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1절부터 8절까지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구원을 예언한다. 이 예언은 이스라엘(실제로는 포로로 살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주신 것이다(1절). 주님은 그들을 지으시고 양육하신 분이다. 그분은 그들을 “여수룬”(의로운 자)이라고 부르시며 두려워 하지 말라고 격려하신다(2절). 주님께서 그들에게 영을 부어 주시어 회복시켜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3절). 그 때가 되면 그들은 주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자랑하고 다닐 것이다(5절). 그분은 미래의 사건을 미리 예고하시고 그 말씀대로 행하시는 분이시다(6-8절).
9절부터 20절은 참된 하나님은 오직 한 분 뿐이며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은 모두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우상은 다만 사람이 만든 것이며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한다. 따라서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섬기는 일은 어리석고 헛된 일이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수치를 당할 것이다(9-11절). 쇠로 만든 우상이든 나무로 만든 우상이든, 헛되다는 점에서 동일하다(12-13절). 그들은 같은 나무를 잘라서, 하나로는 불을 붙여 고기를 구워 먹고, 다른 하나로는 신상을 만들어 그 앞에 절을 한다(14-17절). 눈이 가려지고 마음이 어두워져서(18절)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기”(19절) 때문이다. 그들은, 우상이 참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20절).
21절부터 28절까지에서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회개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전한다. 이스라엘을 지으신 하나님은 그들을 절대로 잊지 않으신다(21절). 그분은 그들의 죄를 제거하시고 당신에게 돌아오라고 부르신다(22절). 그런 예언을 전하면서 이사야는 모든 피조물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부르신다(23절).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24절)은 거짓 예언하는 사람들의 말을 무색하게 만드시지만(25절), 예언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이 회복될 것이라는 뜻이다(26절). “깊은 물”과 “강물”(27절)은 유다 백성의 회복을 방해하는 장애물에 대한 상징이다. 주님은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을 목자로 삼으시어 예루살렘 회복에 대한 예언을 이루실 것이다(28절).
묵상:
당시 나라들은 각각 그들이 섬기는 신의 형상을 만들어 그 위세를 과시했습니다. 한 나라의 국력은 곧 그들이 섬기는 신의 힘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나라들은 경쟁적으로 신상과 신전을 크고 화려하게 만들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겼다는 말은 자신의 신이 더 강하다는 뜻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이런 사고 방식 때문에 패전 국가의 국민으로 바빌로니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은 심하게 위축되어 살았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섬기던 하나님이 바빌로니아의 신보다 약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시편 137편에서 포로민들에게 “시온의 노래를 불러보라”(3절)고 조롱한 것은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유대인 포로들을 조롱하던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실은 그들이 믿고 있던 하나님을 조롱했던 것입니다.
포로 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내려 놓고 바빌로니아의 신과 우상을 섬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내다 보시고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크고 화려하게 만들었다 해도 우상은 우상일 뿐이며, 역사를 주관하는 참된 신은 오직 한 분, 당신 밖에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 주변에는 돌이나 나무 혹은 금속으로 새겨 만든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하지만 우상 숭배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우상 숭배로 옮겨갔을 뿐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예배하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그 자리에 다른 것을 세웁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들 중에도 우상 섬기듯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불신의 땅에 유배 생활을 하는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섬기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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