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로이드 존스

[스크랩] 마틴 로이드 존스와의 인터뷰

새벽지기1 2016. 1. 17. 05:59
 

  

마틴 로이드 존스와의 인터뷰:

“장차 올 진노에서 피하라”


칼 헨리 / 「크리스처니티 투데이」 창간 겸 편집자


질문 : 박사님은 젊은 시절 , 장래가 매우 촉망되는 의사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설교자로 나서게 되셨나요?  그 과정에서 어떤 내면적인 깊은 갈등은 없었습니까?


대답 : 예, 매우 큰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 갈등은 의사로서의 길을 정리하기까지 열여덟 달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 당시 제 몸무게가 실제로 20 파운드 이상 줄었습니다. 친구들은 의사 일을 계속하면서 때때로 설교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해보았지만 만족이 없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의 육체적 질병보다 사람들 그 자체에 더 관심이 많았던 거죠. 제가 상대 하는 환자들 대부분이 장기 (organic) 질환이 아닌 기능 (functional) 장애를 입고 있다는 사실에 점차 마음이  이끌렸습니다.

 

 

질문 : 목사님의 그러한 결정에는 어떤 분들이 영향을 주었습니까?


대답 : 제가 소속한 교회는 런던의 한 웨일즈 장로교회였으나 제가 개인적으로 큰 매력을 느끼던 분은 존 허튼 (John A. Hutton) 박사였습니다. 이 분은 후에 「브리티쉬 위클리」(The British Weekly)지의 편집자가 되었습니다만 당시는 제가 가끔 출석하던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목사였습니다. 그분은 강해설교자가 아니었지만 설교를 매우극적으로 했으며, 저에게는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권능을 느끼게 할 정도로 깊은 감동을 주는 설교였습니다. 마침내 저는 의사로 살면서 가끔씩 설교자 노릇하는 생활을 중단 하고 , 반대로 의사 노릇은 가끔씩 하고 설교를 주로 히는 설교자로 살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왕실주치의인 호더(Horder)경과 함께 왕실에 소속된 의사였기 때문에 저의 결정은 언론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저도 놀랐지요.


 

 

질문 : 제가 듣기로는 1930년대 초에 이미 박사님께 영적 질병을 진단해내는 지혜의 은사가 있었고 박사님께서 과학적인 성경강해를 하신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하던데요.


대답 : 저는 의도적으로 남부 웨일즈의 한 작은 선교센터로 가서 개척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교인이 93명이었던 이 교회는 웨일즈 장로교 소속이었는데 , 광산지역과 철강산업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교인들 가운데 다수는 부두노동자였습니다 . 교회는 제가 부임하지 마자 처음부터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 언론의 광범위한 보도도 그 국부적인 이유였습니다. 일부 언론은 저를 크게 괴롭히기도 했지만요. 어쨌든 그 곳에서 놀랄만한 회심이 일어났습니다. 11년 6개월의 목회 기간에 교인 수는 530 명으로 늘어나고 출석수는 약 850 명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질문 : 목사님은 캠벨 몰간(G . Campbell Morgan)의 후임으로 웨스트민스터 채플을 맡게 되셨는데요, 이 분을 처음 만난 때는 언제 입니까?


대답 : 그 분이 스완시(Swansea)에서 집회를 하고 계실 때 제가 그 분의 설교를 들으려고 갔었는데, 그때 집회에 참석한 그의 친구 한 분이 저를 그 분에게 소개해주었습니다 . 그 뒤 1935 년 12월 초에 다시 몰간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요, 안개가 지독히도 자욱이 꼈던 어느 날 밤 런던에서 가장 큰 강당이었던 앨버트 홀 (Albert Halll) 의 바이블 위트니스 (Bible Witness) 집회에서 제가 설교를 하던 때였습니다. 캠벨 몰간 박사도 이 집회에 참석했던 거죠. 그리고 거의 그다음 날 저는 그분에게서, 1935년도의 마지막 주일에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설교를 해달라는 내용의 초청 편지를 한통 받았습니다.

