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프란시스 쉐퍼

쉐퍼의 사회개혁 운동의 교회사적 배경(1) -칼빈

새벽지기1 2016. 4. 30. 17:07


제1장 쉐퍼의 사회개혁 운동의 교회사적 배경

제1절 시민저항의 물꼬 칼빈과 칼빈주의자들

개혁주의 사상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칼빈과 칼빈주의자들의 삶은 개혁주의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특별히 사회개혁의 측면으로서의 사회참여의 문제는 개혁주의 신학의 본질적 특징인 하나님의 보편적 주권에 대한 강조이다. 이러한 개혁주의 사상의 원류는 칼빈에게서 살펴 볼 수 있다. 특별히 칼빈의 시민저항의 사상은 불의한 정치권력에 대하여 그리고 불의한 사회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개혁주의적 답변인 것이다. 

쉐퍼의 사상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면은 이 신학적 사상의 흐름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별히 한국교회의 매우 이원론적인 사회사상을 가지고 현실에 있어서 쉐퍼의 바른 이해는 개혁주의 사상의 바른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본 장에서는 개혁주의 자들의 흐름을 역사적으로 제시하고 전체적으로 쉐퍼의 입장이 어떤 선상에 서있는가를 살펴 볼 것이다. 그 첫 번째의 주자는 종교개혁의 화신이요, 개혁주의 신학의 거두라 할 수 있는 칼빈으로 시작한다.

1.칼빈[John Calvin] 시민저항운동

칼빈의 관심은 그의 제네바 시에 대한 관심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제네바 시에 대한 칼빈의 관심은 개인영혼구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제네바를 개혁”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칼빈의 관심은 불의한 정권 불의한 사회에 대하여 물꼬를 트는 작업을 하였다.] 본 논고에서는 칼빈의 사회개혁운동의 일환으로서의 시민저헝운동에 대하여서만 한정 할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이 가지고 있는 정치에 대한 태도 권력에 대한 태도등은 양낙홍의 “개혁주의사회윤리와 한국장로교회”[서울 ,한국개혁주의 신행협회 1994]와 CHRISTOPH JUNGEN 의 CALVIN AND THE ORIGIN OF POLITICAL RESITANCE THEOY IN THE CALVINIST TRADITION "칼빈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사회참여 -칼빈의 저항신학- [서울 ,실로암 1989]를 참고하기 바란다.

칼빈은 정치권력에 대한 그의 관점은 매우 보수적이었다. 그는 위에 있는 권세에게 복종하는 것이 정당함을 역설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주께서 어떤 사람들을 왕위에 오르게 하실 때에는 그의 통치를 원하신다는 그 분의 결의를 우리에게 증거 하신다. 이 점에 관한 성경의 일반적인 증거는 다음과 같다. 솔로몬은 잠언28:2절에서 ‘나라는 죄가 있으면 많은 주관자가 많아져도’ 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욥기12장은 ‘열왕의 맨 것을 풀어 그들의 허리를 동이시며’라고 한다. 우리가 일단 이 점을 인정하면 그 다음에 할 일은 섬기고 사는 것뿐이다.”]존 킬빈 기독교 강요 20장 28절 [서울 : 성문사 1996] pp.1017

칼빈은 그 어떤 정치 권력에도 복종해야 함을 그는 역설하였다. 그 왕이 비록 악한 왕이라 할지라도 복종하는 것이 성경의 요구라고 하였다.]존 칼빈,기독교 강요 20장 26절, pp.1013
칼빈은 말하기를 “권리를 지키는 것은 국민이 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즉 우리가 지배자들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우리는 그들에게 최대의 존경과 그에 따르는 최대의 충성을 바쳐야 한다. 그러나 통치자들도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 할 것이다.”]존 칼빈,기독교 강요 20장29절,pp.1019

오히려 칼빈은 “잔인한 군주가 우리를 학대 할 때 욕심이 많거나 방자한 자가 우리를 착취 할 때마다 우리를 무시 할 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비행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의심할 필요 없이 주의 채찍으로 징계를 받는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겸손해져서 초조함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존 칼빈,기독교 강요 20장 29절,pp.1019 고 하였다.

