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퍼의 문화 변증
쉐퍼를 평가하는 사람들은 쉐퍼를 문화사역자로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엄밀한 의미에서 잘못된 말이다. 쉐퍼는 문화사역자가 아니라 문화 변증을 통한 전도자라고 하여야 바른 표현이 될 것이다.
쉐퍼를 가장 확실하게 그리고 독특하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문화에 대한 기독교적 변증일 것이다. 이것을 통하여 쉐퍼의 문화사상을 알 수있다. 그의 초기의 저서를 통한 사상은 이 사실을 아는데 중요한 단추이다. 그의 삼부작이라고 일컸는 [이성에서의 도피],[거기 계시는 하나님],[거기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종합이라 할 수 있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것인가]를 통하여 기독교 변증의 쉐퍼식 방법을 알 수있다.
쉐퍼가 살던 시대의 흐름은 철저한 상대주의와 반지성주의 그리고 신학적 혼합주의에 물들어있는 시대였다. 이러한 경향은 절대적 진리에 대한 무감각으로 흐르게 되고 거기에는 절대적 존재에 대한 거부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질 때 나타나는 혼란과 무질서는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사람들은 인식하든 인식하지 않든 자신들의 전제가 옳다고 믿고 살아간다. 그런데 그러한 전제 자체를 무시하게 될 때는 혼란이 오게 되며 새로운 신비를 찾게되는 것이 인간들의 모습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20세기에 나타났고 쉐퍼는 이러한 20세기 산물에 대하여 전쟁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쉐퍼는 이러한 시대적 혼란에 대한 접근을 전근대적인 방법으로 하지 않았고 동시대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동시대의 언어와 방법을 통하여 접근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문화를 통한 접근 이었다. 쉐퍼는 문화는 사람들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그 문화에 따라서 사람들은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는 말하기를 “역사와 문명에는 하나의 흐름이 있다. 이 흐름은 인간의 사상에서 유래되는 것이고, 인간의 사상에 근원을 둔다. 인간은 내적 정신 생활에 있어서는 특이한 존재이다. 즉 그들의 정신세계는 그들의 행동을 결정짓는다.이것은 그들의 가치체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프란시스 쉐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것인가? 박형용역, [서울:생명의 말씀사1990] pp.15
또한 “사람들은 전제를 가지고 있다.그리고 그들은 그들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이상으로 이러한 저네들의 기초위에서 더욱 일광성있게 살아갈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제란 개인이 인생을 보는 기본적 방법 즉 그의 기본적인 세계관,자신들의 틀을 통해 세상을 보는 기본적인 방법을 뜻한다.”]ibid.,pp.15
쉐퍼는 이러한 원리의 입각하여 현대문화의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았다. 그는 서구 문화의 사상의 흐름을 살펴봄으로 서구문화사상의 근거를 보이고 오늘의 시점의 모습을 논증하였던 것이다.
제1절 현대문화의 뿌리 로마
이것은 그리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많은 수의 역사학자들도 이러한 견해에 동의한다. 그러나 쉐퍼는 단순히 그들의 문화에만 관심을 두도 있지 않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에 관심을 두었다. 쉐퍼는 현대문화에 획을 근 로마에 그 출발점을 두면서 말하기를 “로마에는 많은 종교와 신들이 허락되어 있었다. 그 신들의 신성은 인성에 의해서 설명되었다. 한마디로 그들의 신은 인격적이고 전능한 절대적 신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즉 충분히 위대하거나 영원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그들의 사상과 생애에 연관 시킬 수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가치체게는 개인적으로로나 정치적으로 인생의 긴장을 감당하기에 흡족 할 만큼 강하지 못했다. 로마인들이 가졌던 인간신들은 빈약한 존재들이었고 그러한 기초 위에 있는 로마는 멸망될 수밖에 없었다.”]ibid.,pp.17-18
쉐퍼가 로마에서 발견한 것은 절대적 기반이 없는 문명이나 개인은 압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을 때는 견디지만 그보다 강한 압력이 오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절대적 기준이 없는 사회와 개인을 보았던 것이다. 쉐퍼는 비유로 말하기를 “로마의 다리는 당시의 마차가 다닐 수 있는 튼튼하지만 오늘날의 트럭이 지나가면 무너지고 말것이다.”고 하였다.]ibid.,pp20.
