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무리가 흩어진 다음, 예수께서는 산에 오르셔서 따르는 사람들 중에 “원하시는 사람들”(13절) 열둘을 따로 세우신다. 14절의 꺾음쇠 괄호는 마가가 쓴 것인지 후대에 첨가된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에게 “산에 오른다”는 말은 영적 의미를 가진다. 유대인들에게 “열둘”은 완전수였다. 완전체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로 형성되었는데, 예수님 당시에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만 남고 모두 사라졌다. 예수께서 열두 사람을 제자(나중에는 사도)로 세운 것은 당신의 사역을 통해 새 언약 백성(새 이스라엘)을 세우시려는 뜻이었다. 열두 제자는 앞으로 일어날 새 이스라엘의 열두 족장으로 세움 받은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상징적인 의미만 부여하지 않으신다. 첫째, 예수님은 그들을 “자기와 함께 있게”(14절) 하신다. 문하생으로서 혹은 도제로서 함께 살면서 제자로 훈련 받게 하려는 것이다. 둘째, 예수님은 훈련 받은 “그들을 내보내어서”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하게 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쫓아내도록 하셨다. 그래서 “보냄받은 자” 즉 “사도”라고 불린 것이다.
앞에서 마가는 다섯 제자(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레위)를 부르신 이야기를 전했다(1:16-20; 2:13-14). 나머지 일곱 제자들을 부르신 이야기는 생략했다. 처음 언급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열두 제자 중에서도 인너써클에 속했다. 예수님은 특별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세 제자에게만 보게 했다(5:37; 9:2; 13:3; 14:33). 마태는 레위라고도 불렸던 세리였다. “열혈당원” 즉 로마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싸웠던 투사 시몬도 포함되어 있다. 유다라는 이름에 따라 붙는 “가룟”(19절)도 “자객”이라는 의미일 가능성이 크다. 그 외 다른 제자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묵상: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불러 선민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 한 민족을 선택하여 선민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은 열두 지파로 자라 한 민족을 이룹니다. 하나님께서는 7년 동안의 흉년으로 인해 이집트로 피신 했다가 노예 살이를 하게 된 이스라엘을 사 백 년 후에 모세를 통해 해방시키시고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제사장의 나라가 되게 하셔서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은 제사장의 나라가 되라는 부름을 따라 살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실패하고, 그 결과로 열 지파가 공중분해 되고 두 지파만 살아 남자,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장차 메시아를 통해 흩어진 이스라엘을 회복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예언은 오 백여 년 동안 이루어지지 않았고,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절망 가운데 처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신 후 들을 귀가 있는 사람만 듣고 알아차릴 수 있도록 자신의 정체를 은밀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자신을 “인자”로 부르신 것도 그렇고,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씀도 그렇고, 혼인 잔치의 신랑이라는 비유도 그렇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다른 율법학자와 같지 않았고, 그분이 행하시는 이적들은 과거에 볼 수 없던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말씀을 유심히 듣고 그분의 행동을 주목해 본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런 의문을 가진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에 대한 또 하나의 중요한 단서를 던지십니다. 당신을 따르던 제자들 중에서 열둘을 뽑아 세우신 것입니다. 그것은 실패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생각나게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당신을 통해 새 이스라엘을 세우실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새 이스라엘은 혈통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결정됩니다. 한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소명이 이제 믿음으로서 형성된 새로운 이스라엘 곧 교회에게 맡겨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새로운 언약 백성(새 이스라엘)의 일원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 받아 제사장의 나라로 살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세상의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주님, 믿는다는 것이 나 혼자 구원 받아 죽고 나서 천국 가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새 언약 백성의 일원이 되어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를 받아 제사장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알겠습니다. “거룩한 공교회를 믿습니다”라는 고백이 그런 의미임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자격 없는 저를 주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가도록 저를 변화시켜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을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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