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17절]
오늘 말씀은 사래의 이름이 사라로 변경되고, 아브라함에게 사라를 통한 아들이 주어질 것임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약의 징표로 아브라함의 모든 사람들이 할례를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서 17절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앞에 웃어버리고 의심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이 참으로 애처롭게 느껴졌으면 이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임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말씀하시는 하나님보다 자신의 신체적 환경을 보았습니다. 결국 출렁거리는 파도를 보고 바다속으로 빠져들어갔던 베드로와 같았습니다. 자신의 환경을 보았을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은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100세에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겠습니까? 여자 나이 90에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어찌보면 웃을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역사에서 90살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지금의 현실을 보고 하나님의 일하심은 보지 못했습니다.
환경이 우리의 삶의 중요한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환경 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에 대하여 하나님의 응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리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19]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되새깁니다. 분명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누가 막을 수 있습니까? 산이 옮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때 종종 부른 찬양이 있습니다.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때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한분 만으로 만족하네"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믿음이 어느때보다도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러한 믿음으로 주의 일 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환경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에게 지배당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주여 이 죄인을 지배하사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는 도구로 삼아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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