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4 11

문제는 제도가 아니다(삼상8:10-18)

문제는 제도가 아니다(삼상8:10-18) 본문은 사무엘이 이스라엘에 왕정 제도가 도입될 경우 그에 따르는 폐단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이다.   하나는 왕을 세울 경우 오히려 모든 백성이 그 왕의 노예가 될 수 있다는 것과 백성들이 그러한 왕의 폭정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을지라도 그때엔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을 것(18절)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왕정 제도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계신 것은 아니었지만, 신정 체제가 이방인들의 왕정 체제에 비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본주의적이고 불신앙적인 태도가 본질적인 문제였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이 집을 건축하나 거기에 살지 못하며 포도원을 가꾸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스바냐1:12-13) / 이금환목사

"그 때에 내가 예루살렘에서 찌꺼기 같이 가라앉아서 마음속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리니 그들의 재물이 노략되며 그들의 집이 황폐할 것이라 그들이 집을 건축하나 거기에 살지 못하며 포도원을 가꾸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스바냐1:12-13) 예루살렘에도, 교회에도, 우리 안에도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자들을 마치 "찌꺼기같이 가라앉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바이러스나 병균이 잠복하고 있는 것처럼, 흙탕물이 가라앉아서 맑은 물인 듯 보이는 것처럼, 평소에는 똑같은 믿음처럼 보이지만 특정한 상황이 되면 활성화 되고,..

종교개혁 494주년(6) / 정용섭목사

셋째는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요. 이것은 오직 은총이라는 뜻이오. 구원이 사람의 업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다는 말이오.  이것도 뻔한 말로 생각하지 마시오.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만으로 만족하지 못하오. 자기가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예수님 당시에도 대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종교적 업적을 쌓느라 분주했소. 크고 작은 업적으로 서로 비교하면서 만족해했소.  오늘 한국교회 신자들이 얼마나 깊이 업적주의에 사로잡혀 있는지 내가 구구히 설명할 필요도 없소. 은총의 빛을 외면하오. 은총의 빛으로만은 뭔가 허전하다고 느끼는 것이오. 결국 신앙도 자기 성취에 머물러 버렸소.  결과가 어떻겠소. 교회 성장주의라는 우상이 한국교회를 지배해버렸소. 이런 문제는 뒤에 조금 더 설명하..

종교개혁 494주년(5) / 정용섭목사

둘째는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요. 오직 성서라는 뜻이오. 개신교 신자들은 이런 가르침을 너무 쉽게 생각하오. 결국 가르침의 중심을 놓치고 마오. 이것은 단순히 성서가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오.  개신교 신자들은 성서를 요술단지처럼 생각하오. 문자주의에 묶여서 성서의 놀라운 세계를 훼손하고 있소. 문자주의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믿음이 좋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대요. 자기의 전통, 자기의 선입관을 믿는 것이지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믿는 게 아니오.  솔라 스크립투라는 당시 가톨릭교회가 강조하는 교회의 권위와 대립하오. 루터는 신자들의 삶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오직 성서에만 놓인다는 주장을 통해서 교회에도 놓인다는 가톨릭의 주장을 반대했소.  이것도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오. 그 ..

종교개혁 494주년(4) / 정용섭목사

루터 신학의 폭발성을 자세하게 설명하려면 책 한권으로도 부족하오. 일반적으로 루터 신학은 보수적이라고 알려져 있소만 근원적으로 보면 혁명적이오.  우선 그의 신학을 기초하고 있는 세 가지 명제를 보시오. 첫째는 ‘솔라 피데’(sola Fide)요. 오직 믿음이라는 뜻이오. 이것은 의에 이르는 길이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라는 뜻이오. 이게 뻔한 주장이라고 생각하면 오해요. 당시 가톨릭은 믿음과 행위가 모두 중요하다고 주장했소. 지금 개신교회도 당시 가톨릭과 비슷하오. 루터는 행위를 제거했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오. 믿음만으로 의로워진다는 주장은 이미 로마서에서 바울이 했소. 소위 칭의론이오. 이것을 행위 무용론으로 오해하지 마시오. 칭의론은 의로움의 주도권에 대한 이야기요. 주도권이 하나님께만 주어졌다는 ..