  그 후에 또 1937년 당시 미국연합장로교 (북장로교) 총회 전  (前) 전도 집회에서 설교를 하기 위해 제가 미국에 가있을 때, 순회여정으로 필라델피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사회를 보시는 목사님으로부터. 전날 밤 영국에서 캠벨 몰간 박사가 이 곳에 도착해 집회에 참석하실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그분이 앞쪽에 앉아 있는 것이 강단에서 보였습니다. 제가 설교를 시작하자 그는 손목에서 시계를 풀었습니다. 설교시간을 재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모종의 이유로 인해 이것이 저에게 자극을 주었습니다. 집회는 은혜롭게 끝났습니다.

  집회 후 구내에서 저에게 처음으로 인사 한 사람이 캠벨 몰간이었습니다. 이어서 사람들이 제게 몰려들자 그는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 나갔습니다. 직감적으로 저는 그가 저를 지신의 동역자로 초빙하는 문제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1937년 6월의 그 밤에  몰간박사는 저를 웨스트민스터 채플에 초빙하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 후 몰간 박사는 , 제가 이듬해에 웨일즈의 한 신학대학에서 교수직을 가질 예정으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당분간 (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자신과 설교사역을 교대로 행하자고 요청했습니다. 그의 요청을 받고 제가 간 떼가 1938년 9월입니다 .그로부터 6주 뒤 저는 동역목사로 시무해달라는 만장일치의 청빙을 수락했습니다.


 

질문 : 그런 거장의 그늘 아래 일 해보셨는데, 어떠했습니까?


대답 : 그는 위대한 강단의 거장이었습니다. 많은 면에서 제가지금까지 본 설교자들 중에 가장 위대한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또한 매우 친절하고 관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언제나 제 나름대로의 독특성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결코 그 분 이나 다른 어떤 설교자를 모방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의 주된 관심사는 저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선은 메시지를 믿었고, 또 하나님께서 저의 노력에 응답하시리라 믿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매월 낮예배와 저녁예배를 번갈아 인도했습니다. 회중의 수는 전쟁(제2차 세계대전) 이전 우리가 함께 사역하던 한 해 내내 거의 동일했습니다.

 

 

 질문 : 제2차 세계대전이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


대답 : 전쟁은 대단히 파괴적이었습니다. 지금도 1939년 9월 3일 주일 오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전 11시에 라디오 뉴스 속보가 있을 예정이었으므로 우리는 그 불안한 발표가 있기까지 예배를 미루었습니다. 소식의 내용은 ‘전쟁 발발’ 이었습니다! 즉시로 모든 사람은 런던에 공습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우리의 예배당에는 인명대피 시설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회중을 해산해야 했습니다. 사실 바로 그날에 공습경보가 울렸습니다만 이는 잘못된 경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런던을 빠져나갔습니다. 우리의 회중 수는 점차 감소해 약 300명으로 내려갔습니다. 우리는 교회 유리창을 등화관제하고 저녁예배를 오후 중반으로 옮겼습니다. 1944년 6월에는 비행기 폭격으로 길 바로 건너편에 폭탄이 투하되어 웨스터민스터 예배당의 지붕을 반이나 날려버렸습니다. 그래서 l4주간 동안 약 150 명의 교인과 함께 홀을 빌려 예배를 드렸습니다. 캠벨 몰간의 거대 한회중이 고작 일 이백 명밖에 남지 않은  것 입니다. 캠벨 몰간 박사님은 1943 년에 사임 하고 1945 년 소천 하셨습니다.


 

 

질문· : 박사님도 설교 사역을 보류하고 싶을 정도로 낙심한 적이 있습니까?


대답 : 아뇨.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전쟁 중 일 때도 저는 최소한 일주일에 이틀씩 영국 곳곳으로 여행하며 연합 집회나 특별예배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1947년에 많은 사람들은 저에게 웨일즈 장로교 전진운동 (Forward Movement) 의 회장 직을 맡아달라고 강권하였으나 저는 전쟁으로 할퀸 런던에 머물렀습니다. 회중은 다시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해 전쟁이 끝날 즈음에는 대충 500명 정도의 사람이 꽤 정규적으로 참석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질문 : 독일 나찌당이 격퇴당한 뒤에는 어떠했습니까?

대답 : 사람들이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인들 중 대다수를 잃은 상태였습니다. 아직 남아 있던 전쟁 전의 교인들은 주로 중년과 노년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전후 (戰後) 에 사실상 새로운 회중 층이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1948년 출석수가 1,300내지 1.400명에 도달하자 교회의 회랑을 개방했습니다. 951년 전국 100주년 박람회의 물결을 타고 수많은 사람들이 런던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캠벨 몰간 시절 이후처음으로 예배당은 다시 가득 메워졌습니다. 때로는 25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청중석과 회랑, 발코니까지 가득 들어갔습니다.

