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짧은 생각
지금 우리는 살아 있는 게 분명할까?
숨을 쉬고 심장이 뛰고 뇌가 활동하고 있으니까
의학적으로 살아있는 게 분명하다.
그러나 숨, 심장, 뇌의 활동이라는 게
아주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면
살아있다는 확신이 흔들린다.
흔히 말하듯이 백년 후에도
여전히 숨을 쉬고 있을 사람은 없다.
백년이라는 세월은 지구의 긴 역사에서 볼 때
거의 무의미하다.
지금 우리는 거의 무의미한 순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하루살이를 보라.
그들의 한평생은 일주일 쯤 된다.
우리가 볼 때 그들의 한 평생은 가소롭다.
그들의 한 평생은 오직 알을 낳기 위한 것에 투자된다.
우리가 볼 때 그들의 한 평생은 무의미하다.
하루살이와 우리의 차이는 보기에 따라서
하늘과 땅 만큼 크게 보이겠지만
또 거기서 거기에 불과하다.
지구 전체의 시간에 비추어보면
인간의 수명이나 하루살이의 수명이나 큰 차이가 없다.
인간의 문명 생활이 대단한 것처럼 보이겠으나
후손을 낳고 죽는다는 그 엄정한 사태 앞에서 보면
하루살이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삶에 애착을 보인다.
여기서 예외는 없다.
삶에의 애착 자체가 바로 삶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거꾸로 그런 애착을 넘어설 때
삶을 풍요롭게 경험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이건 우리의 본능을 거스르는 것이기에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지도 않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 삶을
정말 실질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까?
'좋은 말씀 > -매일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이 오다 / 정용섭 목사 (0) | 2025.03.04 |
---|---|
권은희 수사과장 / 정용섭 목사 (0) | 2025.03.04 |
설교 후기 / 정용섭 목사 (0) | 2025.03.03 |
이사야의 신탁 / 정용섭 목사 (0) | 2025.03.03 |
감자 깎으며.../ 정용섭 목사 (1) | 2025.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