종교개혁 494주년(3) / 정용섭목사

종교개혁 성공의 요인을 여기서 일일이 지적하지 않겠소. 내부적인 것 하나만 말하겠소.  루터 신학의 폭발성이 그것이오. 루터는 운동가이기 전에 학자였소. 그는 방대한 저서를 남겼소. 루터 전집이 한글로도 번역되어야 할 텐데 요원한 일이오. 번역 작업도 모두 돈이 필요하오. 해외 선교사를 보내는 일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한국교회가 신학저서 번역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소.  한국교회의 개혁은 번역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한 번역자가 400쪽짜리 원서를 번역하려면 최소 1년이나 1년 반이 걸리오. 1년만 잡아도 번역료만 4천만 원은 필요하오. 이런 일에 헌금을 쓸 한국교회는 찾아보기 힘드오.  칼 바르트의 은 영어로는 물론이고 한국에 비해 그리스도인의 비율이 턱없이 떨어지는 일본교회도 이미 ..

종교개혁 494주년(2) / 정용섭목사

개혁은 개혁하겠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오. 루터는 로마가톨릭교회를 개혁하겠다고 큰소리를 치지 않았소. 그는 비텐베르크 신학대학교의 신학 선생이자 성당의 사제였소. 비텐베르크는 별로 크지 않소. 베를린에서 남쪽으로 넉넉잡아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도착할 수 있소. 당시 기독교 총본산인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볼 때 변방 중의 변방이 비텐베르크요.  루터는 거기서 시편, 갈라디아서 등을 가르쳤소. 종교를 개혁하려는 의도로 한 게 아니라 사제로서, 교수로서 일상 업무를 수행한 것이오.  1517년 10월31일 성당 출입문 위에 95개 조항의 신학논제를 적은 대자보를 붙였소. 신학적인 토론을 제기한 것이오. 물론 그 순간에 종교개혁이 시작된 것은 아니오. 아무도 거기에 주목하지 않았소. 작은 해프닝에 불과했소..

종교개혁 494주년(1) / 정용섭목사

금년은 종교개혁 494주년이 되는 해요. 10월31일이 종교개혁일이고, 10월30일은 종교개혁 기념 주일이오. 앞으로 6년만 있으면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오. 그 해를 준비하는 작업이 세계교회 곳곳에서 이미 준비되고 있을 것 같소.  우리나라 교회와 신학계에서 이런 준비가 되고 있는지는 아직 소식을 듣지 못했소. 날만 기념하면 아무 소용이 없소. 날에 걸맞게 교회가 새로운 면모를 갖추는 게 중요하오. ‘에클레시아 샘퍼 레포만다’는 종교개혁자들의 신학 슬로건 중의 하나요. ‘늘 개혁되는 교회’라는 뜻이오. 장로교회는 ‘개혁주의’를 표방하오. 그러나 실제로 개혁적인 교회인지는 분명하지 않소.  장로교회만이 아니라 모든 개신교회는 본질적으로 개혁적이어야만 하오. 그것을 본질로 삼기 때문이오. 10월31일까지..

설교를 듣고 말씀을 읽으면 무엇하나? / 봉민근

설교를 듣고 말씀을 읽으면 무엇하나?       글쓴이/봉민근그리스도인들은  솔직해야 한다.정직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요 생명줄이다.거짓말하고 속이는 것은 마귀의 속성을 닮았기 때문이다.세상 사람들은 자신을 희생하는 신자를 보고 싶어한다.거짓 없는 정직한 신자를 통해 하나님을 보고 싶어한다.아파하는 자와 함께 아파하고 고통당하는 자를 위로하며모든 것을 드려 싸매여 주는 그리스도인을 그리워한다.말로만 사랑을 말하지 말고 자기희생을 통해  섬김으로 주님을 보여드려야 한다.십자가를 목에 달고 다닌다고 예수 믿는 자가 아니다.십자가가 무엇인가?자기희생이다.손해 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줄 알아야  주님의 제자다.거짓말하고 정직하지 못하며 조금도 손해 보거나 희생할 줄 모르는 그리스도인 때문에한국교회가 병들..

하나님을 멀리하니 열국의 지배를 받는 유다.(왕하 23:31-24:7)

왕하 23:31-24:7 묵상입니다. 요시야의 죽음으로 신앙 개혁은 멈추어버립니다.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언약 백성 유다는 멸망의 길로 갑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니 열국의 지배를 받는 유다.바로 느고에 의해 주권을 잃고 조공을 바치고,바벨론 느브갓네살에 의해 멸망을 당합니다. 유다의 멸망은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입니다.하나님의 말씀을 거듭 업신여긴 결과입니다.국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불순종의 결과입니다. 나를 여기까지 참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의지하는 오늘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