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43) 접속과 검색의 문화

새벽지기1 2016. 11. 3. 07:16

검색자여, 기독교적 분별력을 갖춰라
 

  
 

모르는 건 뭐든 ‘선한 이웃, 네이버’에게 물으라는 말에 ‘다음’이 “청춘이여 검색하라”는 광고로 응수하는 중입니다. “난 아직도 라마의 석양을 잊을 수 없어!”라는 말에 “에이, 라마는 동물이죠”라는 면박이 날아듭니다. 결론은 모르면 “다음 검색하면 되지”입니다. 곧바로 페루 수도는 ‘리마’임이 밝혀지니까요.  

검색엔진의 힘
검색이 인터넷에서 가장 유용한 기능임은 말할 나위 없습니다. 구글, 네이버, 빙, 다음 같은 검색엔진은 전세계 컴퓨터에 ‘축적되고 정리되어 있는… 정보를 찾아내어 신속하게 제공’합니다. 검색엔진은 시간과 장소를 넘어서는 무소부재에 전지(全知)까지 갖춘 정보의 샘으로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궁금한 것을 검색할 수 있게 된 지금, 수백 년간 정보의 보고로 여겼던 <백과사전>은 전시대의 유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검색엔진들은 모든 사람을 ‘잠재적 전문가’로 만들었습니다. 아프리카 토인이라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빌 클린턴 대통령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원하는 문서며 사진이며 동영상을 손쉽게 찾아 낼 수 있습니다. 상품가격 비교나 실시간 주식시세 파악도 가능합니다. 설교도 본문만 집어넣으면 바로 수백 편이 뜹니다.

전세계 곳곳을 보게 해주는 기능도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관광지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호텔이며 음식점과 교통편 예약도 마칠 수 있습니다. 세계 유명 박물관의 소장품들을 감상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공짜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 보입니다. “전세계 컴퓨터의 정보를 조직하여 누구나 접속하여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글의 사명 선언은 성실히 실행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검색의 상업화와 정보과잉

하지만 검색엔진은 기업이 상업적으로 운용합니다. 정보와 광고의 경계가 불분명해진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노골적인 광고 외에도 정보순위 조작도 잘 알려진 문제입니다. 정보의 신빙성도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정보과잉은 더 근본적인 골칫거리입니다. 예를 들어 상품 가격이나 품질에 대한 정보는 너무 많아 오히려 결정을 어렵게 만드는 때가 많습니다. 프랑스의 문화비평가 자끄 엘룰의 경고처럼 “너무 많은 정보가 오히려 무기력과 혼돈”을 주기 때문입니다.

단어의 일부만 입력해도 찾고자 하는 내용을 앞질러 제시하는 ‘자동완성기능’에는 정반대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 기능은 우리의 관심사를 미리 알아서 척척 앞서갑니다. 검색엔진이 검색자 개인의 관심사, 위치, 성향, 취미, 관계를 추적해 의도를 효과적으로 파악해 놓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여기엔 검색자가 좋아하는 것을 확증해주는 편향된 정보만을 제시할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마치 간신에게 둘러싸인 폭군의 눈이 가리워지듯 말입니다.

검색을 통해 얻어지는 성경에 대한 정보도 특정 교리에 의해 왜곡하고 끼어 맞추어질 수 있습니다. 빠른 검색으로 손쉽게 얻은 정보를 오랜 경험과 숙고를 통해 얻어진 지혜와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진리를 찾기 위한 방황과 인내를 통한 구도의 길을 몇 번의 클릭으로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정보검색이 우리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데려다 주지 못할 것은 분명합니다.

 
검색의 지혜

정보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검색엔진은 정보를 보다 “빠르고 편하게 생성하고 저장하고 분배하는” 일을 가능하게 할 뿐입니다. 검색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통계적으로 검색된 순위에 따라 정보를 제시할 뿐 중요도를 따라 정리해주지도 않습니다. 검색을 통해 모든 지식을 체계화하려는 구글 같은 포털사이트의 시도는 또 하나의 바벨탑을 쌓는 일입니다.

검색엔진에 대한 과도한 신뢰는 사람들을 반사적으로 정보수집가로 만듭니다. 상업적 검색엔진은 “우리가 항상 접속되어 있고, 항상 새로운 정보를 찾고, 그 모든 것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런 자세는 통계학적인 규칙에 기초해 의사결정을 비인격화하고 책임감 없는 수동적인 태도를 심습니다. “정보의 수집과 전파가 사회에 진보와 행복을 약속한다는 무분별하고 근거 없는 믿음”은 우상숭배입니다.

정보란 본래 형태를 제공(inform)해 행동을 지시한다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정보에 입각해 매사를 결정하려는 이 세대를 본받는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힘써야 합니다. 이슬람 세계와 유대 사회는 자기들 신앙에 부합하는 것만 검색되는 엔진을 개발하려 애써왔습니다. 중국도 구글과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엄청난 투자와 국가 권력으로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보홍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정보를 걸러내려는 노력은 필수적입니다. 검색엔진을 지혜롭게 활용할 최고의 정화장치는 검색자가 기독교적 분별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신국원 교수  opinion@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