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그는 살아나셨다(28)(막16:6)

새벽지기1 2024. 4. 23. 06:10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16:6)

 

부활 문제를 자꾸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무조건 믿으면’ 될 거 아니냐, 하고 생각할 분들도 있겠지요. 믿음이 없어서 그렇지 믿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간단히 해결될 거라고 말입니다. 그런 생각은 정말 안이할 뿐만 아니라 무책임하기도 합니다. 기독교의 인식론에서 믿음이 중요하지만, 믿음이 능사일 수는 없습니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바울의 경구를 빌려올 필요도 없이 이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믿을만한 설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런 설명은 먼저 믿음의 세계에 들어온 우리의 책임입니다.

 

예수 부활에 대해서 좀더 명시적으로 말씀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예수 부활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정통 기독교는 이 사실을 망각하거나 유보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예수 부활이 역사적 사건이라는 전제에서만 기독교가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역사적 사건’이라는 게 무슨 뜻일까요? 그것을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이나 귀신을 쫓아낸 사건처럼 어떤 기적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하면 정확한 게 아닙니다. 이런 문제를 계속해서 논의하려면 ‘역사란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봐야겠지요. 사실 역사가 무엇인지 완전히 드러난 게 아닙니다. 세계 역사책이나 한국 역사책에 기록된 사건들을 역사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거기에 기록되지 않는 사건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어떤 사건이 역사의 중심인지, 어떤 사건이 어떻게 영향을 끼쳐서 지금의 역사가 형성되었는지를 확연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세상은 무엇인가,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과 다를 게 없습니다. 예수 부활이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때 핵심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