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책이다.
오늘은 성경읽기의 한 예를 들겠다.
오늘 설교의 성경 본문은 렘 1:4-10절이었다.
그 본문 앞인 렘 1:1절에 재미있는 표현이 나온다.
루터 성경의 구문을 그대로 따라서 직역하면 이렇다.
“이것은 예레미야의 말이다. 그는 베냐민 지역의 아나돗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이다.”
우리는 선지자들의 예언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렘 2:1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다고 한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1장1절에서 예레미야의 말이라고 밝힌다.
예레미야의 말과 여호와의 말씀은 어떻게 다른가?
이게 어려운 질문이다.
언어와 문자는 분명히 사람에게서 온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원천은 하나님에게 있다.
언어의 존재론적 차원이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어떤 것이 예레미야의 순전한 말이고,
어떤 것이 여호와의 순전한 말씀인지를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예레미야의 말로만 취급할 수 없으며,
또한 모든 것을 여호와의 말씀으로만 취급할 수도 없다.
이것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 기준이 겉으로 드러나는 건 아니다. 서로 뒤섞여 있다.
형식적으로는 모두 예레미야의 말이다.
그러나 그 내면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다.
그것을 찾아내려면 해석이 필요하다.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문자 자체를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자를 뚫고 들어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밝혀내야 한다.
그것을 해석이라고 한다.
누가 해석할 수 있나?
성서 해석의 자격증은 목사에게 주어져 있나? 신학박사인가?
성령을 받으면 되나? 성경을 백독 하면 되나? 기도가 그 능력인가?
바른 해석은 또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
어려운 질문이 이어진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경구가 성경에도 해당되는 게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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