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41) 폭력 문화

새벽지기1 2016. 10. 23. 07:40

폭력 조장하는 건 문화 아닌 야만
 

  
 

윤 일병 폭행치사사건은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어떻게 이 시대의 평범한 젊은이들이 동료를 그토록 잔혹하게 때려 숨지게 할 수 있는지 놀라울 뿐입니다. 가해자들 중엔 고위층 자제가 끼어있었다는 사실은 더 큰 충격을 던집니다. 이 사건은 군대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폭력적인 문화에 젖어있는 결과가 아닐지 심각하게 돌아보게 만듭니다.

누가 괴물을 만드는가?

15년 전 미국 콜로라도 덴버 교외의 한적한 마을 고등학교에서 총격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자동소총을 든 두 학생이 30여 명의 사상자를 낸 후 자살로 끝냈습니다. <타임>지는 “무엇이 이들을 괴물로 만들었느냐”는 표지 아래 원인을 추적했습니다. 한 기자는 두 학생 모두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 중독자이었음을 밝혀내 그 영향을 지목했습니다.

한 군사전문가는 <크리스차니티 투데이>에 보다 설득력 있는 글을 실었습니다. 인간은 같은 종족을 살해하는 것에 본능적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 군사훈련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이 적을 주저 없이 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 게임들은 군대 못지않은 살인훈련을 아이들에게 시키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조준훈련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사람을 쏠 수 있는 잔혹성을 길러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을 괴물로 만든 것은 폭력적인 문화며 특히 야만적인 게임을 만든 어른들이라고 했습니다.

폭력에 대한 오락적 묘사의 유해성 논란은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플라톤은 예술의 해악을 질타했는데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유명한 카타르시스 이론으로 상반된 주장을 폈습니다. 예술은 비극을 묘사함으로써 오히려 그 위험성을 사전에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 후 논란은 지금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게임과 살인훈련

아마도 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오락적 게임은 로마의 검투사 경기였을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로마 사회의 그 누구도 비판을 제기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세네카 같은 스토아 철학자나 유명한 고전인 <명상록>을 쓴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초대교회 교부 중 터툴리안 같은 이들만이 용감하게 질타하기 시작했습니다. 검투사 경기는 438년에 가서야 완전히 폐지됐는데 기독교인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오늘날 많은 청소년들이 빠져 있는 오락들은 검투사 경기보다 더 잔혹한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과거와 미래의 온갖 상상 가능한 무기를 동원해 찌르고 베고 머리를 쏴 날리는 게임들이 그것입니다. 시뮬레이터처럼 인간을 살인자로 훈련시키고 있다는 주장은 과장만은 아닙니다.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뇌를 조건반사로 폭력적이게 만들어간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군사전문가는 실제로 한 번도 실탄사격을 해보지 않은 아이들도 총을 잡으면 놀라운 명중률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증언합니다. 가장 주목한 점은 10대 청소년들이 주저 없이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는 것입니다. 폭력에 길들여진 우리 아이들도 총이 아닐 뿐, 집에서는 동생을, 학교에서 후배를, 군대에 가서는 후임병을 학대하는 것이 놀랄 일일까 싶습니다.
 

폭력문화 근절

폭력적 영화와 드라마, 컴퓨터 게임 같은 대중문화의 영향에 대한 논란은 간단치 않습니다. 스펙터클 영상에서 극히 사실적으로 묘사된 폭력이 어떤 해를 끼치는지 논란은 사실 큰 의미가 없습니다. 실제로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 일률적으로 특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상식을 거스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는 폭력을 조장하고 즐기도록 만드는 것은 문화가 아니라 야만이라는 사실입니다.

로마는 칼을 들고 직접 적군을 죽여야 했던 시대인지라 잔혹함에 대해 기준이 달랐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피비린내 나는 살상을 축제처럼 즐기고 잔인함을 용기로 칭송하는 문화에 젖어 문제의식조차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황제가 그것을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판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런 가운데서 기독교인들이 다른 안목으로 문화를 비판할 용기를 가졌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시대적 분위기를 거스르기 어렵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의 게임을 막는 일만을 생각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은 학교와 군대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비판과 반성은 사건이 났을 때 잠시뿐입니다. 세상은 어찌되었든지 기독교인들만이라도 폭력적 문화에 대해 강력한 비판의 소리를 발하고 근절 노력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신국원 교수  opinion@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