지 아니 32절까지 전부 하나님의 약속과 앞으로 될 일의 대한 하나님의 뜻이 약속됩니다. 좀 읽고 얘기하죠.

 

18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
19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말미암아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가 나라들 가운데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
20 내가 북쪽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앞의 부대는 동해로, 그 뒤의 부대는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리라

 

그 때에 하나님께서 일어나 내 백성들이 더 이상 수치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이방사람들에 의하여 멸망당하는 일이 없도록 그들을 대적하여 쳐들어 오는 군대를 내가  쫓아보내 망하게 하고 내 백성을 붙들리라,, 그래서 이 `그 때`가 읽어보면 분명히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리라`로 들립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북왕국 이스라엘에서나 남왕국 유다애서나 회개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북왕국은 앗수르에 망했고 남왕국은 바벨론에 망하여 붙잡혀 갑니다.

앗수르도 그랬고 바벨론도 그랬고 '하나님이라는 신은 자기네 섬기는 신만 못하다' 라고 큰소리를 치며 잡아갔습니다.

그 일이 일어났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때에 내가 이렇게 하리라' 라는 것은 우리가 본 역사적인 이 사건으로 이해해 볼 때, 요엘이 회개를 외치는 그 때에, 그래서 회개가 실제로 실천된 것이 아니라, 회개가 필요하다고 선언되는 그 시점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터졌다는 얘기입니다.

지금 읽은 18절에서 20을 어떻게 이어받느냐하면, 같은 내용을 이렇게 이어 받습니다.

 

21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22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24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25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26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적군을 몰아낼 것이라,, 그리하여 이스라엘을 지키실 것이라,, 그리고 풍족한 것으로 주사 그의 백성들로 기뻐하며 감사하게 할 것이라,,`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무슨 이유로요?

너희가 회개해야 된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다들 나와 회개해라, 그 시점, 회개가 필요한 시점, 그들이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고 복받을 조건이 아닌 시점에서, 하나님이 구원을 이미 외치며 허락할 축복들을 그의 백성들에게 너무나 풍성하게 약속을 합니다.

무슨 이유로요? 무엇을 조건으로? 27절,

 

27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다, 이스라엘은 내 백성이다, 그러므로 내가 내 백성을 망하게 놔 둘수 없다`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구원하여 축복하신 그 후에, 28절,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에서 성취된 이 영입니다.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라` 입니다.

원래 구약에서는 성령의 임재는 기능과 직무로 제한 됐습니다.

제사장직을 맡거나 선지자가 되거나 왕이 되었을 때 주시는 어떤 일시적인 한정적인 임재였지, 지금 신약시대가 갖는 것같은 늘 함께 하시는 성령으로는 구약시대에는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이제 성령사건에서, 성령강림이 가지는 역사적 그 현실로 하나님이 신약시대를 여신 증거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말하는 바와같이 아무도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습니다.

성령시대가 됐죠. 권능의 시대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 어떤 의미?

창세기 6장 1절,,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내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않겠다, 내가 저 죄짓는 인류를 내버려 두겠다, 자기네가 선택하고 자취한 길이 무엇인지 보게 놔두겠다,


로마서 1장에 설명하는 식으로, 사람의 정욕대로 버려둔 시절이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이 무엇을 낳는지,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세상이 무엇이며, 삶이 무엇인지 보고 경험하는 시간을,, 그래서 그 자업자득의 과정을,, 시간을,, 하나님이 허락하셨다고 합니다.

창세기의 중요한 기록들이죠.

세상의 기원, 인류의 기원, 그 존재의 가치, 의미, 현실에 대한 단서들 입니다.

어느 종교도 어느 학문도 밝히지 못한 사실들을 증거하고 있죠.

하나님께서 이 버려두어 자기의 정욕대로 살게했던 시절에, 하나님이 중요한 간섭을 하나 하십니다.

창세기 11장, 바벨탑 사건입니다.

 

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공멸을 막기 위해서, 파멸을 막기 위해서 언어를 혼잡게 하시고 인류를 흩어십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좋은 것을 해내지 않습니다. 악이 더 크게 발생할 뿐입니다.

그래서 어느 모임엘 가든지 조직을 만들면 법과 규칙을 만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교회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우린 당연히 더 나아야 되는데도 우리는 아직 완성된 성인들이 아니기 때문에 규칙이 있어야 됩니다. 한 나라, 한 사회를 유지할려면 법이 있고 질서가 있어야 됩니다. 또 고급화된 윤리가 있고 도덕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사람을 고쳐내지 못합니다.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죠.

이 흩어진 인류, 하나님과 단절된 인류에게 하나님이 이제 찾아오십니다.

요엘서에 얘기했던 그대로 재난을 당하고 그것이 영원한 심판의 전조로 주어줘서 회개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회개할 줄 모르는 인류에게, 하나님이 오셔서 큰 일을 이루십니다. 풍족케 하십니다. 하나님이 큰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 신약시대에 와서 분명해 진 것, 예수로 말미암는 구원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령이 오십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는 성령강림의 첫 번째 사역은 오늘 본문에서 보는바와같이 오셔서 한 첫 번째 일은,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 합니다. 성령께서 이 일을 맨 처음 하십니다. `성령충만 = 방언` 이 아니고 성령이 충만했는데, 그 성령께서 맨 처음 뭘 하셨냐하면, 외국어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외국어는 왜?  9절 이하에 있는 바와같이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이게 다 그 시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그 세상입니다. 여기서 아시아는 늘 터어키입니다.

온 세상에서 온 경건한 유대인들, 자기네가 살던 곳에서 듣던 그 언어들을 이 사도들이 합니다.

무슨 의미죠?