칼빈은 불의한 왕에 대해서도 복종해야 함을 분명히 하였다. 칼빈은 우리는 통치자가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모든 세워진 권위자에게 동일하게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의 형태나 선거의 과정 혹은 성경적 패턴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불복종의 근거를 결정하기에는 부적절하며, 또한 통치자가 신민에게 의무를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그러한 상호 의무는 통치자가 자기의 소명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직무를 남용하는 경우에도 불복종은 정당화 될 수 없다.]크리스토퍼 융겐,칼빈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사회 참여,op.cit..,pp.82

이렇게 보면 칼빈은 그 어떤 경우에도 불복종의 근거를 말하고 있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오히려 칼빈은 그의 강요에서 말했듯이 “이런 악폐를 고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며 우리는 다만 주의 도움을 간청할 수 있을 뿐이다. 왕의 마음과 왕국의 변화가 여호와의 손 안 에 있기 때문이다 [잠21:1]”]존 칼빈,기독교 강요 29장 29절, pp.1021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인내하며 기도하는 일인 것이다. 우리의 모습은 절대적 복종에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권세자에게 불복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칼빈은 통치자들에 대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말하고 있는가? 통치자는 그 어떠한 저항도 받을 수 없는가? 이에 대하여 융겐은 말하기를 칼빈의 두 왕국 이론에서 복종의 한계와 불복종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칼빈은 복종의 한계는 하나님이 영광과 위엄 또는 우리 위에 있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권위가 침해될 위험에 처하게 될 때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은 친히 막대한 권력을 맡기신 사람들에 의해서도 자신의 정당한 권위가 침해받는 것을 허용치 않으시며 자신의 지고의 권위를 유지하신다]크리스토퍼 융겐,칼빈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현실 참여,op.cit.,pp.82
이러한 칼빈의 견해는 그의 사도행전 주석과 호세아의 주석에 분명히 나타난다. “지배자들의 권위에 대한 복종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복종에서 멀어져서는 안된다. 모든 왕들의 욕망은 하나님의 뜻에 복속되어야 하고, 그들의 모든 명령도 하나님의 선포에 굴복해야 하며, 왕들의 홀도 그 분의 위엄에 순종해야 한다. ...”[사도행전4:19 주석]

“하나님과 자신의 비교함으로써 자기 역할을 넘어서니 자는 누구든지 그의 직무의 영예를 빼앗기게 된다”[사도행전 5:29 주석]
“하나님의 복수가 마땅히 이스라엘을 향하여 나타날 것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왕의 불경스러운 명령을 기꺼이 따랐기 때문에,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같은 죄에 연루되었다. 그 백성이 왕이 명령한 불경스러운 예배의식을 따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왕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린 사람들의 변명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본다. 선지자가 여기서 비난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왕에게 지나치게 복종했다는 것이 아닌가? 왕들이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왜곡시키고 더러운 미신을 세울 때, 백성들은 단호하게 그에게 저항해야만 한다.[호세아5:11절 주석] 크리스토퍼 융겐의 책에서 재인용PP83,85

하지만 칼빈은 이러한 종교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하쇼[Hearshaw,]는 말하기를  “사람보다 하나님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칼빈의 주장은 단지예배의 문제에만 국한 될 수 없었다. 하나님은 예배 의식에 관계되는 것 외에서도 명령할 것을 가질 수 있었다. 국가에 관련해서는 특별히 그러했다.”[Hearshaw, The Social and Political p215]]양낙흥 개혁주의 사회 윤리와 한국장로교회 [서울 : 개혁주의 신행협회 1994] pp.37

