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침묵하신 이유 (막 15:1-5)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3. 26. 04:12

해설:

새벽이 되어 산헤드린의 의장인 대제사장이 전체 회의를 소집하여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고발 하기로 정합니다. 총독의 오전 업무가 시작되자 마자 고소하기 위해 서두른 것입니다. 산헤드린 자치 의회에서는 사형을 결정할 수 있었지만 집행할 수는 없었습니다. 로마 식민지였으므로 사형 집행은 총독의 전권에 속했습니다. 

 

산헤드린 의원들은 예수님을 로마 법에 고소할 죄목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로마에 정치적 반란을 일으킬 목적으로 유대인의 왕으로 자처했다고 고발하기로 결정합니다. 반란을 꾀한 사람들은 당시에 최고 극형이었던 십자가 처형에 처해졌습니다. 빌라도가 총독으로 부임한 후에 몇 차례의 반란이 있었기 때문에 유다 총독으로 공을 세워 로마 황제가 되기를 꿈 꾸었던 그는 이 문제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예수님을 독대한 자리에서 빌라도가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2절)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당신이 그렇게 말하였소”라고 답합니다. “그 말이 맞기는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왕은 아니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왕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의 왕권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도 그랬듯이 빌라도도 역시 땅의 왕국과 땅의 왕권 외에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 앞에 예수님을 세워 놓고 심리를 진행합니다. 대제사장들은 여러 가지로 예수님을 고발합니다(3절).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주었으나 그분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으십니다(4-5절). 이미 모든 것이 정해져 있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끼신 것입니다. 빌라도는 그것을 이상하게 여깁니다. 그의 눈에 예수님은 정치적 반란을 꾀한 사람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의원들이 그를 모함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정작 본인은 아무 대응도 하지 않으니 이상하게 여긴 것입니다. 로마의 사법 관습에 따르면, 피고가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면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는 뜻으로 해석되었습니다.

 

묵상: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다른 포유류 동물들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포유류 동물이 침팬지인데, DNA에 있어서 98.4% 일치한다고 합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동물을 다스리는 자리에 오를 이유가 없습니다. 인간이 그렇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다른 동물들도 어느 정도 의사 소통을 한다고 하지만, 인간처럼 정교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개체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미약하지만, 의사 소통을 통해 결집하자 인간은 어떤 동물도 당해낼 수 없는 강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말은 인간의 삶에 이토록 중요합니다. 인간은 더불어 살도록 지어진 존재이고, 더불어 살려면 다른 사람과 소통해야 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려면 언어가 필요합니다.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은 무인도에 살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말을 통해 우리의 내면 세계와 외부 세계가 연결되고 소통됩니다. 그것이 인간 실존의 근본 조건입니다.

 

말은 이렇게 중요한데, 말이 무용해 지는 때가 있습니다. 말로 혹은 몸짓으로 저항하는 것이 부질 없을 때가 있습니다. 말을 할수록 상황만 더욱 악화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입을 다물고 상황을 견뎌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침묵하는 것은 마치 불덩어리를 삼키고 있는 것처럼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침묵이 최선의 반응일 때가 있습니다. 무고하게 모함 당할 때가 그렇습니다. 상황이 복잡하게 꼬여서 무슨 말을 해도 무익할 때가 그렇습니다. 이미 상황이 결정되어 있을 때가 그렇습니다. 

 

빌라도의 주재 하에 재판 받는 동안 예수님이 침묵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정해져 있으므로 그분은 모든 혐의와 비난을 고스란히 받아 들이십니다. 이 때 그분은 “그는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 53:7)는 말씀을 암송하고 계셨을지 모릅니다. 

 

이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다는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모든 것을 바로 잡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없이는 끝내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 침묵은 진정한 믿음의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