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가을이 오다 / 정용섭 목사

새벽지기1 2025. 3. 4. 06:02

가을이 오다

 

어젯밤 영천에 제법 많은 양의 비가 내리더니

오늘부터 기온이 뚝 떨어졌다.

정확하게 온도를 확인해보지는 않았으나

몸으로 충분히 느끼고도 남을 정도다.

두 달 가까이 이층 서재에 가득했던 열기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싹 가셨다.

비가 온 탓만이 아니다.

아무리 이상 기온이라고 해도

계절을 막을 수는 없다.

벌써 8월 하순이다.

오늘이 음력으로 보름이고,

한 달 후면 추석이다.

이미 입추가 지난 8월7일에 지났고

모레 23일은 처서니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지 않을 리 있겠나.

 

원당으로 이사 와서 처음 맞은 가을이다.

기대가 된다.

한국의 가을이야 어디서 맞은들 좋지 않겠냐만

숲속 언덕에 집 짓고 들어와 있으니

일단 느낌만으로도 계절이 더 진하게 다가올 것 같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과 배추와 무,

그리고 마을 곳곳에 매달린 감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삶이 황홀해질 것이다.

풀벌레 소리도 기대가 된다.

창문 바로 위의 참나무에 달린 도토리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가을이 오면 잠자리도 더 많아지고,

거미들도 더 극성스럽게 거미줄을 칠 것이며,

메뚜기들도 후손을 번식하려고 서두를 것이다.

어렸을 때의 기분을 살려

메뚜기를 잡아 구워 먹는 건 어떨는지.

인근 야산에 밤나무가 제법 있다.

땅에 떨어진 밤을 주어와도 되는지

아랫집에 좀 물어봐야겠다.

집사람은 이번 가을에 포도잼을 만들겠다고 벼른다.

나는 포도주를 만들어보리라.

수년전에 하양에서 실패한 경험이 있다.

오늘 달이 밝다.

가로등 개수를 줄여서 어두웠던 원당이

한눈에 훤히 내려다보인다.

가을이 온다.

내 인생에 몇 번 남아 있을 가을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