이러한 칼빈의 예외 규정은 다른 세속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칼빈의 저항은 모든 이들에게 열려져 있는 적극적인 저항은 아니었다. 그의 저항은 질서 유지를 위한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의 저항이었다. 특별히 칼빈은 사사로운 개인들의 저항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칼빈은 헌법상의 관리들은 왕들의 폭정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칼빈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뜻밖의 대리자들을 통해서 개입하시는 때가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권능과 섭리가 드러난다. 어떤 때는 그의 종들 가운데서 공공연한 복수자를 일으켜서, 악한 정부를 응징하며 부당하게 압박을 받는 그의 백성을 참혹한 불행에서 구출하라는 명령을 내리신다. 어떤 때는 다른 의도를 가지고 다른 시도를 하는 사람들의 열광을 유도하셔서 이 목적을 이루신다. 처음 부류의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취하라는 하나님의 합법적인 소명에 의하여 파견되었고 그들이 무력으로 왕들에 대항한 것이 하나님의 명령으로서 왕들에게 주신 그 위엄을 조금도 해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늘에서 무력을 받아 더 큰 힘으로 열등한 힘을 굴복시킨 것이다.”]존 칼빈,기독교 강요 20장30절, pp.1021

칼빈은 인간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칼빈의 저항의 원칙은 앞서도 밝혔듯이 질서를 위한 일이었다. 칼빈은 앙보아의 음모의 계획시에 라르노디와의 인터뷰에서 칼빈은 조건부이지만 하나님의 무력저항을 승인하였음을 볼 수 있다. 칼빈은 말하기를 “만일 왕의 근족들이 공공의 유익을 위해 자기들 권리의 유지를 요구하고 의회가 그들의 투쟁에 합세해 준다면 그때는 모든 선량한 백성들이 무장하여 그들을 돕는 것이 합법적일 수 있다” [Letter the Admiral de Coligny, pril 16, Bonnet,4:176-7 ]양낙흥,개혁주의 사회 윤리와 한국 장로교회,op.cit.,pp.39

칼빈의 시민 저항의 모습은 완성된 상태가 아님을 볼 수 있다. 그의 강요와 주석에서 혼돈 되는 모습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대체로 칼빈은 시민 혁명에 반대하여 조심하지만 때때로 그의 말에 조심성이 부족할 때도 있었다. 예를 들면 다니엘의 주해[단6:22절에 대한 30강]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상의 군주들이 하나님께 반항할 때에, 그 들은 그 권력을 포기했으며 사람으로 인정받을 자격을 상실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복종하기보다는 전적으로 대항해야 한다[직역하면 그들의 머리에 침을 뱉어야 한다]”고 하였다. 기독교 강요 [주] pp.1025

그러나 칼빈의 이러한 국가와 시민 그리고 시민 저항에 대한 기독교강요와 성경 주석에 나타난 그의 사상은 그의 제자들인 낙스와 베자와 같은 인물에게 있어서 좀더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때 칼빈은 시민 저항운동의 물꼬를 튼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칼벵의 개혁사상에 대하여 박건택 교수는 말하기를 “개혁신앙의 원리는 교회와 국가의 독립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칼벵의 교리와 그 실천에는 다소간의 차이가 나타난다. 국가는 개인에게 어떤 집단적 도덕을 요구할 수 있고 그것을 존경케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은 교회의 관할이다. 하나님 말씀에 충실한 설교에 의해 신앙 전파의 모습은 교회에 있다. 복음의 규범들에 따라 신앙을 받지 않는 자들에 대해 교회는 오직 수찬 정지의 유일한 권리밖에 없다. 칼빈의 교리와 실천상의 다소간의 차이는 역시 그가 그의 시대에 속해 있음을 인정케 한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신정정치에로의 경향이 남아있고, 기독교 국가라는 혼동이 지배했다. 이것은 모든 교회가 가질 수 있는 성향이다. 이것은 칼벵보다 후대 칼벵주의가 더욱 가지게 될 경향이다. 국가 공동체와 일치시키고 자신의 영적 사명을 채우기 위해 국가의 강제권에 의뢰하려는 경향은 사회의 항구적인 위협이다.”
박건택 종교개혁강의안 총신대학 출판부 [서울: 1996] pp.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