 

 

질문 : 회중의 수 이외에 다른 어떤 면에서 그러한 거대한 강단사역의 효과가 측정될 수 있을까요?


대답 : 한 가지 예로 , 예배시의 고양된 영적 분위기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회중들이 앉은자리에 예배 후 언제나 목사와 개인면담을 할 수 있다는 알림의 글을 놓아두었습니다. 저는 예배가 끝나고 나면 그때마다 회심이나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과 면담하느라 족히 1시간 이상을 보내곤 했습니다.

 

 

질문 : 목사님께서 성경에 정통할 뿐만 아니라 의학과 과학, 역사에도 일가견이 있으시기 때문에 복음주의 밖의 지성인들이 목사님 의 설교에 매력을 느낀다는 그런 소문이 미국에까지 퍼졌지요.


대답 : 1936년에 저는 미국 IVF (Inter-Varsity Fellowship) 대회에 연사로 초청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 중에는 제가 이 모임의 회장 일을 보았습니다. 학생들이, 특히 전후 (戰後) 에 우리 교회로 대거 몰려왔습니다. 신약신학자 타스커 (R. V. G. Tasker) 교수는 주일 저녁마다 우리 교회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자유주의를 버렸습니다. 그분이 제게 들려준 말로는, 저의 설교를 들으면서 원죄와 하나님의 진노를 확신하게 되고 이로 인해 자신이 완전히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그것 말고도 저의 설교를 듣고 복음주의 신앙을 다시 회복한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질문 : 제가 기억하기로 , 박사님과 저는 1966년 장차 있을 (빌리 그레이엄) 베를린 세계 복음전도대회에 관해 의논하기 위해 만났습니다만, 당시 박사님은 이 대회의 참가자나 업저버가 되기를 사양하셨지요. 또한 박사님은 런던의 큰 교회 목회자들 가운데 아마도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에 협력하지 않은 유일한 목사였지요? 그러한 방관자적 입장을 취한 이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대답 : 사실 그것은 저에게 매우 중차대하고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저는 평소 부흥 외에 어떤 것도 교회와 세계의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고 믿어왔습니다. 부흥이란 성령이 찾아오시는 사건으로서 복음전도캠페인과는 다른 것이죠. 웨일즈 장로교회는 18세기의 복음주의 대 부흥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대 부흥 당시 하나님의 권능이 설교자들과 교회들에 강하게 임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 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조직화된 전도운동에 대해 탐탁하게 여긴 적이 없습니다. 1820년대에, 특별히 미국에서 에이저헬네틀튼 (Azahel Nettleton) 의 부흥운동으로부터 찰스 피니 (Charles  G. Finney) 의 전도운동에 이르기까지 매우 미묘하고 불행한 변화가 발생 했습니다.부흥에 관해서는 두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교회와 사회의) 상황이 좋지 않게 진행 되고 있을 때, 옛날의 접근법은 목회자들과 집사들이 금식과 기도의 날을 선포하고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임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대안은 복음전도 캠페인입니다. 목사들은 “우리가 누구를 전도자로 세울 수 있을까? 라고 묻습니다. 그 다음에는 조직을 만들고 여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이둘 옛 학파에 속 해있습니다.

 

 

질문 : 목사님은 현대의 복음전도운동 그 자체에 대해 특별히 어떤 점들을 염려하고 계시는가요?


