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25 17

떠나 보내는 사람! 모여드는 사람!(대상1-22) / 리민수 목사

떠나 보내는 사람! 모여드는 사람!(대상1-22) 본문은 다윗이 사울의 피박을 피해 블레셋 왕 아기스가 거주지로 내어준 시글락에 있을 때 예루살렘의 여러 지파에서 다윗을 따르기 위해 사울을 떠난 사람들을 소개한다. 이들은 베냐민 지파 사람들, 갓 지파 사람들, 베냐민, 유다지파 사람들, 므낫세 지파 사람들이다. 미치광이 행세를 해야만 겨우 목숨을 부지할 정도로 곤고한 처지에 놓여있던 다윗에게 이처럼 용맹한 자들이 계속해서 몰려온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다윗과 친히 함께 계시고 또한 그를 도와줄 용사들을 보내 주셨기 때문이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눅24:49) / 이금환 목사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누가복음24:49)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즉 첫교회가 된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입니다.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줄테니 약속하신 성령이 오실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며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약속하신 성령이 오시면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 즉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위로부터 입혀지는 능력, 성령님을 모시고, 성령충만 받아, 성령님의 능력을 덧 입고 살아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당신 안에 성령님이 거하시고, 당신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따라, 성령님과 긴밀한 교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여정, 풍..

헤셸(24) / 정용섭 목사

유대교에서는 기도의 목적이 감정적 결핍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결핍이 아니라 존재론적 필연성이며, 사람의 본질 자체를 구성하는 행동이다. 전혀 기도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완전히 사람이 아니다. 심리학이나 사회학이 아니라 존재론이 기도를 설명해준다. (162쪽) 헤셸의 위 문장을 A4 용지 10장으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일단 글을 쓸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이다. 재미있으라고 한 말이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기도의 ‘존재론적 필연성’이 무슨 뜻인가? 기분이 찜찜할 때 교회당에 가서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또는 작은 소리로 기도하면서 한바탕 눈물을 흘리면 개운해지는 걸 경험할 것이다. 기도가 감정적 결핍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눈물 나오는 기도가 다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헤셸(23) / 정용섭 목사

카바나(내면의 헌신) 없는 기도는 전혀 기도가 아니다. 카바나 없이 기도한 사람은 한 번 더 기도해야 한다. 그의 생각이 오락가락하거나 다른 일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정신적 평정을 회복할 때까지 기도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사람이 여행에서 돌아왔거나 지쳐 있거나 고민에 빠져 있을 때는 그의 정신이 평정을 얻기까지 기도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현자들은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은 사흘을 기다려 안정을 얻고 정신의 평정을 찾은 다음에 기도하라고 가르쳤다. (146쪽) 위 글도 헤셸이 유대 랍비(?) 중 한 사람인 마이모니데스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내면의 안정이 없이 드리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기도의 이벤트화는 기도의 왜곡이다. 간혹 기독교 뉴스를..

헤셸(22) / 정용섭 목사

왜 현자들은 기도 중에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을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가? 기도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간구에 대해 기꺼이 응답하려 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믿는다는 것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신앙이 있는 것, 하나님을 믿는 것은 가장 높은 영역, 그 신비의 영역을 사모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 본질이다. 우리의 신앙은 그 신비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준다. ...(중략)... 너무 큰 소리로 기도하는 사람은 가장 높은 영역, 신비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는 단지 명백하고 분명한 것들만 감지할 뿐이다. 그가 감지하는 명백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가장 높은 영역에 닿지 못하는데, 가장 높은 것은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141쪽) 위 글은 헤셸의 말이 아니라 그가 인용한 프라하에 있..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여 (아 2:8-17) / 신동식 목사

솔로몬과 술람미의 사랑의 하모니입니다. 이 사랑의 아름다움은 오직 부부 사이에서만 주의집니다.서로를 향한 고백과 니눔은 누구도 깰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흔들어 깨지 말라고 노래한 것입니다.사랑하는 남편의 청혼에 감사합니다. 기쁜 소식을 가지고 돌아오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청혼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 삶의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일입니다. 이 마음이 정말 이해가 됩니다. 이 청혼을 기억하는 술람미의 마음은 기쁨 그 자체입니다.이제 누구도 이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포도원을 허는 여우를 잡으라고 말합니다. 이에 대한 해석이 다양합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시적 장치가 아니라 모형적으로 그리스도와 신자 사이를 가로막는 죄라고 봅니다.서로에게 속한 관계는 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