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다
어젯밤 영천에 제법 많은 양의 비가 내리더니
오늘부터 기온이 뚝 떨어졌다.
정확하게 온도를 확인해보지는 않았으나
몸으로 충분히 느끼고도 남을 정도다.
두 달 가까이 이층 서재에 가득했던 열기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싹 가셨다.
비가 온 탓만이 아니다.
아무리 이상 기온이라고 해도
계절을 막을 수는 없다.
벌써 8월 하순이다.
오늘이 음력으로 보름이고,
한 달 후면 추석이다.
이미 입추가 지난 8월7일에 지났고
모레 23일은 처서니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지 않을 리 있겠나.
원당으로 이사 와서 처음 맞은 가을이다.
기대가 된다.
한국의 가을이야 어디서 맞은들 좋지 않겠냐만
숲속 언덕에 집 짓고 들어와 있으니
일단 느낌만으로도 계절이 더 진하게 다가올 것 같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과 배추와 무,
그리고 마을 곳곳에 매달린 감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삶이 황홀해질 것이다.
풀벌레 소리도 기대가 된다.
창문 바로 위의 참나무에 달린 도토리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가을이 오면 잠자리도 더 많아지고,
거미들도 더 극성스럽게 거미줄을 칠 것이며,
메뚜기들도 후손을 번식하려고 서두를 것이다.
어렸을 때의 기분을 살려
메뚜기를 잡아 구워 먹는 건 어떨는지.
인근 야산에 밤나무가 제법 있다.
땅에 떨어진 밤을 주어와도 되는지
아랫집에 좀 물어봐야겠다.
집사람은 이번 가을에 포도잼을 만들겠다고 벼른다.
나는 포도주를 만들어보리라.
수년전에 하양에서 실패한 경험이 있다.
오늘 달이 밝다.
가로등 개수를 줄여서 어두웠던 원당이
한눈에 훤히 내려다보인다.
가을이 온다.
내 인생에 몇 번 남아 있을 가을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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