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묵상

공의가 사랑이다.(신 16:18-17:13)

새벽지기1 2024. 2. 2. 04:12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재판장과 지도자를 세우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재판장과 지도자들이 할 자세로서 공의로운 재판을 말씀합니다.

우리시대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마치 정설처럼 들려지고 있습니다. 공의가 없는 사회는 시궁창과 같습니다. 공의가 사라지면 사랑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지도자들이 감당할 일은 오직 공의만 따름입니다. 너무나 상식적이지만 부패한 사회에서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정직한 지도자들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공의로운 자세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에서도 나타납니다. 흠있는 예물은 드려질 수 없지만, 속이고 얼마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또한 남녀가 하나님을 속이고 우상숭배합니다. 그 사실이 알려지고 고발되어지면 철저하게 징계를 명령합니다. 돌로 치는 것이 합당한 공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함이 공동체의 생명임을 말씀합니다.

물론 이 때 중요한 기준은 두 세사람의 증인입니다. 이들의 증언으로 심판할 때 공의가 선언됩니다. 자의적으로, 감정으로 가볍게 또는 쉽게 판단하지 말아함을 의미합니다. 신중함과 후회없음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판단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 재판장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르치는 율법과 판결대로 심판 할 것을 말씀합니다. 판결의 중요함을 반복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신중하게 판결한 제사장과 재판장의 말을 듣지 않고 무법하게 행동하는 자들은 죽여서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라고 말씀합니다. 판결에 대한 하나님의 결정과 죄와 악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지 정확하게 보여주십니다. 거룩한 나라를 세우는 데 있어서 죄와 악은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온 백성에게 나타나야 합니다. 나라가 사는 길이고, 신자가 복 받는 길입니다. 오늘날 이상한 논리 가운데 하나는 신약의 하나님과 구약의 하나님을 분리하여 신약의 하나님만을 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이긴다고 발설합니다. 하지만 공의없는 사랑은 하나님의 모습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와 사랑으로 가득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이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연약한 인간은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의보다는 사랑에 의존합니다. 공의를 강조하면 오히려 배척받습니다. 십자가가 배척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참된 신앙은 공의와 사랑이 균형있게 세워지는 일입니다. 평생동안 해야 할 일입니다. 아마도 천국에서나 이뤄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하여 싸워야 할 삶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랑과 공의의 현장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실패하더라도 지치지 않도록 간구합니다. 주님 도와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