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재홍목사

생명과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행5:33~42) / 김재홍 목사

새벽지기1 2025. 6. 9. 05:23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런데 율법 교사로서, 온 백성에게서 존경을 받는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새파 사람이 의회 가운데서 일어나서, 사도들을 잠깐 밖으로 내보내게 한 뒤에, 의회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지 조심하십시오.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서, 자기를 위대한 인물이라고 선전하니, 약 사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를 따랐소. 그러나 그가 죽임을 당하니,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다 흩어져 없어지고 말았소. 그 뒤에 인구 조사를 할 때에, 갈릴리 사람 유다가 일어나 백성들을 꾀어서, 자기를 뒤따라 반란을 일으키게 한 일이 있소. 그도 죽으니,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다 흩어지고 말았소. 그래서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바는 이것이오. 이 사람들에게서 손을 떼고, 이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오. 이 사람들의 이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면 망할 것이요,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면 여러분은 그것을 없애 버릴 수 없소. 도리어 여러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봐 두렵소." 그들은 그의 말을 옳게 여겼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불러다가 때린 뒤에,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고서 놓아 주었다.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공의회에서 물러나왔다.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그리고 이집 저집에서 쉬지 않고 가르치고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하였다.'
---------


1. 성령강림절과 환경선교주일


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위로와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교우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이면서 감리교회가 정한 환경선교주일입니다. 성령강림으로 인해 이 땅에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을 맞아 교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환경선교주일을 맞아 오늘날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환경청지기로서의 사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우리 개신교회는 바른 교회로 서있지 못합니다. 쓰러져가고 있습니다. 이는 비단 교인 수가 급격하게 줄고 있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현실은 개신교회 중 2.9%밖에 되지 않는 극우개신교회가 개신교회의 대표처럼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음의 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과 정치적 이념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입으로는 ‘예수 예수’하지만 삶으로는 예수와 정반대로 살고 있습니다. 증오와 차별을 부추기고 폭언과 폭력을 일삼고 있습니다. 증오와 차별, 폭언과 폭력은 예수님에게 있었던 것들이 아니라 예수를 죽인 사람들에게 있었던 것들이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결코 증오와 차별, 폭언과 폭행이 교회의 본질일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8일 스위스의 블라텐 마을에서 빙하가 붕괴되면서 산사태가 일어났습니다. 1분 10초만에 900만톤의 빙하와 바위와 토사가 산 위에서 아래 마을로 쏟아졌습니다. 그로인해 오랜 세월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마을 하나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다행히 마을 주민들은 미리 대피했다고 합니다. 지구온난화로 만년설인 빙하가 녹으면서 발생한 산사태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충격적인 일들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고 사람들은 대피할 사이도 없이 재앙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난 3월 세계기상기구WMO는 작년 2024년 지구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5도 이상 올랐음을 처음으로 공식화했습니다. 1.55도. 이는 파리기후협약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가 지구평균기온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유지하도록 노력하자는 1차 목표를 지키지 못한 것을 공식화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세계적인 기후학자 제임스 한센은 “목표가 죽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목표가 죽었다’는 말은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말뿐 아니라 이제는 인간의 힘으로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는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일과 죽어가는 지구를 살리는 일은 다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2. 성령, 예수님의 일을 이어가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제자들은 모여 기도했고 그들 위에 주님께서 약속하셨던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하신 일을 여러 말로 표현할 수 있지만, 한 마디로 말하면, 성령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이어가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셨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심으로 그리고 사람들끼리, 유대인과 헬라인, 부자와 가난한 자, 남자와 여자 사이에 증오와 차별이 없이 평화롭게 살아가게 하심으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도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죽어가는 생명들을 살렸고, 사람 사이에 있던 증오와 차별의 장벽을 뛰어넘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예수를 죽였음에도 그 제자들이 예수가 하던 일을 이어가자 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아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위협하고는 놓아 보냈습니다. 제자들은 위협에 굴하지 않고 계속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이어갔습니다. 그러자 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은 제자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습니다. 다행히 천사의 도움으로 제자들은 옥에서 나올 수 있었고 다시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이어갔습니다. 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은 다시 제자들을 잡아와 공의회 앞에 세웠습니다. 그 자리는 예수님이 신문 받은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말 한 마디에 따라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죽음에 내몰릴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은 제자들에게 전에 했던 말을 상기시켰습니다.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베드로와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 말은 제자들이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복종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인 동시에,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자부하던 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이야말로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고 하나님께 반항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이에 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은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때 온 백성에게 존경 받던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이 일어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오. 이 사람들의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면 망할 것이요,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면 여러분은 그것을 없애 버릴 수 없소. 도리어 여러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봐 두렵소.’ 사람들은 가말리엘의 말을 옳게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제자들을 불러다가 때리고 다시 한 번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위협하고 놓아 주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이어가다가 의회에 잡혀 갔다 풀려나고, 옥에 갇혔다 다시 풀려나고, 다시 공의회에 잡혀가고, 죽을 뻔하였다가, 맞고, 다시 풀려났습니다. 여러분이 제자들이었다면 풀려난 다음에는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할 만큼 했다. 더 이상은 위험하다. 여기서 더 했다가는 죽겠구나.’ 하면서 뒤로 물러서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제자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5장 41,42절을 보겠습니다.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공의회에서 물러나왔다.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그리고 이집 저집에서 쉬지 않고 가르치고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하였다.” 이상합니다. 모욕을 당하는데 기뻐한다? 제자들이 마조히스트였을까요? 그런 게 아니라,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있는 사람은 그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어려움을 기꺼이 감내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미새가 사람이 자기를 잡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꿋꿋하게 둥지에 앉아 알을 품듯, 제자들은 공의회의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용감하게 인간이 만든 여러 경계를 뛰어넘으며 생명과 평화의 복음을 계속 전했습니다. 그것도 기쁜 마음으로.

