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희 수사과장
어제 국정원 사태 국회 청문회에서
당시 수사 책임자였던 권은희 수사과장이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으로부터
외압성 전화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대통령 선거 일주일 여 전에 터진
국정원 직원의 대글 사건이 그것이다.
1970, 1980년대도 아니고
2010년대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 땅에서
대통령 선거에 국정원이 개입한다는 게 말이나 되나?
물론 거기 관계자들은 대선 개입이 아니라
종북 세력의 준동을 방어하는 국정원의 기본 업무였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말하기 시작하면 모든 게 허용된다.
국정원이 목사의 설교까지 비밀리에 사찰할 수 있다.
저 목사의 설교가 북한을 두둔하거나
북한이 노리고 있는 국론 분열을 일으키는지 살펴본다고 할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들이 내 젊은 시절에는 비일비재했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일부에 있겠지만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다.
국정원 대글 문제는 더 말하기조차 짜증스러우니
그만 두는 게 좋겠다.
지금 검찰이 당사자들을 기소했으니까
앞으로 법원이 정확하게 판단하면 된다.
신기한 것은 검찰이 무슨 생각을 했기에
박근혜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기소까지 했느냐 하는 것이다.
좌고우면 없이 법리적으로 문제를 처리했다는 뜻인데,
칭찬 받을 일이다.
다시 권은희 과장이다.
청문회장에서 그의 대답은 거침없었다.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고 할 것은 아니오 했다.
모른다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도 없었다.
청문회 열기에는 무심한 듯이
오랜 구도과정을 통해 평상심의 경지에 이른 도사처럼
오직 자기의 생각만 ‘쿨’ 하게 전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내가 보기에 두 가지다.
1) 법리에 정통했다.
2) 법철학이 분명했다.
두 개가 비슷한 이야기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다르다.
여기서 그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
이건 신학과도 통하는 문제다.
그들이 다루는 법은 신학의 입장에서 성경이다.
목사들이 성경을 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오용하듯이
법조인들도 법을 오용할 수 있다.
권은희는 법의 세계 안에 들어가서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자유롭게 자기의 말을 했다.
이런 사람의 영성은 선지자와 같다.
권은희의 어제 증언에 따르면
대글 사건의 수사 책임자로서 본인이
대글 현장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려고 할 때
김용판 청장으로부터 만류하는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내사 중이라는 사실과
검찰로부터 기각당하면 곤란하다는 이유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지금으로서는
두 사람과 하나님만 알고 있을 것이다.
다음의 사실을 전제하면 우리도 대충은 알 수 있다.
모든 수사는 수사과장의 책임이다.
상급자도 거기에 간섭할 수 없다.
수사의 독립성을 철저하게 보장한다는 뜻이다.
그 예민한 순간에 청장이 수사과장에게 전화를 했다.
본인은 격려 차원이었다고 말하고,
권은희 과장은 구체적인 압력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번 청문회에 임하면서
김용판 청장은 재판을 받는 중이라는 이유로
증인 선서를 하지 않은 채
자신에게 유리한 발언만 골라서 했다.
증인 선서 거부는 국회 청문회 역사 이래 최초라고 한다.
에피소드 하나.
새누리당 아무개 의원이 권 과장에게 물었다.
문재인이 대통령 되기를 바란 거 아니냐?
권 과장의 대답이다.
지금 의원은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십자가 밟기’와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증인의 감정을 자극하는 질문을 받은 그 순간에
저런 대답을 할 수 있는 내공이 놀랍다.
변호사 출신으로 최초 여성 경감으로 채용된 사람답다.
권은희 과장으로 인해서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 지수가 크게 올라가지 않았겠는가.
그가 계속 경찰계에 남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과 더불어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좋은 말씀 > -매일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은 광야의 것이다. /정용섭 목사 (0) | 2025.03.04 |
---|---|
가을이 오다 / 정용섭 목사 (0) | 2025.03.04 |
스치는 짧은 생각 / 정용섭 목사 (0) | 2025.03.04 |
설교 후기 / 정용섭 목사 (0) | 2025.03.03 |
이사야의 신탁 / 정용섭 목사 (0) | 2025.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