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고,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자를 향하여 하나님은 내버려두는 형벌을 내리십니다. 하나님의 내버려둠을 당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모습은 각종 죄를 즐기며 삽니다. 죄의 삯은 사망임을 알면서도 죄의 자리에 있고, 다른 사람을 죄의 자리로 이끕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누구도 죄의 심판을 피할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자하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에 대한 회개의 자리에 이르지 않은 자는 반드시 행한 대로 심판을 받습니다(6절).
반면에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을 주십니다(7절). 그가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인종차별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주님의 자녀입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에 대하여 율법과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통하여 말씀합니다. 율법이 있는 자는 율법으로 율법이 없는 자는 본성에 새겨진 율법의 행위로 판단을 받습니다. 본성에 새겨진 율법의 행위가 그 사람에게 율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때 양심은 율법의 행위가 본성에 심겨져 있음을 증거합니다.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와 양심은 약간 구별이 있습니다.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는 앞선 양심을 의미하고 일반적인 양심은 결과적 양심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 양심이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가 있음을 증언합니다.
율법은 죄를 인식하게하고 죄와 싸우게합니다. 율법이 오면 죄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죄의 자리에서 도망칩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알고 듣기만 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듣기만 해도, 소유만 하여도 의롭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행할 때 의로운 자가 됩니다(13절).
이 말은 율법으로 의로운 자가 된다는 칭의를 말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단지 율법은 행함을 위하여 주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행하지 않는 율법은 의미가 없습니다. 율법은 행하기 위하여 주셨습니다. 율법은 구원받은 자의 삶의 규범으로 항상 적용됩니다. 그래서 심판의 근거로 작용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심판하실 때 율법은 명확하게 작동합니다. 의인의 증거는 율법을 삶의 규칙으로 삼고 열심을 다해 삽니다.
오늘도 단지 율법을 듣는 것으로, 소유하였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신앙이 아니라 신실하게 행하는 자의 삶으로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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