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자기들의 백성에게 거부 당한 왕(막15:6-15)

새벽지기1 2024. 3. 27. 05:02

해설:

빌라도는 예수님이 유대인 지도자들에 의해 무고하게 고발 되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는 묘수를 찾습니다. 유다 총독으로 부임한 직후에 빌라도는 무리한 강압 정책으로 인해 유다 백성과 마찰을 빚었고, 그로 인해 로마 황실로부터 문책을 당했습니다. 그 이후로 빌라도는 총독으로서의 직무를 다하면서도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유연한 정책을 실행합니다. 그 중 하나가 유대인의 명절 때 유명한 죄수 하나를 석방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이번 유월절 특별 사면의 혜택을 빌미로 예수님을 풀어 주려 합니다(6절).

 

때마침 유대 군중은 빌라도에게 유월절 특별 사면을 시행하라고 요구합니다(8절). 빌라도는 산헤드린 의회의 뜻과 달리 유대 군중은 예수님을 풀어 주기를 바라는 줄 알았습니다(9-10절). 하지만 유대 군중은 산헤드린 의회원들의 사주를 받고 예수가 아니라 바라바를 석방해 달라고 요구합니다(11절). 마가는 바라바를, “폭동 때에 살인을 한 폭도들”(7절)의 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에 사용된 헬라어 ‘스타시아스테스’는 정치적 혁명가를 의미합니다. 바라바는 유다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유대 군중에게 묻습니다(12절). 총독으로서 그는 전권을 발휘하여 자기 뜻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유대 군중에게 환심을 얻고 싶었기에 이렇게 물은 것입니다. 그러자 무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요구합니다(13절). 십자가형은 로마 제국이 식민지 백성을 길들이기 위해 사용했던 처형 수단인데, 식민지 백성이 로마 총독에게 십자가형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다시금 그들의 의도를 확인하지만, 그들은 더욱 강하게 십자가형을 요구합니다(14절). 

 

빌라도는 결국 무리가 원하는 대로 바라바를 석방하고 예수님에 대한 처형 과정을 허락합니다. 십자가형의 첫 단계는 채찍질입니다(15절). 고문용 채찍은 여러가닥의 가죽 끈으로 되어 있는데, 끈 끝에는 납쇠로 만든 갈고리가 붙어 있어서, 맞을 때마다 살에 깊이 패이고 채찍을 뗄 때마다 살점이 뜯겨 나갔습니다. 이 매질은 죄수가 기진할 때까지 지속되는데, 때로는 이 고문 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습니다. 마가는 이 과정을 단 한 문장으로 묘사합니다. 자세하게 기록하기에는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묵상:

요한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요 1:11)라고 썼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온 세상의 영원한 왕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인류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참된 왕, 영원하신 왕이 당신의 나라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당신의 백성에 의해 배척받고 죽임을 당하십니다. 제사장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유다 백성 조차도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요구에 로마 총독이 굴복했고, 로마 군병들은 그분을 잔인하게 학대한 다음에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이로써 그분의 죽음에 온 인류가 참여한 것입니다. 온 인류의 왕이신 분이 온 인류에 의해 거부 당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영원하신 왕을 떠나 뿔뿔이 흩어진 이유는 땅의 나라와 땅의 왕권 밖에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사지로 밀어낸 이유도 땅의 나라밖에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가 끝내 유대인들의 압력에 굴복한 이유도 영원한 나라와 영원한 왕권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 이후의 역사를 통해 당신이 영원한 왕이시며 영원한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중 많은 이들이 땅의 나라와 땅의 왕권만 알고 있습니다. 영원한 나라와 영원한 왕을 믿고 인정한다는 사람들도 그런 것을 믿는 사람답게 살지 못합니다. 영원한 왕의 능력으로 땅의 나라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원합니다. 믿음의 궁극적 목적이 영원한 나라가 아니라 땅의 나라에 있습니다. 그로 인해 오늘도 우리는 예수님을 부인하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하며 때로는 십자가에 못박기도 합니다. 우리는 제자들도,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도 혹은 빌라도도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도 그들 중 하나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