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데오도르 베자[Theodore Beza]
베자는 칼빈의 직접적인 제자이다. 그러므로 베자의 모습은 스승인 칼빈의 사상의 영향을 이해하는 것에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칼빈이 열어놓은 사회개혁의 한 방편으로서의 시민저항운동의 모습이 어떻게 발전하였는가를 볼 수 있다.
베자의 사회개혁에 대한 시민 저항사상의 변화는 1572년 성 바돌로매 사건을 통하여 변화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베자는 1574년에 쓴 「신하에 대한 위정자의 권한」을 보게 되면 칼빈이 죽은지 10년이 못되어 칼빈의 수제자인 베자의 사상이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베자는 바돌로매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그의 사상이 그리 급진적이지는 아니하였다. 그가 처음으로 저항운동에 관심을 표현한 것은 1554년의 세바스티앙 카스텔리옹이 종교적 관용을 위해 변호한 것을 논박한 De haereticis a civili magistratu puniendis.였다. 베자는 이 논문의 짧은 문단속에서 참 신앙을 보호하기에 필요하다고 여겨질 경우, 하급 위정자가 고위당국에 저항할 권리와 의무를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베자의 사상은 1558년에 작성하여 1559년과1560년에 프랑스어와 라틴어로 출판한 [기독교 신앙 고백]에서 더욱 풍부하게 발견됨을 볼 수있다. 1559년판에는 위정자가 강압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슬려 행동할 때에 수동적 불복종을 권면하고 있다. 그러나 1960년판에는 원리적으로는 각 기독교인의 임무는 모든 위정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러나 여기에 많은 예외가 있음을 부언하고 있음을 본다.
첫째는 위정자의 이름으로 쉽게 만용을 부릴뿐만 아니라 참되고 합법적인 위정자의 권세가 무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는 찬탈자들과 독재자들 사이의 전통적 구별을 하고 있다. 이런 구별을 할 수 있는 자라면 비록 사인이라 하더라도 비합법적으로 권력을 빼앗은 찬탈자에게 저항 할 수 있다.]ibid.,pp.87.
이러한 베자의 이론은 1572년의 성 바돌로매 학살 사건으로 인하여 변화를 가져왔다. 베자는 칼뱅의 저항신학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는 개혁파의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그는 [신하에 대한 위정자의 권한]을 출판함으로 본격적이고 급진적인 저항운동을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베자의 이 글은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글의 몇몇의 질문만 보아도 베자가 어떠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 할 수 있다.
① 하나님 한 분만이 어떤 예외 없이 복종되어야 한다.
②신하는 그에게 명령되는 것을 어디까지 정당한 것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③ 위정자의 비종교적이거나 불의한 명령들에 결코 복종하지 말라는 이 결정은 어디까지 확장되는가?
④ 위정자에 의해서 부당함을 겪고 있는 국민들은 그에 대항해서 자신들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⑤명백한 전제 정치는 무력에 의해서 합법적으로 저지 될 수 있는가?
⑥ 전제 군주로 전락한 그들의 상관을 향한 신하의 의무는 무엇인가?
⑦국가들의 모임을 방해하는 독재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⑧군주가 부당한 세금으로 그의 백성을 억압한다면 어떻게 하나?
⑨신하는 군주와 타협할 수 있다.
⑩ 종교로 인해 박해를 받을 경우 선한 양심으로 무기를 들고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가?]박건택, 종교개혁사,op.cit.,pp231-247
베자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기독인들의 저항정신을 분명히 하였다. 베자는 위정자의 비종교적이거나 불의한 명령들에 결코 복종하지 말라는 이 결정은 어디까지 확장되는가? 에 대해서 말하기를 모든 것은 자신의 소명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본다.
