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프란시스 쉐퍼

쉐퍼의 문화변증(2)

새벽지기1 2016. 4. 28. 12:17



실존주의와 변증법의 출현


쉐퍼는 현대문화가 앓고있는 상대주의적 유령의 근원을 헤겔과 실존주의자 키에르케고르에게 두었다.

헤겔은 인류역사상 인식에 있어서의 엄청난 변혁을 가져온 인물이다. 그의 변증법적 사고 즉 正.反,合의 사고는 이제까지의 사고체계를 흔들어놓았다. 그는 “진리는 절대적이라는 믿음에거 진리는 상대적이라는 믿음으로의 변화를 가져온 인물이었다. 헤겔은 이전의 직선적인 사고를 제거하고 그것을 삼각형으로 바꾸어놓았다. 즉 반정립대신에 진리에 도달하는 현대인의 방법으로서 우리는 종합이라는 방법을 가지게 되었다. 헤겔은 이 종합을 실제로 이성에 의해서만 도달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관념론자였다.]]ibid.,pp.30

이러한 헤겔의 등장 이후 사람들은 누구든지 무엇을 생각하든지 종합의 방법으로 사고하게 되었다. 쉐퍼는 헤겔을 절망의 선으로 보았다. 그러나 헤겔은 절망의 선아래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절망의 선안으로 들어간 인물의 출발점은 바로 헤겔의 인식론은 인정하면서 그의 방법론에 반기를 든 네델란드의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 였다.

키에르 케고르는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많은 평가가 있을수있다. 그의 삶과 신앙적 열심은 참으로 우리에게 도전을 많이준다. 그러나 쉐퍼는 이러한 것보다 더 중요하게 키에르케고르를 보아야 할 것은 그가 “이성에 의해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에서 “믿음의 비약에 의해서만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으로의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이러한 키에르 케고르의 사상은 헤겔 사상에 대한 대안으로 나왔다.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은 합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을 완전히 분리시키고 말았다. 즉 합리적인 것과 신앙은 상호간에 아무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합리주의적 인간이 인간생활의 실제적인 것들 즉 목적 의미 사랑의 타당성같은 것들을 취급할 경우 합리적인 사상을 버리고 부득이 거대한 비합리적인 신앙의 비약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다.]프란시스 쉐퍼 기독교와 현대사상 -거기계신 하나님- 홍치모역 성광 서울 1992 pp.32

이러한 키에를 케고르의 영향은 신학적으로는 바르트의 신정통주의로 철학적으로는 철학적 실존주의의 양대 자양분이 되었다. 이들의 영향은 기독교가 초월성을 고수하는 대신에 비합리적인 종교로 전락하는 희생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존슨이 말하기를 “지성이 무시되던 17세기에는 경건주의와 신비주의가 꽃 피웠으며 그때에 잃어버린 기독교적 지적 주도권은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서구 현실이다.” ]성인경, 프란시스 쉐퍼의 문화 사상, 1996년 총신대원 역사학회 세미나 자료집 pp.6

이것은 바로 오늘 한국교회가 처해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한국 교회가 지적인 권위를 잃어버린 결과가 바로 기독교부흥의 후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의 전 영역에서 기독교의 지적인 권위가 살아있지 못하다면 우리 교회는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사상의 흐름은 결국 2차 세계대전을 거친 후의 1960년대라는 엄청난 문화적 격변기를 가져왔고 오늘날의 사상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합리적인 권위를 상실하게된 기독교는 젊은이들에게 진리의 힘을 줄 수 없고 결국 동양의 신비주의로 도피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쉐퍼는 이러한 현실인식을 통하여 합리적 기독교를 문화적 모습을 통하여 증거하였던 것이다.   

결론

쉐퍼는 이렇게 문화사상의 흐름을 살펴봄으로서 현대문화의 혼돈과 무질서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상대주의적 사고속에서 진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진리를 증거하였던 것이다. 바로 문화변증의 전도인것이다.

쉐퍼는 사상은 행동을 낳는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사상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오늘의 문제를 풀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또한 그는 단순히 문화에 대한 이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전도의 접촉점으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쉐퍼는 문화를 통하여 만났고 문화를 통하여 이야기 하였고 그리고 문화를 통하여 상대주의적 진리의 허구성을 들쳐내고 절대적 진리를 증거하였던 것이다. 쉐퍼는 말하기를 “현대인과 접촉을 가질려면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선교를 시작하는 것이다“]프란시스 쉐퍼, 기독교와 현대사상 -거기계신 하나님-, op.cit.,pp.212 고하였다.

절망의 선
① 독일 ⇒ 영국 ⇒ 미국
② 지식인 ⇒ 교양인 ⇒ 중산층
③ 철 학
미 술
음 악
문화 일반
신 학


쉐퍼의 이러한 사상적인 조류에 대한 이해는 그의 절망의 선에 대한 사고에서도 분명히 볼 수 있다. 쉐퍼는 1800년전 유럽과 1935년 전 미국 그리고 1890년 후 유럽과,1935년 후의 미국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절망의 선이 그어졌다고 하였다. 이러한 절망의 선은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는 사실을 포기하고 새로운 기준이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하였다. 즉 성경의 부정에서 이 선은 그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단계별로 진행되어 전파되었다.

쉐퍼는 이러한 도식을 말하기를 “각 단계는 어떤 시간적인 단계를 표시하고 있다. 위에 있는 것일수록 초기에 속해 있으며 아래로 내려 갈수록 후기에 속해 있다. 이러한 순서로 진리의 변화가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첫째는 지리적으로 확대해 갔다. 독일에서 시작하여 영국 그리고 미국으로 확대되었다. 둘째는 각 사회 계층으로 침투해 드러갔다. 지식인에서 교양인을 거쳐 최후에는 중산계급에게까지 이르렀다. 셋째는 도식에서 보여 주는 것과 같이 하나의 학문영역에서부터 다른 영역에로 이동해 갔다. 또한 그것은 철학자로부터 신학자에게서 끝나고 말았다.”] 프랜시스 쉐퍼, 기독교와 현대사상,op.cit.,pp.22

이러한 사상적 흐름에 대한 쉐퍼의 이해는 그의 사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식의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그의 역사적 이해는 그로 하여금 사역에의 일관성과 확신성을 가져다 주었다. 그의 사상에의 여정에 있어서 그의 신학적 사상 즉 개혁주의적 신학과 성경관 그리고 문화에 대한 분명한 인식하에서의 문화변증을 통한 전도자로서의 삶은 모든 진리가 하나님의 진리임을 삶의 전 영역에 나타내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일련의 배경들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이 주신 사회에 대한 개혁의 기반을 준 것이다.
쉐퍼는 이 시대의 문제는 무엇이며, 해결책과 그 대안은 무엇인가를 고민하였고 이런 그의 생각을 사회속에 접촉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