대답 : 한마디로 말하자면 조직화된 캠페인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결신하고 싶은 사람들을 앞으로 나오게 하는 초청제도는 더욱 그렇습니다. 제 이야기를 잘 들어 보십시오. 저는 빌리 그레이엄이 지극히 정직하고 신실하며 순전한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는 1963년에 저에게 제1 차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의 회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그 대회는 베를린이 아닌 로마에서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집회였습니다. 저는 그와 협상을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만일 그가 전도대회를 위해 여러 부류의 사람들로부터 후원받는 것을 중단하고, 결신자들을 앞으로 나오게 하는 초청제도를 없앤다면, 저도 마음을 다해 그를 후원하고 집회의 회장직을 맡겠노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약 세 시간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누였습니다만 결국 그는 이 조건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대회나 캠페인이 실제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현실이 저의 견해를 실증해주고 있다고 생각되는군요. 지난 20년 내지 25년 동안 해온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영적 상황이 호전되기보다는 악화되지 않았습니까? 교회와 목회자들이 무릎을 꿇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간구하는 길 외에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가 계속하여 조직하는 일에 매달리는 한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들에게 임하여 자신들을 치유해달라고 간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캠페인식 접근법은 궁극적으로 성령의 권능보다 기교를 신뢰하는 것 같습니다. 그레이엄은 확실히 복음을 설교합니다. 그 점에 관해서는 결코 그를 비평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비평했던 점은, 일례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글래스고우 전도대회 때에 그레이엄은 존 서덜랜드 보넬 (John Suther-landBonnell) 로 하여금 목회자들의 모임에서 설교를 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거기에 이의를 제기했죠. 그레이엄은 대답했습니다. “저는, 많은 복음주의 목사님들 보다 존 서덜랜드 보넬과 오히려 더 많은 교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마도 보넬이 로이드 존스보다는 더 훌륭한 사람이겠죠. 이 점을 논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교제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은 나와 동일한 기본 진리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과 진정한 교제를 나눌 수 없을 것 같군요.”

 

 

질문 : 박사님은 케직 사경회의 팬도 아니시죠?


대답 : 거기에서 설교하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이른 바, 성화(聖化)에 관한 케직 메시지라는 것에 대해 저는 탐탁치 않게 여겼습니다. 그 메시지가 비성경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로마서 16장과 8장을 강해한 저의 책에서 나름대로 그 이유를 설명해 보았습니다. 저는 성화가 하나의 과정이라고 봅니다. 케직의 공식 문구인 “하나님을 놓아드려 하나님이 하시도록 하라” (Let go and let God) 는 비성경적입니다. 오늘날 케직은 더 이상 설교자들에게 수정된 완전주의 교리를 고수하도록 요구하지 않습니다.

 

 

질문 : 복음주의자들이 지나치게 소홀히 하는 것으로는 어떤 중요한 요소들이 있을까요?


대답 : 제가 보기에, 현대 복음주의의 낙장(落張)은경건의 문제, 곧 한때는 영성이라고 하던 것에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복음주의자들은 너무 잘난체하고 자기만족이 너무 강하며 힘이 너무 강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해야 한다는 관념은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가짜 지성주의의 영역 속에 지나치게 들어가서, 그리고 의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가슴(heart)은 무시되고 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역설했던 이 위대한 요소로 돌아가기 전에는 소망이 없다고 봅니다. 에드워즈는 명석한 지성인이자 걸출한 철학가였지만 가슴(heart)에 궁극적인 강조점을 두었습니다.

제가 말하는 가슴이란, 감정적인 요소가 특별히 강조되는 전인 (全A) 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모호한 감상주의가 깊은 감정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겸손을 잃어버렸습니다. 주님에 대한 경외심이 거의 없습니다. 현대의 복음주의는 18세기의 복음주의나 청교도들의 복음주의와 매우 다릅니다. 저는 이점을 불행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복음주의는 예전의 그 복음주의입니다.

 

 

질문 : 예전의 그 복음주의는 지성적으로도 신학적으로도 강력하지 않았습니까?


대답 : 예. 엄청나게 강력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신학적으로 천박한의사(疑似) 지성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명석한 신학적 이해와 뜨거운 가슴, 이 양자가 다 필요합니다.  제가 처음 잉글랜드에 와서 보니, 복음주의는 비신학적이었으며 경건 주의적이고 감상주의적이었습니다. 저는 지성을 최대한 발휘할 것을 역설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자기 지성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기독교의 예술관, 드라마관, 정치관같은  이차적인 것들에만 사로잡혀 있습니다.

 

 

질문 : 박사님은 기독교의 지성적 차원이 보다 강력해져서, 위대한 계시 진리에 대한 온갖 사변  적 대안들의 천박성이 백일하에 폭로되기를 분명히 바라고 계시죠?