“나는 각 사람이 일반적 내지는 공적이건 사적이건 간에 자신의 소명에 따라 그런 경우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답한다”]ibid.,pp.232
그렇다고 베자는 이러한 결정에 있어서 멀리 도망쳐 있는 것은 아니었다. 베자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그대의 위정자가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금하는 것을 행하도록 명한다면 그때 그대는 그런 법령시행을 거부하면서 그대의 의무를 행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베자는 명백한 전제 정치는 무력에 의해서 합법적으로 저지 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하여 칼빈과는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칼빈은 찬탈자에 대한 저항은 특별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만 주어졌다고 하였으나 베자는 누구든지 저항 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전제 군주들이 하나님의 백성 위에 군림하여 어떤 합법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런 민족들의 죄스런 명령에 불복종 할 뿐 아니라 그들의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여 정당한 방어를 세우는 것에 자유로웠다”] ibid.,pp.236-237
오히려 베자는 저항할 기회가 왔는데도 저항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잘못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베자는 합법적인 통치자였다가 전제 군주가 된 자에 대하여서는 다른 입장을 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베자는 세 종류의 국민들이-사적인 시민, 하위의 위정자, 신민 그룹이[양낙홍은 이러한 세 그룹을 시민, 관원, 의회로 해석한다.양낙홍,개혁주의 사회 윤리와 한국 장로교회,op.cit.,pp72] 있음을 말하면서 사적인 시민들은 전제 군주인 그들의 합법적인 지배자에게 저항해서는 안된다는 칼빈의 입장과 같이하고 있다. 두 번째 하급 위정자들은 왕과 국민들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최고통치자와의 서약 관계에 있는 존재였다. 이들은 피할 수 없는 강제에 몰리게 되면 항거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만약 그런 피 할 수 없는 강제에 그들이 몰리게 된다면 명백한 군주에 대항하여 배려와 명예가 부여되었던 사람들의 안전, 즉 문제가 존재하는 왕국이나 제국의 모든 입법 권위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 심지어 무력의 수단에 위해서 조차도 확실히 보호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박건택,종교개혁사,op.cit.,pp.244]
그러므로 이러한 하급 위정자들은 폭군을 대항하여 공격할 자격이 없고 단지 폭군이 그들을 공격 해 올 때 그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지배권을 방어할 뿐이다. [크리스토프 융겐,칼빈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사회 참여,pp.182]
마지막 그룹은 신민 그룹이다. 이들은 그들은 비록 한편으로는 최고 통치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신하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최고 권력을 수호하는 자다. 그래서 그들은 최고 통치자들이 그들의 의무를 이행하게 하며, 또 만약 필요하다면 그들에게 제약을 가하고 벌을 줄 수 있는 위치이다.]ibid.,pp.182
베자는 전제 정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은 칼빈보다 한층 더 진보된 것을 볼 수 있다. 특별히 사회 개혁의 측면에 있어서 군주가 부당한 세금을 강요할 때는 권위 있는 자들이 항의를 한 뒤 나라의 법에 따라 질서를 세울 수 있고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베자는 여기서 매우 의미 있는 말을 한다.
“나는 비록 분명한 독재[전제 군주]에게는 행동 방법을 통한 저항아 정당하지만 다음의 유명한 문구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자는 무기를 들기 전에 만사를 시험한다’.“]ibid.,pp.247
베자의 이러한 저항 정신은 종교로 인해 박해를 받을 경우 선한 양심으로 무기를 들고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가하는 점에 이르러서 더욱 급진전한 것을 볼 수 있다. 베자는 종교는 결코 강요될 수 없는 양심과 관련되기 때문에 무력으로 심어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말하기를
“나는 먼저 이 세상사에 적합한 방어[재판과 무장과 같은]을 영적인 방어와 다르다거나 심지어 모순되고 어긋나서 종교 문제에 있어서 방어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도 불합리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ibid.,pp.247
베자는 정부의 주된 임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모든 방법을 사용해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그에게 위임한 신하들 사이에 왕 중 왕으로 인정되고 섬겨지게 되어야 한다고 명시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베자는 이러한 효과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정부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참된 종교의 교란자들에 대해 사법권의 힘을 사용해야 할 뿐 아니라 달리는 억제하지 못할 자들에 대해 무력의 힘을 사용해야 한다.”]ibid.,pp.247
베자는 이러한 참 종교의 실현을 위해서 언급하기를
“독재에 대하여 이성으로 맛서는 것이 허용된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과 양심이 이 세상의 모든 행복보다 더 값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항 없이 오직 인내로 진리의 박해자들의 독재를 이기는 사람들 뿐 아니라 법에 의해 그리고 합당한 사람들에 의해 충분히 권한을 부여받아 참 종교의 수호를 위해 자기 사람들을 사용한 사람들도 순교자로 여겨야 한다”]ibid.,pp.249.
베자는 칼빈이 열어놓은 사회개혁의 저항정신을 분명하게 한 걸음 진보하게 하였다. 이러한 베자의 개혁정신은 셀븐이 지적한대로 1581년의 17개의 화란주들이 스페인의 필립왕에 대한 충성을 포기한다고 선언한 문서, 미국의 독립선언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촉발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그리고 20세기의 대서양헌장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게 하였던 것이다.]양낙홍, 개혁주의 사회 윤리와 한국 장로교회 ,p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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