이 흩었던 하나님과 단절되고 공멸을 면케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흩었던 인류를 하나님이 찾아오사, 우리와 화목하시고 우리와 하나로 묶으십니다. 하나로 묶어십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묶으십니다.

그 성령강림의 역사적 의미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에 가시면,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잘 알고 계시는 구절 일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자기를 위하여 살던 이기적인 인생이었지만, 예수를 믿고는 이웃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가신 길을 뒤좇는 순종하는 삶을 살자` 이렇게 자꾸 윤리화 됩니다.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나를 미쳤다고 해도 좋다, 난 미친 것이 사실은 아니고 딴 세상에 산다고 얘기를 할려고 한다" 그런 뜻의 요지입니다.

어떤 세상?

"내가 나를 책임져야 했던 세상, 세상이 전부였던 세상에서, 이제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보호,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복주심의 세상으로 우리를 부르셨다, 나는 그 세상에 살고 있다, 하나님과 화목된 하나님의 자녀인 세상을 산다, 우리는 그래서 아무도 육체대로 보지 않는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세상을 만났도다,,' 세상의 질서, 세상의 보상이 전부인 세상, 내가 나를 보호하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의지하거나 도움을 청할 수 없는 그 세상에서 하나님이 아버지인 세상, 언제든지 "아버지!" 하고 부를 수 있는 세상, 그 아들을 주신 사랑과 인류역사의 주인이시요, 운명을 쥐신,, 그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능력과 개입과 관심의 대상으로 사는 자가 됐다! 존재론적으로 만이 아니라, 세상 자체를 그 세상을 만났다!"

성령의 오심으로 확정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체험 안에서 확정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으로 확정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배반한 인류의 죄와 불순종을 어떻게 처리하셨는가? 에 대하여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다시 화목케 하시며,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을 회복하셨도다.

그것을 이미 이루셨고 지금 세상에서 벌써 시작하셨다. 하나님과의 화회를, 그 복받고 사는 인생을, 하나님의 일하시는 권능에 참여함을 시작하셨도다!

이것이 성령강림의 의미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으로 돌아가시면 4절에 있었던 조금전에 얘기한,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러니깐 약속했던 성령의 오심으로 세상 역사가 윤회하거나 공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직선으로 진전하고 있고, 그 뜻과 성취를 위하여 진행되고 있다! 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느낌이나 하나의 기능으로써 신앙을 이해하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운명의 대하여 영원한 가치와 존재의 진정한 영광을 약속받은 자로 역사 속을 살며, 세상을 살며 우리 인생을 인도받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인생은 풀어야할 숙제가 아니라, 걸어가야할 길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닥친 모든 일을 해결하여 무슨 답을 만들어내어 위대해지거나 쓸모있거나로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 속에서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주신 만큼의 열심과 목적을 가진 하나님의 거룩하심에의 참여를 배우고 채우고 증언하고 누리고 사는 인생으로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그 약속의 성취가 이 약속을 우리에게 하나 더 허락합니다. 1장 8절이죠.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땅 끝이죠. 예루살렘에서 보면 여기는 Far Far East 예요 ^^

우리말 표현으로는 극동인데,, 말장난으로 이게 파 파 이스트,, 극극극동,, 변두리끝의 변두리,, 변두리 중에 변도 아니고 두도 아니고 리의 이,,까지 왔어요!!

복음이 전해지는 것에 문제가 아니라, `모두에게! 물이 바다를 채움같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믿음이,, 하나님의 뜻이,, 어느 누구도 비켜가지 않고 외면되지 않고, 모두에게 충만히 이루어질 것이라,,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너희가 권능을 받고,,!` 입니다.

그 아들을 보내신 지극하심과 진정성과 능력과 인류 모두를 향한 온 역사를 마무리 짓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능력과 은혜와 약속 속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큰 그림의 극히 작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지 모르지만, 우리는 하나의 자리를 하나님의 신비한 손길과 능력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생이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강림의 의미입니다.

 

과연! 과연 하나님은 구원을 이루셨도다!

그의 뜻을 신실하게 지키셨도다!

우리의 무력함과 무능함과 부지함과 반역을 뚫고 당신의 약속을 이루셨도다!

너희는 다 기뻐 찬송할지어다!

하나님께서 큰 일을 행하셨도다 할지니라! 를 성령강림에서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님 오셔서 이 문제 해결해 주시고 내 마음을 기쁘게 하시고,, 그렇게 하지 말라는 기도를 하라는 것 아니고,

얼마나 큰 그림 속에 큰 우산 속에 큰 능력 속에 큰 품 속에 여러분이 안겨 있는가를 기억하여 여러분의 신앙을 여러분의 인생과 존재를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잘 울고 잘 웃고 도망가지 마시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지켜내십시요.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리를 지켜야 들어와 넘칠 것이 생깁니다.

돌아다니면서 문 두들기지 마시고, 여러분 집안을 여러분의 마음을 여러분의 영혼을 먼저 하나님 앞에 바쳐 채워 넘기십시요, 여러분의 각자의 자리와 인생의 소중함을 권능을 받은 자로 이해하시고 감사로 순종하시는 인생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가 어떤 능력과 어떤 뜻과 어떤 손길과 어떤 축복 속에 붙잡혔는지 오늘 말씀으로 뵙니다.

우리의 작고 아무도 거들떠 보지않는 숨겨진 인생이 하나님의 신비한 손길이요 기적의 자리인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니 성경이 요구하듯이 하나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일을 자기 자리에서 자기 안에 채우게 하옵소서.

남에게 떠들어 책임 떠넘기지말고 고함질러 도망가지 말고 자기 안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넘쳐흘러 하나님의 기적에 꽃피우는 인생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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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교회 박영선 목사 주일예배설교 녹취록 이택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