대답 : 물론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현대의 설교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때 성경의 가장 중요한 장은 고린도전서 2장입니다. 성령의 권능의 현현이 없으면 모든 신학은 무위로 돌아가고 맙니다. 어떤 의미에서 저의 핵심 구절은 로마서 6장 17절입니다.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 (heart)으로 순종하여 진리는 일차적으로 지성을 향해 다가오지만 그 진리는 동시에 가슴 (heart) 을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면 다음으로 진리가 의지를 움직이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훈의 본’ (교리)을 가지는 선에서 더 이상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결단 (의지) 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 접근법들이 둘 다 가슴(감정)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질문 : 영국 국교회와 비국교회 안에서 복음주의가 얻은 이득이나 입은 손실이 있다면 어떤 것들을 주목할 수 있을까요?


대답 : 현재의 주된 문제는 대 혼돈입니다.

 

 

질문 : 국교회는 물론 비국교회들에서도 그렇습니까?


대답 : 예. 특히 국교회 안에서 그렇지만 비국교회도마찬가지입니다.

 

 

질문 : 왜 그럴까요?


대답 : 언어학과 교회론의 ‘전문가’들이 신학자들에게서 통제권을 빼앗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학문이라는 것에 통제권이 양도되었습니다. 성경과 특정 교리들에 대해 자유주의적 견해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임스 바 (James Barr) 가 그의 저서「근본주의」(Fundame -ntalism) 에서 이 나라 (영국)의 일부저명한복음주의자들이 고등비평에 입지를 양보함으로써 포착하기 어렵게 조용히 선을 넘어가고 말았다고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이 옳습니다. 문제는 성경의 완전영감과 완전무오성 교리를 상실했다는 점입니다.

 

 

질문 : 복음주의의 출애굽, 곧 제임스 패커 (James Packer) 가 캐나다로, 콜린 브라운 (Colin Brown) 이 미국으로 이주하고 존 스토트(John Stott) 가 힘겨운 해외 사역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영국이 입은 손실과 관련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대답 : 저는 이 사람들을 대단히 존경하고 있습니다. 한 국가가 복음주의 학자들과 지도자들을 잃는다는 것은 대단히 슬픈 일입니다. 그분들은 여기 영국에 머물며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교파적 상황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문제를 싸움으로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영국 국교회의 복음주의는 오늘날 주체성 (identity)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교단 내 다수지도자들과 교수들이 기독교의 기본 교리들을 버리는 그러한 상황이며, 기타 타협적인 교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헌신적인 복음주의자들이 그러한 교단 내에서 일한다는 것은 결국, 이런 진리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늘날 교회론을 새로이 부각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도적인 조직체를 교회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복음주의의 연합’ 이 옳은 일이라고 믿습니다. 복음주의자들이 세력을 규합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새로운 교단을 만들기 위해서가아니라 연대와 협력을 위해서 말이에요. 그렇게 상호간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미래로 나아 갈 수 있는 희망찬 길입니다.

 

 

질문 : 친구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목사님은 유머감각이 대단하시다고 하던데요, 강단에서는 좀처럼 유머를 사용하시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답 : 제 경우에는 강단에서 유머스럽게 말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강단에서면 언제나나 자신이, 지옥에 갈지도 모를 영혼들과 하나님, 이 양자의 중간이라는 무시무시한 입장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입장이 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므로 감히 유머를 사용하지 못합니다.

 

 

질문 : 작년에 있었던 입원 가료와 건강 회복 때문에 현재 4개월간의 설교 약속을 취소하신 것  으로 들었습니다. 목사님의 건강에 대해 저의 친구들이 몇 마디 말씀을 듣고 싶어 합니다.


대답 : 저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늘 강제로 일을 시키시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런 죄인입니다. 목회를 처음 시작하기 전에도 1년 반이나 깊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1968년도에는 당연히 은퇴를 생각했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 68살이었으니까요. 그 해에도 목회를 계속하다가 3월에 이르러 큰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요. 이때 하나님은 제게 웨스트민스터채플을 떠나 설교를 출판하고 영적회고록을 준비하도록 분명한 신호를 보내셨습니다. 그런 신호는, 이 수술이 심각하고 위중하지만 그럼에도 분명 성공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보장이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순회 설교를 줄이고 저술에  집중할 생각입니다.「로마서 강해」 12권 가운데 나머지 6권과「에베소서 쐐」 8권 가운데 마지막 두 권이 곧 출판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영적 자서전집필을 시작할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질문 : 오늘의 경제상황에 대해 기독교가 무슨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답 : 우리가 전해야 할 위대한 메시지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모든 대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유일한 희망은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그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복음주의자들이 갑자기 정치에 이토록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50년 전이나 100년 전에는 그런 관심이 의미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러한 노력이 제가보기에 어리석은 짓 일뿐 입니다. 지금의 세계는 해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평생 (재림에 관한) ‘때와 기한’ 의 설정에 반대해 왔으나 지금이 마지막 때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점차 드는군요.

