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잠언 9장: 왕비와 음녀

새벽지기1 2022. 11. 6. 07:24

 

해설:

1절부터 6절까지는 지혜의 초청을 전합니다. 지혜는, 궁궐을 을 잘 짓고 좋은 음식을 장만한 후에 시녀들을 내보내어 사람들을 초청하는 왕비와 같습니다. 왕궁에 차려진 음식을 먹으면 큰 즐거움과 힘을 얻는 것처럼, 지혜와 더불어 살면 명철의 길을 걷게 되며 생명을 얻습니다.  

7절부터 9절까지는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을 대비시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훈계를 달게 받고, 어리석은 사람은 훈계를 거부할 뿐 아니라 훈계를 준 사람을 미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더욱 지혜로워지고, 어리석은 사람은 더욱 어리석어집니다. 10-12절까지는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며, 지혜를 따르는 것이 복된 길이라고 말합니다. 

 

13절부터 18절까지는 어리석은 여인에 대해 말합니다. 앞에서 지혜를 왕비에 비유한 것처럼, 어리석음을 음행하는 여인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 여인은 아는 것이 없으면서도 말이 많고, 달콤한 말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사람들은 그 부정한 쾌락에 함정이 숨겨져 있음을 짐작하면서도 그 여인의 집을 찾습니다. 그것처럼 지혜를 외면하는 것은 곧 파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지혜는 정숙한 여인처럼 손님들에게 기쁨과 생명을 안겨 주지만, 어리석음은 손님들을 쾌락으로 끌어들여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묵상:

왕비가 궁궐에 좋은 음식을 차려 놓고 부르는데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습니다. 반면, 음란한 여인에게는 자기 발로 찾아가 유혹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것처럼, 사람들은 지혜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을 부담 되는 것으로 여기고 자신을 불편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으로 여깁니다. 반면, 어리석고 악한 일에는 곁눈질을 하면서 침을 흘립니다. 자신을 유혹해 주기를 바랍니다. 

왜 우리의 본성은 바르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으면서 거짓되고 악하고 추한 것에 대해서는 흥미를 보일까요? 그것은 우리 존재가 죄성에 속속들이 전염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욕망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그냥 두면 어리석은 길로 기울게 되어 있습니다. 그 길의 끝에는 파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생명의 길을 걷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욕망의 움직임을 잘 관찰해야 합니다. 거짓되고 악하고 추한 것들이 잡아 당기는 힘을 거부하여 진실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형제자매 여러분,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무엇이든지 경건한 것과, 무엇이든지 옳은 것과, 무엇이든지 순결한 것과, 무엇이든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지 명예로운 것과, 또 덕이 되고 칭찬한 만한 것이면, 이 모든 것을 생각하십시오”(빌 4:8)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생각하십시오”에 사용된 헬라어는 “마음에 품다”라는 의미이고 현재 시제로 쓰였습니다. 이런 것들을 늘 마음에 두고 살라는 뜻입니다. 이런 것을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궁궐에 사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