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45) 드라마 천국

새벽지기1 2016. 11. 10. 07:32


드라마 가치, ‘막장’과 바꾸지 말아야



 

  
 

대한민국은 드라마 천국입니다. 외국 프로그램을 누르고 안방극장을 평정한 우리 드라마는 세계로도 뻗어나가 한류의 중심축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텔레비전에서는 할리우드도 맥을 못 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송사마다 뉴스나 교양프로를 제쳐 놓고 드라마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이런 추세 속에 이른바 ‘막장’ 드라마가 창궐하는 것은 더 큰 일입니다.  

드라마의 가치

드라마는 진실을 탐사하는 발견의 기술입니다. 예술이 모두 그렇지만 특히 드라마는 꿈을 꾸게 하고 삶의 비전을 줍니다.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기도 합니다. 시청자는 드라마가 던지는 비전을 따라 자신을 바라보며 삶의 변화를 촉구 받습니다. 걸작 드라마는 보는 이를 진실과 선과 아름다움을 지향하도록 변화시킵니다.

사람은 보고 듣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배웁니다. 드라마는 허구이지만 지적-감정적 자극을 통해 전인적 반응을 일으킵니다. 몇 달씩 계속되는 이야기 속에 빠져들다 보면 영향을 받게 마련입니다. 예술경험의 본질상 적어도 드라마를 보는 동안은 시청자의 정신이 작가의 상상의 세계에 의한 식민지가 된다고 합니다. 작품의 메시지를 비판하고 거부하는 것은 이해하고 나서야 가능합니다. 의식적인 거리두기 조차도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텔레비전 프로 중 비중이 제일 큰 드라마는 대중문화의 핵입니다. 좋은 드라마가 훌륭한 삶을 살게 한다면 악하고 추한 이야기는 문화를 오염시킬 수 있습니다. 나쁜 드라마는 사람을 잔혹하게 하며, 연약하게 하고 가치관에 혼란을 가져옵니다. 드라마는 인생을 다루기 때문에 도덕적이어야 합니다. 사치와 폭력을 꾸짖고 이기적 쾌락을 부끄럽게 하고 편견과 무지의 벽을 무너뜨려야 할 드라마가 쾌락적이고 허무주의적이며 냉소적이라면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막장 드라마

‘개그콘서트’에 ‘시청률의 제왕’이라는 비판 코너가 등장할 정도로 우리 텔레비전 드라마엔 막장이 판을 칩니다. 억지 설정에 대본도 연기도 엉망인 드라마가 많습니다. 소재도 불륜, 패륜에다 폭력성이 난무합니다. 시궁창 같은 막장을 억지로 해피엔딩으로 몰아가는 과정 역시 어이없을 정도로 비상식적이거나 진부할 정도로 뻔합니다. 극성스러운 시청자들의 성화에 밀려 모든 갈등을 마술처럼 무리하게 서둘러 봉합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인 저질 드라마는 시청률이 높게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욕을 해대며 오기로 끝까지 보며 때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해서 ‘욕 테라피’라고 한답니다. 권선징악을 표방하여 과정이 어떻든 결국엔 모두 행복해지는 어설픈 설정아래 악역들의 반사회적인 행위까지 미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나마 비판하는 것은 나은 편입니다. 워낙 전개 속도가 빨라 비판할 시간적 여지가 없이 빨려 들어가기도 한답니다.

한류를 타고 세계를 겨냥하다 보면 가능한 넓은 공감대를 겨냥하는 대중문화의 고질적 문제가 드라마에도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시청률이 지상 과제이다 보니 재미를 지상 가치로 놓고 성과 폭력이 가장 흔한 호소 방법으로 동원되곤 합니다. 워낙 드라마가 많이 만들어지다 보니 예술적이고 높은 수준의 걸작이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도덕적 허구: 걸작 드라마

이런 현실을 볼 때 분별력 있는 시청 습관을 길러야 할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드라마는 영향력에 비해 방송심의에서 엄격한 규제를 하지 않는 편입니다. 반사회적이고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15세 등급입니다. 가족들이 함께 보는 시간대에 방영해 아이들도 보는데다 케이블에서는 24시간 재방송하기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시청자의 의식이 높아져야 합니다. 방송을 바꿀 수 있는 제도도 이미 구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청자권익보호위원회에 불만을 제소하거나 방송국별로 항의도 가능합니다. 이 위원회의 목적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지 아니하는 사항 및 방송서비스의 질적 향상에 대한 시청자의 의견을’ 받아 개선에 반영하는 것이라 규정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시청자들의 항의로 조기종영 되거나 작가가 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작년 가을 KBS가 해외걸작드라마를 폐지하면서 이젠 비교 대상마저 없어졌습니다. 1963년 이래 영국 BBC가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 방영하고 있는 ‘닥터 후’는 상상력을 높여주는 프로의 대명사입니다. 흑인들의 정체성을 바꾸었다고 평가하는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나 씨 에스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는 기독교적 가치가 배어있는 걸작입니다. 의식 있는 시청자가 좋은 드라마 제작에 기여하고 나쁜 프로를 정화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꼭 기독교적인 주제가 아니어도 바르고 아름다운 비전이 담긴 드라마가 국민의 사랑을 받는 때가 오길 꿈꾸어 봅니다.

신국원 교수  opinion@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