 

 

질문 : 그러한 신념을 뒷받침해준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대답 :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전 지역을 모두입니다. 목회를 처음 시작하기 전에도 1년 반 점령한 1967년을 저는 매우 중대한 시점으로 보았습니다. 누가복음21장24절은 지극히 의미심장한 구절입니다. 거기에 보면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 방언들에게 밟히리라” 고 씌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일이 1967년도에 발생한 것 같습니다. 이는 2천년 동안 일어나지 않았던 극히 중차대한 사건입니다. 누가복음 21장24절은 하나의 고정된 사실입니다. 그러나 종말이 이르기 전 유대인들 가운데서 커다란 영적 회심이 있을 것에 대해 말하는 로마서 11장도, 마찬가지로 저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대목입니다. 로마서 11장의 이 언급은 점진적 발전을 의미한다고 생각되지만 가일층 굉장한 어떤 사건을 가리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때로 원근법이 들어간 그럼처럼 사건들의 간격을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종말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질문 : 우리에게 설령 24시간이나 48시간 밖에 안아있지 않다 하더라도 정치 분야 혹은 기타 어떤 분야에서든 기독교적 증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짓이며 하나님의 섭리를 불신하는 것이라는 그런 견해에 목사님은 동의하십니까? 하나님은 최후의 몇 시간 안에도 일찌기 하시지 않았던 어떤 일을 이루실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종말에 가까이 다다를수록 공공양섬에 호소하는 일이 더욱더 중요해지지 않을까요? 또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그리스도가 요구하는 바를 역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지 간에 재림하실 왕께서 인간과 열방을 심판하실 때 사용하실 기준에 대해 우리가 그들에게 상기 시켜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대답 : 아니오. 동의하기 어려울 것 같군요. 제가 생각하기에, 주님 자신이 역설하신 바는 이와 전혀 다르고 오히려 상반되기까지 히는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 17장을 보세요. 거기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째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나서…” 우리가 세상을 개혁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창세기 1장 28절에 근거한, ‘사회 명령과 문화명령’ 에 관한 가르침에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3장에 기록된 인간의 타락을 완전히 망각한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세상을 기독교화 할 수는 없습니다. 종말의 때는 노아홍수의 때와 같을 것입니다. “장차올 진노에서 피하라!” 이것이 우리가 전보다 더욱 열심히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 현대 세계의 상황이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중요한 시국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정치에 관여하고 사회적인 일에 개입해야한다고 믿습니다만, 그러나 교회는 아닙니다. 교회가 수행해야 할 하나님 나라의 임무는 인간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장차올 진노에서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제가 믿는 바이며 또 강조하는 것입니다. 정치와 문화 및 이와 유사한 모든 것들의 주요 기능은 악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어떤 궁극적인 긍정적 사역을 결코 이룩할 수 없습니다. 확실히 세계의 역사가 이를 실례로 보여줍니다. 세상을 결코 기독교화 할 수는 없습니다.

 

 

질문 : 중생한 교회가 새로운 사회이며 영원히 지속할 유일한 사회라는 사실, 또 세상 그 자체는 결코 기독교화 될 수 없고 새로운 사회로 바뀔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중생을 떠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길이 없다는 사실 등은 우리가 그대로 인정합니다. 그렇다 치더라도, 교회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요? 제도적인 교회가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사회 제도 속에 침투시켜 경건과 정의를 보여주도록 함으로써, 악과 죄 및 지신의 대의를 파괴시킬 온갖 세력을 향해 승리의 영역을 확장시키시고 싶지 않을까요? 그리스도인들이 사회를 기독교 화하는 것은 바랄 수 없다 하더라도 선한법과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답 : 물론입니다. 그러한 노력이 세상의 부패를 막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전적으로 소  극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적극적인 사역으로 간주하고 싶지 않습니다.

 

 

질문 : 어느 곳에서 어느 시점에, 그리스도인의 노력을 통해 ‘기독교문화’ 라 할 수 있는 것이 나  타나는 것은 불가능할까요?


