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7 15

어리석은 시도(삼상20:24-42) / 리민수목사

어리석은 시도(삼상20:24-42) 본문은 다윗이 요나단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요나단이 사울의 본심을 파악하고 다윗에게 그 사실을 알린 뒤 서로의 이별을 슬퍼하는 장면이다. 본문에는 사울이 다윗을 살해하려 한 직접적인 동기가 처음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다윗이 살아있는 동안은 자신의 왕위가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31절). 그가 이렇게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은 아마도 다윗만 제거하면 그의 왕권이 지켜지리라고 인본주의적으로 생각한 까닭으로 여겨진다.  하나님의 섭리를 바꾸려는 인간의 시도처럼 어리석고 헛된 일은 없다.

당신도 나와 같이 되기를 (행 26:19~32) / 이재훈 목사

바울은 죄수 신분으로 그리스도 증인의 소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벨릭스 총독과 베스도 총독, 계속 이어지는 당시 재판관들 앞에서 나타난 바울의 모습은 그가 사형을 받을 만한 죄만이 아니라 재판받을 만한 죄조차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당시 로마 최고 지도자에게 상소할 수 있는 법을 이용해서 가이사에게 상소합니다. 그 과정에서 유대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리던 분봉왕 헤롯 아그립바 2세에게 추가적인 심문을 받습니다. 변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바울이 아그립바 2세 앞에서 자신에 대해 설명합니다. 바울은 이 연설에서 “자신은 유대민족을 배반한 적이 없다. 자신은 과거에도 유대인이었고, 현재도 충실한 유대인이다. 도리어 자신은 정통적이고 충실한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이 유대 백성들에게 약속하시고, 모세와 ..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누가복음7:11-13) / 이금환목사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누가복음7:11-13) 예수님이 나인이라는 성에 들어가셨을 때 그 성의 사람들이 죽은 시신을 메고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죽은 시신은 그 성에 사는 과부의 외동 아들이었습니다. 그 시신을 메고 온 사람들과 과부와 함께 그 성의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왔습니다. 아들의 과부 어머니는 어떻게든 아들이 살아났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예수님께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성의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예수님이 어떻게 하실 수 있는가, 어떻게 하시는가..

부활절 일곱째 주일 -예수 제자로 살기, 5월20일, 주일 / 정용섭목사

주님,요한복음 기자의 보도를 통해서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요한복음 공동체에 속한 기독교인들의 실존이몹시 위태로웠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미워하는 상황에서예수의 제자로 살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세상을 무조건 도피하는 것도 아니고,세상에 매몰되는 것도 아닌,세상에 보냄을 받은 자로 살되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이 저들에게 필요했습니다.그것은 곧 거룩한 존재로 변화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오늘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로 살면서여러 문제에서 세상과 충돌합니다.폭력적인 세상을 무시하거나 회피하기도 하고,그 제자라는 사실을 망각하기도 합니다.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의롭다 인정받았으며,그것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다는 사실을영혼 깊숙이 새기며 살도록 인도해주십시오...

예방주사 기억, 5월19일, 토 / 정용섭목사

주님,그 옛날 어린 시절국민학교에서 일 년에 몇 차례 씩예방주사를 맞던 기억이 새롭습니다.간호사들이 들고 있는 주사바늘이 얼마나 무서웠는지우리는 모두들 얼굴이 백지장처럼 긴장해 있었습니다.하기야 불로 지지는 주사도 있었으니공포를 느낄 만했습니다. 길게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다가조금이라도 나중에 맞으려고자꾸 뒤로 빠지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그 틈에 저도 끼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어떤 아이들은 용기를 내서 먼저 맞기도 했는데,그 아이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예방주사를 피할 수 없듯이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서로 눈치를 보면서 자기 차례를 최대한 늦춰보지만그래봤자 수십 년, 수년, 서너 달에 불과합니다.짧은 인생을 생각하면 그 세월마저 소중하지만지구와 우주의 긴 시간..

교만, 5월18일, 금 / 정용섭목사

주님,저는 교만한 사람입니다.교만해보이지 않으려고 오랫동안 애를 쓰고나름으로 훈련을 거쳤기에겉으로는 교만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날이 갈수록 교만이 저를 더 강하게 지배하고 있습니다.다른 사람에게 짐짓 겸손하게 보인다고 하더라도자기 스스로 교만하다는 것을 알기에그런 겸손의 모양은 아무 의미가 없고,아무 능력도 없습니다. 교만은 자기를 높이려고 하는 삶의 태도입니다.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시선입니다.자기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보는 관점입니다.자신의 업적이 인정받으면 흐뭇해하고인정받지 못하면 불편해하는 삶의 태도입니다.자기를 부정하고 십자가를 지고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여전히 자기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곧 교만하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차라리 교만하게 살지 않겠다는 생..

네 고향을 떠나라! 5월17일, 목 / 정용섭목사

주님,고향을 떠나라니요!어떻게 정든 고향을 떠나라 말씀하십니까.청천벼락 같은 그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이얼마나 오랫동안 고민하고 번민했을지 상상이 갑니다.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익숙했던 모든 것들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친척, 친구, 생업, 산천초목, 생활습관,궁극적으로 조상들이 섬기던 신과의 단절입니다.이런 것들과의 익숙한 관계를 통해서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살아가는 인간에게고향을 떠나라는 명령은곧 죽음을 준비하라는 명령과 다를 게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하나님.아브라함은 두 번이나 순종했습니다.갈대아 우르에서 한 번, 하란에서 또 한 번.그 순종으로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떠남이 없이는 생명을 얻을 수 없으며,낯섦과의 만남 없이는 새로운 생명을 경..

두 딸의 아버지로서 바치는 기도, 5월16일, 수 / 정용섭목사

주님,저는 두 딸의 아버지입니다.큰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작은 딸은 지금 대학을 다니고 있습니다.그 아이들이 아내의 뱃속에서 꿈틀거리고 놀던 때가바로 엊그제 같은데,세상에 나와 벌써 저렇게 다들 컸습니다.아버지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세월이 흘렀으니좋은 아버지 역할을 할 기회가 영영 사라졌습니다. 앞으로 저 딸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근심반기대반입니다.결혼은 할지,하게 된다면 누구와 할지,결혼 생활은 잘 유지할지,아이는 낳을지,내 나이가 될 때까지 세상을 잘 버텨낼지,인생을 의미 있게 살아갈지 ...제가 걱정을 한다고 해서딸들의 미래가 순탄할 수만은 없고,또 순탄한 인생이 늘 행복한 것만도 아니니제가 어떻게 기도해야할지 말문이 막힙니다. 다만 한 가지만 간구합니다.제 딸들이 하나..

의와 공의 (이사야서 51장) / 김영봉목사

해설:1절부터 8절까지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의’에 대해 말씀하신다.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아”(1절)를 직역하면 “의를 따르는 사람들아”가 된다. 여기서의 의는 ‘쩨데크’ 즉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의미한다. 죄로 인해 어긋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잡히는 것이 ‘구원’이다. 바빌로니아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은 마치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것처럼 혹은 구덩이에서 꺼낸 것처럼 약속의 땅에서 떨어져 나왔다. 주님은 그들에게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해 보라고 하신다(2절). 그들은 절망적인 상태에서 하나님의 선물로 아들을 얻었다. 하나님은 그 능력으로 “광야를 에덴처럼” 혹은 “사막을 주님의 동산처럼”(3절) 만드실 것이다. 포로된 유다 백성을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