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훈목사

부를 통한 시험 (야고보서 4:13~5:6)

새벽지기1 2022. 4. 10. 20:46

“부는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태도입니다.

어떻게 부를 얻고,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관심이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시험 가운데 있는 유대 그리 스도인들을 향해 서신을 썼습니다. 그들은 핍박 가운데 흩어져 있었고, 흩어져 있기에 가난했고, 가난 가운데 분열의 시험을 겪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당시 부를 얻을 수 있는 상인들과 지주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4장 13절에서 17절까지는 상인들에게 주어지는 교훈이고, 5장 1절에서 6절은 대지주들에게 주어지는 교훈입니다.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당시 상인으로 일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세 가지를 권면합니다. 첫째, 내일의 모든 일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면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1년 동안 지내며 돈을 벌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여”(13절). 계획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내일이 자신의 통제 아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인도하심 없이도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인생의 계획이 문제입니다. 야고보는 잠언의 말씀을 의식하며 인용한 것입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 27:1). 내일 일을 자랑할 수 없는 이유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시간입니다. 우리는 이 순간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인생입니다. 인생의 연약함, 인생의 짧음, 인생의 헛됨을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잠언 말씀을 적용해서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걱정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맡아서 걱정할 것이요,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으로 충분하다”(마 6:34).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은 계획 없이 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어떤 계획을 세울지라도 그 계획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계획을 파하시든, 이루시든 하나님의 영역에 속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괴로움을 통해서도 역사하실 것이고, 괴로움을 통과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현재의 시간이 얼마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계획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 없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반영하지 않는 계획은 참된 신앙의 모습이 아니라는 교훈입니다.

 

허탄한 자랑을 목적으로 삼지 말라!

 

둘째, 허탄한 자랑이 사업의 목적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교만한 마음으로 자랑합니다. 이러한 자랑은 모두 악한 것입니다”(16 절). 사업의 목적이 교만한 마음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허탄한 것이요,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업을 통해 교만과 허세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의 일자리를 만들어서 선한 사업에 쓰임 받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에서는 인간의 타락한 욕구를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이 세 가지에서 오는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보다 이생의 자랑이 영적인 죄이기에 더 악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사업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가지 않는 것이 죄!

 

셋째, 선이 무엇인지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교훈하고 있는 상인으로 일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도둑질하거나 다른 사람을 해치는 범죄를 행하는 이들이 아닙니다. 세상법의 기준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 법으로는 미래를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허탄한 자랑을 하면서 일하는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규정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는 또 다른 죄의 기준이 있습니다. 사회의 법, 세상 법에 저촉되지 않으니 죄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선이 무엇인지 알고, 또 그 선을 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가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적극적으로 행하지 않는 것도 죄에 포함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도 죄이지만, 할 수 있는 선을 행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거짓말하는 것도 죄이지만, 진실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도 죄가 되는 인생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죄의 기준입니다. 5장에서는 당시 불의한 부자들, 대지주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상태와 영적 상태에 따라 사람들을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가난하면서 동시에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악의 상태입니다. 물질적으로 부유하고, 영적으로도 부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어쩌면 가장 기대하시는 모습입니다. 구약의 욥과 같은 사람입니다. 욥은 누구보다 의로웠고, 경건했고, 모든 시험을 잘 이겨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영적으로는 부유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서머나교회가 그랬고, 두 렙돈을 헌물한 가난한 과부의 모습도 그랬습니다. 물질적으로는 부유하지만, 영적으로는 지극히 가난한 이들도 있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가 그랬고, 젊은 부자 관원이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네 번째에 속하면서 불의하기까지 한 사람들에게 경고합니다. 첫째, 불의하게 쌓은 많은 재물이 삶을 무너지게 합니다. “부자들이여, 여러분에게 닥칠 고난으로 인 해 슬퍼하며 통곡하십시오. 여러분의 재물은 썩었고 여러분의 옷은 좀먹었습니다. 여러분의 금과 은은 녹슬어 여러분에게 증거가 될 것이며 불처럼 여러분의 살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지막 날에도 재물을 쌓았습니다”(1~3절). ‘ 썩고 녹슨 재물’ 이란 지나치게 과도하게 축적되어서 생산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재물을 의미합니다. 재물이 불의한 삶의 증거가 되어서 심판의 날에 하나님 앞에 정죄의 근거가 됩니다.

 

불의한 부자에게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이 있을 것

 

둘째, 정당한 품삯을 지불하지 않는 한 불의 한 부자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운 개입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 일꾼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하나님의 귀에 들린다’ 고 했습니다. 불의함을 하나님이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부당한 수단으로 부를 얻는 사람은 자기가 낳지 않은 알을 품은 자고새 같다. 그 인생의 반이 지나갈 때 부가 떠날 것이고 결국에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이다”(렘 17:11). 셋째, 의로운 사람들을 정죄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불의까지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여기에서의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실제 살인이라기보다 법정 살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지주들이 가난한 이들을 채무자로 만들어서 도저히 그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해서 계속 노예로 가둬놓았습니다. 하나님이 정의를 실행하시고,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불의하고 어리석은 부자들을 비판하는 사람조차 부유함이 찾아오면 부를 통한 시험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가난함을 통한 시험은 인내하고 노력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부를 통한 시험이 더 힘들고 어렵고, 결과도 더 고통스럽습니다. 가난을 통한 시험은 가난하고 배고플 뿐이지만, 부를 통한 시험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금을 신뢰했다면, 순금에게 ‘너는 내 의지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면, 내가 내 많 은 재물 때문에 내 손으로 많이 얻었다고 기뻐했다면… 이런 것도 심판받아 마땅한 죄다. 내가 높이 계신 하나님을 부인한 것이기 때문이다”(욥 31: 24~25, 28). 욥은 의로운 부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칭찬하시고 사단이 그를 공격했습니다.

 

이처럼 부를 통한 시험을 이기는 것이 더 어렵 니다. 대한민국이 가난의 시험을 이겼습니다. 그러나 부의 시험을 이기지 못했기에 위기가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부 그 자체가 아닙니다. 부 자체는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닙니다. 중립적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부를 얻고, 그 부를 향해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는 이 세상의 부유한 사람들에게 명령해서 교만하지 말고 덧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며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어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하여라. 또한 선을 행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아낌 없이 베풀고 기꺼이 나누어 주게 하여라. 그렇게 함으로 그들이 자신들을 위해 기초를 든든히 쌓아 앞날에 참된 생명을 얻게 하여라” (딤전 6:17~19).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아낌없이 베풀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삶을 사신 온누리교회 성도들이 많습니다. 지난 3월 9일 천국으로 환송해 드린 온누리교회 장응복 장로님은 북한에서 홀로 내려와서 의사로서 평생 검소하게 사셨습니다. 많은 이들을 고쳐 주면서 “나에게 만일 100억이라는 돈이 모이면 아낌없이 장학사업을 위해 드리겠다”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장응복 장로님은 늘 “도울 사람들 없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는 한 번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장응복 장로님은 어려운 시기마다 많은 돈을 공동체를 통해서 어려운 이 웃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