대답 : 예, 결코 그러한 것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성경이 그와 상반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불가능 합니다. 세계의 현재 상황을 보면 모든 문명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도덕적인면, 정치적인면, 그리고 기타 모든 면이 붕괴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이보다 더 위험한 고비는 일찌기 없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전해야할 가장 긴급한 메시지는 ‘장차 올 진노에서 피하라!”는 것이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질문: 그렇다면 젊은이들에게 다른 어떤 직업에 대한 소명보다도 목회사역이나 선교사로서의  소명을 먼저 고려해 보라고 권하시겠습니까?


대답 : 아니오. 지금까지 결코 그런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문제에  관한 결정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개인적 소명에 따라야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중대한 위험을 목도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확실히 사람들에게 진노를 피하라고 강권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든 현 시대에 그 밖의 다른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놀랄 일입니다.

 

 

질문 : 목사님의 사위 프레드 캐더우드(Sir Fred Catherwood)가 현재 유럽 의회에서 정치적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가 그일 말고 영적인 사역에 종사하고 있다면 목사님은 더 좋으시겠습니까?


대답 : 아뇨. 그렇지 않을 겁니다. 사실 목회를 하라는 압력이 그에게 들어왔을 때 그가 이를 거부한데 대해 저는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목회를 하지 말라고 말려온 입장입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사람이 목회의 길을 피할 수 없는 경우에만 목회에 들어서야 한다고 봅니다.

 

 

질문 : 사위에게 정치 분야에서 이룩할 수 있는 괄목할만한 공헌에 대해 직접 조언을 해주셨나요?


대답 : 예.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입장에 서서 ‘이것이 기독교적인 정치관’ 이라는 따위의 주장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이야기도 아울러 해주었습니다. 그러한 접근법이 아브라함 카어퍼의 실수였습니다. 키어퍼는 타협적인 입장에 섰습니다. 기독교 성직자로서 수상이 된 다음에는 로마가톨릭 교도들과 유대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찬성하는 특정의 정치적 입장을 주장하였던 겁니다.

 

 

질문 : 목사님의 초창기 설교에서 복음주의 교리에 관해 어떤 모호한 점은 없었습니까?


대답 : 사역 초기에 저는 중생을 주된 메시지로 삼고 이에 관해 설교했습니다. 그러나 칭의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지요. 아시다시피 조지 횟필드도 저와 같이 한동안 그러했습니다. 저는 제가 확신하는 것을 설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속죄에 관해서는 소홀히 다루었으나 대략 2년 내에 저는 이런 식의 설교가 불완전한 메시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질문 : 박사님은. 오늘날의 복음주의 설교가 속죄와 칭의 교리를 지나치게 소홀히 다루는 반면에 중생의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부지불식간에 하나님이 죄를 묵인하신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답 : 예, 맞습니다.

 

 

질문 : 잉글랜드에서 복음주의가 부흥할 가망이 있다고 보시나요?


대답 :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이 크게 쏟아 부어지는 것 - 제가 말하는 부흥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외에 어떤 것도 지금의 상황을 만회 할 수 없습니다.

 

 

질문 : 목사님은 향후 20년간의 세계 역사가, 그 안에 종말이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려 질 것이라고 보십니까? 어떤 것이 사라지고 어떤 것이 남아있을까요 ?


대답 : 붕괴 외에는 아무것도 목도하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민주주의는 정치적으로 마지막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류는 기타 갖가지 정치 형태를 겪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밖에서는 현재 독재정치 혹은 완전한 혼돈이 희미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종말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666은인간의 수입니다. 민주주의가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형상을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향후 20년이 보장 되리라는 확신이 전혀 없군요. 전에는 없었던 여러 요인들이 오늘날 출현 하였습니다. 과거에는 세계 여러 지역의 찬란한 문명들이 때에 따라 붕괴되곤 하였지만 그러한 때에도 세계의 나머지 다른 지역은 황폐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세계가 거대한 하나의 집단이 되었습니다. 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이 모든 곳에서 발생합니다. 현재, 정치가 몰락해가고 있다고 생각 됩니다 . 전 세계가 그런 것 같아요. 문명이 붕괴하고 있는 거죠.

 

 

질문 : 끝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세속적인 사람들을 위해 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


대답 : 제가 할말은 이것뿐입니다. “장차올 진노에서 피하라.”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출처 : 푸우도사 자료실~!^^
글쓴이 : 조광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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