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3 14

놀라운 하나님이 간섭(삼상29:1-11) / 리민수 목사

놀라운 하나님이 간섭(삼상29:1-11) 다윗은 아기스의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참여하게 되지만, 블레셋 방백들은 다윗이 예전에 자신들을 대적했던 자임을 이유로 그의 전쟁 참여를 반대한다. 만약 다윗이 아기스의 명령을 거부한다면 더 이상 블레셋 땅에 거할 수 없게 될 것이고, 그렇다고 출전하면 동족을 살상 반민족적 범죄를 저지르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었다. 그 때 놀랍게도 하나님은 블레셋 방백들로 하여금 다윗의 신분을 문제 삼아 그의 전쟁 참여를 반대하게 하셨던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는 언제나 놀랍다.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 이금환 목사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에베소서4:22-24)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 벗어버리는 것처럼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옛 사람을 벗어던진 후에야 새사람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노력으로 벗어버릴 수 있다면, 또 한 번에 과거를 완전하게 다 벗겨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옛 사람을 벗는 것은 노력으로도 안 되고, 힘써도 안 되고, 가슴을 치며 통곡해도 안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

교회의 담을 넘어 일상의 영성으로 / 정병선 목사

나는 교회가 하나님나라의 유일한 전초기지임을 믿고 중시하는 교회주의자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교회 생활에 열심인 성도들을 볼 때면 고맙고 감사한 생각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들의 순전한 믿음에 도전을 받기보다는 믿음에 생활을 앗기고 있다는 사특한 의구심이 든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믿음과 생활의 역현상 때문이다. 본디 믿음은 삶을 위해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다.소위 ‘믿음생활’을 위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생활’하게 하기 위해 허락된 은총이다.다시 말하면 우리의 구겨진 존재와 삶을 구원에 참여시키기 위해서인 것이다.사실 ‘믿음⌒생활’이란 아주 소박한 것이다.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만도 아니고,교회당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 - 예배 · 기도 · 말씀 묵..

죽음(7), 9월30일, 주일 / 정용섭 목사

주님, 오늘 저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을 기억합니다.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후 5:4)     그렇습니다. 우리는 결국 지금 살아있는 이 모습의 짐을 벗어야 합니다. 삶은 즐거우나 괴로우나 짐입니다. 그걸 안고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옷을 벗듯이 짐을 벗을 수밖에 없으나 오히려 새 옷을 입듯이 생명의 옷을 입는다고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가 세월과 더불어 늙고 낡고, 그리고 죽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 사실 앞에서 삶의 허무를 탄식합니다. 그러나 이 허무하고 잠정적인 삶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생명의 힘에 완전히 포획될 줄..

죽음(6), 9월29일, 토 / 정용섭 목사

주님, 오늘 오라비의 죽음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는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 11:25)     ‘예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다니요. 무슨 뜻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도 모두 죽습니다. 그러니까 죽어도 산다고 할 때 ‘산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런 삶일 수는 없습니다. 전혀 다르게 산다는 뜻입니다. 그게 바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약속이기도 합니다.     ‘살아서’ 예수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니요. 무슨 뜻입니까? 지금 예수 믿는 자들도 모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원히 산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런 삶 자체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다른 차원의 삶으로 들어간다는 ..

죽음(5), 9월28일, 금 / 정용섭 목사

주님, 제가 오늘이나 내일 죽는다면 어떤 심정일지를 생각했습니다. 사실 죽음은 가정법으로 경험할 수 없습니다. 불치병에 걸렸다면 모를까, 지금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살아가는데 큰 불편이 없는 사람이 죽음을 어떻게 가정해서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갑작스런 죽음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며,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닥칠 일이니 준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죽음은 모든 것의 상실입니다. 제가 습관적으로 저를 확인하던 그런 것들과의 관계가 완전히 해체됩니다. 가족, 교우, 강의, 설교, 글쓰기, 책, 밥과 과일을 비롯한 먹을거리 등이 저에게서 무의미해집니다. 삶의 희열을 느끼던 하늘과 숲과 나무와 벌레와도 완전한 이별입니다. 볼 수도 없고, 냄새 맡을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움..

죽음(4), 9월27일, 목 / 정용섭 목사

주님, 한국 남자의 평균 수명인 77세를 사는 것으로 계산하면 저는 앞으로 이 세상에서 18년을 더 삽니다. 운이 좋아 중간에 다른 일 없이 천수를 다 한다면 길게 잡아 30년 정도는 됩니다. 평균 18년, 길게 30년이라는 숫자로 표시되는 삶이라니...     주님, 제가 벌써 제 인생에서 삼분의 이를 살았습니다. 지나간 세월은 까마득한데 남아있는 세월은 손에 잡힙니다. 지나간 세월이 순식간이었듯이 남은 세월도 순식간입니다. 아니 남은 세월은 더 빠릅니다. 이 모든 운명이 한 순간에 불과하다면 삶과 죽음은 동시적인 사건입니다.     주님,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좀더 오래 살려고, 좀더 건강해보려고, 좀더 이름을 내려고 애를 쓰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입니다. 무엇을 이루었든지 아니든지 상관없이 모두가..

죽음(3), 9월26일, 수 / 정용섭 목사

주님, 오늘은 어린아이와 같은 눈높이로 질문을 드립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습니까? 지난 인류 역사에서 수많은 영웅과 호걸들이 영원히 죽지 않으려는 꿈을 꾸었습니다. 어떤 황제는 불사약을 찾아보기도 했고, 어떤 파라오들은 미라를 만들어서 영원한 삶을 꿈꾸었습니다. 영생은 모든 인류의 궁극적인 희망이었습니다.     주님, 사람은 단순히 영원히 사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늙어서 활동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젊음과 건강과 미모를 그대로 유지하는 상태로 영원히 살고 싶어 합니다. 지금 우리 모두는 그런 노력을 끝없이 펼치고 있습니다. 그게 인생의 최고 목표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에서 영원하게 산다는 것은 결국 똑같은 삶의 ..

날을 셉니다. / 김영봉 목사

요즈음 교회에서 지내는 하루 하루가 참 새롭고 귀합니다. 제가 이 교회 건물에 정이 깊이 들었던가 봅니다. 아침 일찍 혹은 한 낮에 텅 빈 예배당에 홀로 앉아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감미로웠는지요! 날씨 좋을 때 교회 앞 정원을 거닐거나 벤치에 앉아 묵상하는 것은 또 얼마나 좋았는지요! 펜더에 가면 또 다른 환경에서 또 다른 경험을 하겠지만, 더 이상 이 귀한 경험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매일 날을 세고 있습니다. 하루가 지나는 것이 너무나 아깝습니다.       일과를 보다가 잠시 쉴 때면 교회 구석 구석을 돌아봅니다. 곳곳에 추억이 있고, 함께 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생각이 납니다. 팬데믹 전까지 토요일 새벽 기도회를 끝내면 2층 끝에 있는 라운지에서 아침 식사를 나누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