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조나단에드워즈

<신앙감정론>에서의 '감정'

새벽지기1 2016. 3. 19. 18:34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에서 <신앙감정론>의 ‘감정’에 대해 잘 정의내리고 있어 인용한다.


에드워즈 목사님에 의하면 인간의 영혼은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해력-understanding(discern, speculation)

 이끌림-inclination(mind, heart, affection)


* 이해력은 이끌림의 하위단계다. 그리고 이끌림이 바로 정서이다. 신앙은 정서에 자리잡고 있다.


-인용글-

<신앙감정론> 제1부에서 에드워즈는 감정 혹은 정서의 본질 및 종교에 있어 그것들의 중요성을 논한다. 그는 정서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밝힌 후, 그것이 없으면 참된 신앙이 아니라는 점을 성경적으로 증명한다. 그래서 <신앙감정론> 제1부에서 에드워즈가 제시하는 주제는 참된 신앙은 대체로 거룩한 정서에 있다 True religion, in great part, consists in holy affection”는 것이다.


한국어에는 영어 단어 “affection"에 꼭 맞는 단어가 없다. 영한사전에는 애정, 감정 등으로 번역되어 있으나 에드워즈는 이 단어를 그러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 에드워즈는 정서영혼의 성향과 의지의 보다 왕성하고 감지될 수 있는 활동들the more vigorous and sensible exercises of the inclination and will of the soul“로 정의한다. 그러므로 에드워즈가 사용하는 단어는 의지와 선택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감정emotions, 정열passions, 혹은 심지어 ”의지“가 아니라,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사람을 중립 상태로부터 혹은 단순한 동의로부터 움직여 그의 마음이 어떤 것을 소유하거나 거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흔히, 인간은 지성, 감정, 의지의 세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이 인간 영혼에 두 개의 기능, 혹은 능력faculties을 주셨다고 보았다.


* 하나는 지각perceive하고 사색하는specculate 능력이다. 그것에 의해 인간은 분별하고discern 판단하고judge 보는view, see 능력, 즉 이해력understanding을 가진다.

* 다른 하나는 단지 어떤 것을 지각하고 볼 뿐 아니라 보거나 생각하는 것으로 기울어지는inclined 기능이다.


-이 후자의 것을 때로 “기울어짐” 혹은 “경향inclination”이라고 불린다. 혹은 행동에 관계될 때는 의지라 불린다. 그리고 정신mind이 이 기능과 관련될 때는 마음mind이라 불린다고 에드워즈는 분류한다.

이 후자의 기능, 즉 경향성, 혹은 끌림inclination 때문에 인간 영혼은 단지 무심하고indifferent 무덤덤한unaffected 구경꾼으로서 어떤 것을 보지 않게 된다. 그는 자신이 보는 것으로 기울어지든지 아니면 그것을 싫어하든지 한다.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 하며, 기뻐하거나 불쾌해 하거나 하며, 찬성하든지 반대하든지 하며, 용납하든지 거두하든지 한다는 것이다.


에드워즈는 이 경향성, 혹은 기울어짐이 우리의 행동을 지배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어떤 것에 대한 끌림inclination이나 호감like이 강하면 그것은 사람의 정서the affection of hatred가 되고 어떤 것에 대한 거부감이나 혐오감이 강하면 그것은 증오의 정서가 된다. 그러므로 에드워즈에 의하면 정서와 경향성, 혹은 의지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단지 그 정도가 다를 뿐이다. 즉, 그 움직임의 활발함과 감지되는 정도liveliness and sensibleness of exercise가 다를 뿐이다.

 (청교도 도서관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과 사상>, 양낙홍, pp.447-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