제2절 르네상스의 개막과 종교개혁 - 토마스 아퀴나스의 자연과 은총의 분리
쉐퍼는 인간의 재탄생이라 할 수 있는 르네상스의 기반을 마련하여 준 아퀴나스의 사상을 말하고 있다. 아퀴나스는 그의 인간관에서 부분 타락을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의 의지는 타락하였으나, 인간의 지성은 손상받지 않았다고 함으로사람들은 인간적인 지혜를 의지 할 수 있고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성경의 가르침과 비기독교 철학자의 가르침을 자유로이 섞게되어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아래 이 세상을 “자연과 은총”의 부분으로 이분화 시켰다.아퀴나스의 기여는 인간과 자연에게 중요성을 주었지만 그러나 개별자들이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것이 되게 하므로, 결국 개별자의 의미를 상실 되게 만들었다.
아퀴나스의 본래 의도가 어떠 했든간에 그의 사상이 낳은 결과는 엄청났다. 오래동안 잠자고 있던 자연과 이성이 날개를 펼치고 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러한 모습에 뒤따라 올 두가지 모습이 첫째는 중세의 점차로 각성된 문화 사상과 각성된 경건이며 둘째는 성경과 초기 교회의 교훈에 대하여 심해지는 왜곡이다.ibid.,pp55
바로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한파가 몰아닥쳤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한파에 대응한 또하나의 흐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종교개혁운동이었다.
종교개혁은 아퀴나스에 의한 자연과 은총의 대립에 대한 통일을 주었다. 쉐퍼는 종교개혁이 분명하게 황금시대는 아니었지만 그러나 종교적 인본주의와 세속적 인본주의에 비하면 그들이 약점은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그들은 성경의 교훈과 초대 교회의 모범으로 되돌아 감으로 개체 사물이나 개별자에 대한 의미의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보았다.]Ibid.,pp.85
즉 그들에게는 자연대 은총의 문제가 없엇던 것이다. 종교개혁이 주는 해답속에는 인간을 포함한 개체 사물의 의미에 대한 문제가 아주 완전하게 해결되어 문제가 존재하지 않은 것았다. 이러한 까닭은 성경이 보편자와 개별자에게 통일을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쉐퍼는 성경은 첫째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참된 것들을 말하고 있다. 둘째.성경은 우리에게 사람들과 자연에 대하여 참된 것을 말씀한다고 본 것이다.]Ibid.,pp.87
그러므로 종교개혁이 중요한 이유는 개별자와 보편자의 문제가 없으며, 동시에 과학과 예술이 해방되어 하나님이 성경에 말씀하신 바에 기초하여 활동할 수 있는 부요한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쉐퍼는 종교개혁에 관한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고있다.] 쉐퍼의 이러한 관심은 그의 개혁사상의 틀을 바로 종교개혁의 정신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앞으로 논의 될 그의 개혁상상에서 좀 더 자세히 살필 것이다.
제3절 계몽주의의 약진과 낭만주의 시대의 태동이다.