3. 생명과 평화의 씨를 뿌리는 사람들


제 사무실 한 켠에는 액자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그 액자에는 작년 4월 담임목사 이취임식 때 청파찬양대의 임영진 교우가 그려주신 그림이 담겨 있습니다. 김기석 목사님께서 전해 주신 바통을 제가 받아 이어달리기를 하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그 바통에는 글씨가 쓰여 있습니다. 무슨 글씨일까요? ‘생명과 평화’입니다. 저는 김기석 목사님으로부터 생명과 평화라는 가치를 전해 받았습니다. 그 생명과 평화는 예수님으로부터 제자들에게로 전해진 바통이었으며, 오랜 시대를 거쳐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바통입니다. 저는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지금 생명과 평화라는 가치를 사람들에게 잘 전하고 있는가’라고 자문하게 됩니다. 그 물음은 우리의 매일의 물음이어야 할 것입니다.

해마다 뜨거워지는 지구와 그로인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여러 재앙적 사건들과 점점 쇠약해지고 극우화되어 가는 개신교회의 모습을 보노라면, 과연 우리 인간에게 희망은 있는가? 멸망으로 치닫는 이 죽음의 질주를 막을 수 있을까? 쓰러진 교회가 다시 바르게 설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2017년 칠레에서도 대형산불이 일어났었습니다. 많은 이가 죽었고 서울 면적의 7배가 넘는 산야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사투 끝에 불이 잡히고 거대한 검은 산야를 보았을 때 칠레 사람들은 다들 낙심했습니다. 그때 한 동물보호단체의 대표인 프란시스카 토레스는 반려견 보더콜리 세 마리를 데리고 검은 산을 올라갔습니다. 보더콜리는 양치기 개로 아주 똑똑한 견종입니다. 토레스는 개들에게 씨앗 주머니를 허리 양쪽에 매달아 주고는 온 산야를 뛰어다니게 했습니다. 개들이 달릴 때마다 씨앗 주머니에서는 씨앗이 적당히 떨어져 나왔습니다. 토레스의 개 세 마리는 하루에 반경 30㎢에 10kg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한 철 두 철 한 해 두 해가 지나며 검은 산 곳곳은 푸르게 변해갔습니다. 자기의 양 옆으로 커다란 씨앗주머니를 매달고 달리는 보더콜리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개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얼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아주 기쁜 마음으로 하고 있는 얼굴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과 평화의 씨앗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 생명과 평화의 씨앗을 세상 곳곳에 뿌리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거대한 욕망과 죽음과 폭력의 세상에 비하여 우리가 뿌리는 작은 생명과 평화의 씨앗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지만, 생명과 평화가 자라게 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한 사람과 십여 명의 제자들을 통해서도 생명과 평화의 씨앗을 뿌리셨고, 그 씨앗이 전 세계 곳곳에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날마다 생명과 평화의 씨앗을 뿌리며 살아갑시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때 언젠가 쓰러졌던 교회는 다시 바르게 설 것이고, 죽어가던 지구가 되살아날 것입니다. 그 귀한 일을 기쁘게 감당하는 청파의 교우들과 이 시대 믿음의 백성들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