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이어서, 책읽기에서 구체적인 내용보다
느낌으로 남는 게 좋은 이유의 다른 하나는
세상 자체가 그렇게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책은 바로 그런 세상에서 일어난 것에 대한 진술이자 해석이다.
세상이 구체적이지 않다면 결국 책도 구체적일 수는 없다.
세상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말을 이상하게 생각할 게 없다.
보라.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간다.
나 자신도 언제일지 정확하게는 모르나 아무리 길게 잡아도
30년 이상을 버텨내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조금 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나와 별 차이도 없다.
20년 늦게 사라진다고 해서 별 대단한 것도 아니다.
어떤 것도 영원하게 남아 있는 게 없다.
지구도 언젠가는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렇다면 결국 지구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도 희미한 것 아니겠는가.
선불교에서는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라고 가르친다.
공(空)과 색(色)이 같다는 뜻이다.
공은 비어 있는 것이고, 색은 채워진 것이다.
우리가 없다고 말하는 공과 있다고 말하는 색이 결국 하나라는 뜻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책읽기의 최선은 어떤 느낌을 전달받는 것이다.
당장 실용적인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
그 느낌들이 축적되면서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좋은 말씀 > -매일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읽기(4), 2월2일(토) / 정용섭 목사 (0) | 2025.01.17 |
---|---|
책읽기(3), 2월1일(금) / 정용섭 목사 (0) | 2025.01.17 |
책읽기(1), 1월30일(수) / 정용섭 목사 (0) | 2025.01.17 |
장준하, 1월29일(화) / 정용섭 목사 (0) | 2025.01.17 |
빛으로의 죽음, 1월28일(월) / 정용섭 목사 (1) | 2025.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