르네상스를 통한 이성의 꽃이라는 불리우는 계몽주의는 철저한 이성중심의 사회였다. 이러한 사회속에서 모든 것의 기준이 이성이 되어짐으로 절대적 가치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다. 계몽주의 사상은 “이성,자연,행복,그리고 자유”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절대적 기준은 인간이성이며, 그에 따른 행복과 자유에 근거한다. 이러한 기반은 그 자체가 너무 미약하였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가 유동적이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모습은 영국의 혁명과 미국의 독립혁명이 유사하듯 , 프랑스혁명은 러시아 혁명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결국 인본주의는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를 말할 수 있는 최종의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즉 비인격적인 우주는 옳고 그름, 잔인함과 잔하지않음에 대하여 중립적이며 침묵한다. 그러나 성경적 기반에서는 절대기준들이 있고 따라서 우리는 어떤 것이 옳거나 그르다고 말할 수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계몽주의 시대 이후에 산출된 결과들을 통하여 볼 수 있다.
이성이 모든 것에 행복을 줄 수 있다고 믿은 세대들에 의해 혁명이 일어났고 혁명은 새로운 삶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이러한 혁명을 통하여 죽은 사람이 이전의 어떤 혁명에 의하여 죽은 사람의 숫자보다 많다는 것이다. 양심이 기준이 되는 시대의 결과였다.
계몽주의 열풍은 한번도 식어지지 않고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계몽주의가 가졌던 이성적 낙관론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현대 철학의 문을 열었던 네 사람은 이러한 계몽주의의 이상이 허상으로 끝났음을 말하였던 것이다. 특별히 그중 매우 주요시 보아야 할 인물이 바로 장자크 루소인 것이다. 루소의 등장으로 계몽주의적 인본주의에 새로운 변화가 이우러진 것이다. 즉 현대적 인본주의가 출현한 것이다. 루소는 인간이 오직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했을 때 개체 사물,개별자와 그것들의 의미 사이에 긴장이 있으므로 절정기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의 문제를 새롭게 발전시켰다. 그는 이 문제를 자율적 자유와 자연적 자유의 개념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 시기로부터 이전 시대의 낙관론적 희망이 사라지고 비관론으로 흐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낭만주의 시대로 문을 연 이들은 보편자와 개별자에 의미를 주고자 했던 통일된 대답을 향한 기대를 포기 한 것이다. 이성이 계몽주의의 영웅이었다면 이제 감정은 낭만주의의 영웅이 되었다. 루소는 새로운 변화의 시대 낭만주의 시대를 열은 것이다. 이들의 사상은 이 한마디에 잘 나타나있다.
“모든 창조물은 자연의 가슴에서 즐거움에 도취되도다”
그리고 영국 화가 존 콘스타불이 쓴 시에서 구체화되었다.
“봄 숲 속에서 흘러나온 어떤 충동이
사람의 더 많은 점을 ,
더 많이 죄악과 선을 네게 가르치나니,
이믄 모든 현자보다 더하네“]ibid.,pp.170
결국 자연적인 것이 도덕적으로 선하다는 사상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루소의 영향은 사회계약론을 통해서 사회영역과 자연을 도덕적 기초로 삼으려는 시민법의 영역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에밀을 통해서 교육계에 영향을 미쳤으며, 낭만주의 문학과 음악에 그리고 고갱의 미술에게 까지 대단히 넒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고귀한 야만인이 문명인보다 뛰어남을 역설한그의 힘이었다.]ibid.,pp.65
둘째로 현대인의 문을 연 인물은 바로 임마누엘 칸트였다. 칸트 또한 동일한 문제를 다르게 표현하였지만 여전히 실패하였던 것이다. 칸트는 이 세계를 본체계 즉 가치와 의미의 개념을 가진 곳 과 현상계 즉 측정되고 무게를 잴 수 있는 세계, 외부세계, 과학의 세계로 보았다. 그리고 이 세계를 결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칸트역시 루소와 같이 통일된 길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오직 인간에게서 출발하여 현상계와 본체계를 연결하는 길은 없었다.]ibid.,pp.174
이것이 현대인이 도달한 하나의 정거장이었다. 그래도 더욱 발전하면 무엇인가 희망을 갖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바로 이 믿음의 결과 이 시대의 매우 중요한 흐름을 열게 된 것이다. 이 들이 바로 진정 현대인의 시조라 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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